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 후기 7103
- 후기-카드 1867
- 후기-발권-예약 1316
- 후기-백신 79
- 후기-격리면제 28
- 질문 60668
- 질문-기타 22141
- 질문-카드 12319
- 질문-항공 10745
- 질문-호텔 5506
- 질문-여행 4298
- 질문-DIY 234
- 질문-자가격리 19
- 질문-은퇴 489
- 정보 25438
- 정보-친구추천 2
- 정보-자가격리 133
- 정보-카드 5418
- 정보-기타 8347
- 정보-항공 4012
- 정보-호텔 3390
- 정보-여행 1158
- 정보-DIY 232
- 정보-맛집 233
- 정보-부동산 67
- 정보-은퇴 296
- 여행기 3595
- 여행기-하와이 404
- 잡담 15962
- 필독 63
- 자료 66
- 자랑 736
- 금요스페셜 107
- 강퇴로 가는 길 11
- 자기소개 661
- 구라 2
- 요리-레시피 71
- 오프모임 200
- 나눔 2775
- 홍보 14
- 운영자공지 33
- rice price.jpg (34.7KB)
금본위제도는 자유무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금본위제의 법정환율은 금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해 지지됩니다. 금이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것은 재화의 반대방향의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19세기의 역사를 제국주의의 침탈의 역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일면적입니다. 열강들은 무역의 이점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며 이에 교역의 기회를 찾아 전 지구를 무대로 활동합니다.
다만 유교적 근검주의에 의해 딱히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에 대한 관심을 가진 열강은 별로 없었습니다. 미국은 조선을 중국으로 가는 기항지로써만의 가치를 보았으며, 영국은 저 나라에는 무역을 할만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조선의 의미있는 무역상대국은 일본밖에 없었습니다. 조선은 일본인이 소비하는 쌀을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강제로 약탈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아직 조선왕조가 멀쩡히 살아있던 시절입니다.
경제원론에 나오는 비교우위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은 쌀에대해 비교우위가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에 비교열위가 있었을까요? 바로 면(綿)입니다. 면에 대해 비교열위가 있었고 쌀에대해 비교우위가 있었습니다. 비교우위의 개념상 일본은 그 반대였습니다. 절대우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은 두 산업 모두에서 절대우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론적으로는 기회비용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가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개항 당시 조선의 쌀가격은 일본보다 낮았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농민은 쌀을 일본에 팔면 더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현물이 더 높은 가격을 향해 이동하면서 양국의 쌀시장은 하나로 통합되고 두 지역의 가격은 하나로 수렴하게 됩니다. 아래의 그림은 영암과 오사카의 미가를 비교하고 있는데 1910년의 병합 전후로 하여 양국의 미가는 하나로 수렴했다는 것, 즉 시장은 수출과 수입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전성호, 조선후기 미가사 연구 (1725-1875), 성균관대학교대학원경제학과박사학위논문, 1998
이영훈, 박이택, 농촌미곡시장과 전국적 시장통합, 조선시대사학보, 16, 2001
1900년대 초까지 영암의 미가는 오사카를 밑돌고 있습니다만 그 후 거의 동일해 짐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쌀 수출의 기회를 잡아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중인계층 사람들이었는데 강화 김씨가, 나주 이씨가, 김성수로 대표되는 고부 김씨가 등등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까 언급했듯이 조선은 면에 비교열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은 쌀을 수출한 대금으로 면을 수입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미면교환체제라는 인상적인 말로 표현합니다.
소중한 쌀을 주고 그까짓 면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면포는 쌀에 버금가는 중요한 재화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왕조는 쌀과 포 두 가지로 조용조를 수취했습니다. 쌀이 에너지를 발생한다면 면은 에너지를 보존합니다. 조선시대의 가난한 백성들은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고 벌벌 떨어야 했습니다. 면포는 쌀 못지않은 필수품이었습니다.
면포를 수입한다는 것은 수입면포의 가격이 국내가격보다 저렴했음을 의미합니다. 수입면포가 조선 농촌을 휩쓸면서 재래 토포생산은 완전히 초토화됩니다. 한국에 목화밭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 그 목화를 기르던 밭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이 때 논으로 바뀝니다. 비교우위의 이점을 누리기 위해서.
