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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이 지나가면서 날씨도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코비드 환자 수도 꽤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오늘은 오후 당직이라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Patient passed away, please come and pronounce.
갑자기 날아온 텍스트에 차트를 열어 환자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봅니다. 1월 말경에 널싱홈에서 제가 입원시킨 환자입니다. 89세 아시아계 체구가 작은 할머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주 전에 코비드로 입원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양의 산소 치료가 필요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할머니 따님분께서 comfort care를 어제 선택하셔서 그 이후로 하루 정도 더 사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할머니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일단 환자가 사망하면 그 방에서는 N95급의 마스크가 필요 없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의료진을 감염시킬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들숨 날숨이기 때문입니다.
가녀린 체구의 할머니가 눈에 들어옵니다. 중심정맥관 등 여러 라인과 와이어들이 할머니 몸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많이 아프셨겠다... 할머니가 많이 안쓰럽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으셨는지 몸이 아직 따뜻합니다. 청진을 길게 해 봅니다. 89년 동안 뛰어왔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호흡으로 느껴졌을 숨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동공은 언제나 그랬듯 할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이야기 해 주듯 크게 열려 있었습니다. 통증에 대한 반응도 그 어떤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듣는 사람 없지만 나지막히 읍조립니다. Time of death 1802.
할머니는 정말 주무시는 듯이 편안하게 보입니다. 수 많은 죽음을 보지만 정작 이 과정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육신이란 영혼을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
겨우내내 전쟁을 치뤘습니다.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꾸준히 코비드 환자 입원은 줄을 잇고 있고요. 전대미문의 팬데믹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강하게 몰아치는데 인간의 존재가 참 미약해 보입니다.
환자 숫자가 이렇게 줄었을 때... 백신 접종을 aggressive하게 해서 더이상의 변이를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겨울까지도 백신접종이 지지부진하다면 또다른 많은 수의 죽음과 마주해야 합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었든 사람은 살고 싶어하고 생명의 가치는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기나긴 시간 잘 참고 잘 견디어 왔습니다. 다같이 소셜 디스턴싱과 위생 수칙을 잘 지켜서 코비즈를 과거의 이야기로 무용담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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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댓글
lonely
2021-02-24 14:29:50
참울타리님을 비롯한 모든 의료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레드크
2021-02-24 14:54:45
언제나 상황나눔 글 감사합니다.
calypso
2021-02-24 15:11:24
정말 마음이 착잡합니다. .. 할머니도 다음 세상은 코로나 없는 세상에서 친구분들과 가족들과 이웃들과 하하호호 하시면서 사시기를 소망해봅니다. 참울타리님도 항상 건강하시구요. 감사합니다...
Gadin
2021-02-24 16:23:18
가슴이 먹먹해 지네요.
'89년 동안 뛰어왔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치열한 생과 사의 현장이 느껴집니다.
참울타리님 글에는 인간애가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재마이
2021-02-24 16:37:30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이 이번 위기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확진자와 사망자의 감소는 정말 기쁜 소식이지만, 지금 확진자 감소세가 하루 6만명에서 정체되고 사망자는 아예 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뉴스등에서는 이미 백신맞고 코비드 사라진 양 하고 있지만 꼭 변종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직 위기의 한순간이죠.... 결국 백신이 이기냐 변종이 이기냐의 싸움인데 이번 사태가 3~4년 가지 않으려면 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때 입니다.
Ambly
2021-02-24 17:43:56
울컥하네요..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든 의료진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Jester
2021-02-24 19:06:50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 많으심에 늘 감사합니다.
이런세상
2021-02-24 19:38:07
힘든 일상이지만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 내시기 바랍니다.
산사나이
2021-02-24 19:41:43
참울타리님과 의료진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도안되는 싸움의 최전방에 내던져진 기분이 어떨지 짐작도 가지않습니다. 힘내십시오.
순백찰떡
2021-02-24 19:42:17
항상 감사합니다. 때로 이 삶에 익숙해져서 경각심을 잊을때도 있는데 반성하게 됩니다. 얼른 코로나 종식되길..
밤새안녕
2021-02-24 19:47:37
주말에 공원에 갔더니, 주차장은 꽉 찼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전혀 마스크 없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사람없는 곳을 찾아 갔습니다.
많이 줄어서 하루 6만명인데 말입니다. ㅡㅡ;
EY
2021-02-24 19:57:00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몸은 아직 따듯하다는 말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네요..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가는 것은 언제나 가슴아픈 기억이 되는것 같습니다.
기다림
2021-02-24 20:28:35
참울타리님 글은 언제나 저희에게 이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하네요. 고맙습니다.
뚜뚜리
2021-02-25 00:15:25
"누군가에게 따뜻한 호흡으로 느껴졌을 숨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ㅠㅠ 제가 늘 새곤 새곤 자는 아이옆에서 이 따뜻한 호흡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사기도 드리는데요. 그 호흡이 사라지면 남은자의 가슴이 얼마나 먹먹할까요 ㅠ
건강하세요.
빨간구름
2021-02-25 00:29:32
아주 슬픈 한편의 시 같네요. ㅠㅠ. 먹먹하네요.
피칸파이
2021-02-25 01:00:02
참울타리님과 의료진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변종이 더 성행하기 전에 백신 접종이 빨리 이뤄져서 올 겨울은 작년 같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옹군
2021-02-25 01:13:09
저는 제 인생에 딱 한번. 같이 일하시던 분이 심장 마비로 쓰러지셔서 바로 병원으로 옮기고 그분 와이프께 전화 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돌아 가셨어요.
와이프가 오셨는데 영어 한마디도 못하시고... 졸지에 의사 선생님 부탁으로 통역 하러 들어 갔다가.. 사망 선고를 하시는걸... 통역 해 드린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데... 참울타리님 참 대단 하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날들이 빨리 지나 갔으면 좋겠네요. ㅠ.ㅠ
셋뚜로리치
2021-02-25 03:34:03
가끔씩 올려주시는 글을 보고 다시 한번씩 맘을 다잡게 됩니다. 모두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래 봅니다.
태현맘
2021-02-25 05:27:58
외할머니가 친정집에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모습만으로는 잠이 안 깨신듯 차가운 빰을 만져보고야 비로소 울움이 터진 기억이 나네요. 의료진분들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참울타리님 소식도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구요.
lovedave
2021-02-25 05:32:58
진심으로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할머니도 고통없는 곳에서 더 편안히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PJmask
2021-02-25 05:47:45
글을 읽는 내내 먹먹하네요... 참울타리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