여담으로 이 때 수입한 면포는 일제면포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제 면포였습니다. 이미 19세기 말 조선의 농민들은 인도에서 생산된 면화로 맨체스터에서 직포되고 일본을 통해 건너온 면포로 만든 옷을 입고 겨울을 났습니다. 무슨 돈으로요? 쌀 판돈으로요. 뮬 방적기로 뽑아낸 실로 플라잉 셔틀이 장착된 직포기를 이용해 대량으로 짜낸 수입면포가 농촌 아낙네가 한땀한땀 베틀로 짜낸 면포보다 매우 저렴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1920년대 초에 일본에서의 쌀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일본정부는 자국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쌀에 대한 관세를 높입니다. 조선농민들은 이에 조직을 결성하여 총독부에 압력을 넣습니다. 너희는 수출시장을 뚫지 못하고 뭐하고 있느냐? 일본정부랑 협상해서 우리의 이익을 지키란 말이다!
국제무역이 종종 타국의 자국 수탈로 오해되는 일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만 그런건 아닌가 봅니다. Hochberg, Fred, Trade Is Not a Four-Letter Word: How Six Everyday Products Make the Case for Trade, Avid Reader Press, 2020 에 따르면 미국인들도,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중국 무역에서 똑같은 착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월마트에서 물건 살때마다 월마트에 돈을 잃느냐고 반문합니다.
다음 글에는 일제시기의 쌀 수탈 문제를 포함한 수탈론의 근거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 전체
- 후기 7103
- 후기-카드 1867
- 후기-발권-예약 1316
- 후기-백신 79
- 후기-격리면제 28
- 질문 60668
- 질문-기타 22141
- 질문-카드 12319
- 질문-항공 10745
- 질문-호텔 5506
- 질문-여행 4298
- 질문-DIY 234
- 질문-자가격리 19
- 질문-은퇴 489
- 정보 25438
- 정보-친구추천 2
- 정보-자가격리 133
- 정보-카드 5418
- 정보-기타 8347
- 정보-항공 4012
- 정보-호텔 3390
- 정보-여행 1158
- 정보-DIY 232
- 정보-맛집 233
- 정보-부동산 67
- 정보-은퇴 296
- 여행기 3595
- 여행기-하와이 404
- 잡담 15962
- 필독 63
- 자료 66
- 자랑 736
- 금요스페셜 107
- 강퇴로 가는 길 11
- 자기소개 661
- 구라 2
- 요리-레시피 71
- 오프모임 200
- 나눔 2775
- 홍보 14
- 운영자공지 33
95 댓글
BBS
2025-01-18 16:03:18
블라인드 한번 해봅니다
샹그리아
2025-01-18 20:21:36
저도 조용히 블라인드 하려다가 댓글 달고 블라인드 하러 갑니다. 하아...
손님만석
2025-01-18 16:03:18
일베글 같은데 중간 참고문헌도 조선후기 미가사 연구는 기후와 이에 따른 작황으로 변동되는 곡물가격에 관한연구여서 논점이 다르고요. 두번째는 그 유명한 뉴라이트 이영훈이 저자네요.
두라돌
2025-01-18 16:16:03
작황으로 변동되는 곡물가격에 관한 연구가 아닙니다. 전성호의 주된 기여는 고문서에서 데이터를 추출하여 미가 시계열을 복원한것입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것을 가지고 아는척 하는건 삼가주시죠.
손님만석
2025-01-18 16:40:49
본인이 써놓고도 모르면서 남보고 모른다고 하니 참.
그리고 진성호의 연구범위는1700년 초반부터 1875년까지 기후에 따른 작황과 곡물가격 입니다. 이 시기를 대상으로 한 논문에서 나온 이 데이터를 가지고 뉴 라이트 이영훈이 어떻게 마사지를 해서 썻는지는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요.
두라돌
2025-01-18 16:42:38
그 아래 이영훈, 박이택은 그 연구를 확장해서 1944년까지 시계열을 추가합니다. 그래서 출처를 두개 달았던 겁니다. 뉴라이트라고 비난하는 것은 자유이나 논문은 조선시대사학보에 실린 논문입니다.
손님만석
2025-01-18 16:44:32
나 뉴라이트요 커밍아웃인가요?
그런거 아니면 이런 이영훈 같은 작자가 쓴 허튼소리를 인용해대면서 같은 논리로 주장하지 않겠죠.
제로콜라귀신
2025-01-18 16:26:21
허위사실에 사실을 교묘하게 섞어서 거짓주장을 외치는 식민사관,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는 언제 봐도 역겹네요. 정치환경을 완전히 거세한 경제데이터만 보면서 쌀 "무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데이터의 왜곡이죠.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의지를 짓밟은 채, 쌀 농사 이외의 산업을 육성할 기회를 박탈하며, 한반도를 제국일본의 농업기지화 시켰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겁니다. 한반도에서의 경제발전을 막는 구조에 누가 동의했나요? 예를 들어, 6.25이후의 한국에 경제구조의 인위적 변화를 막는, 일제의 지배와 같은 외부의 압력이 존재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압력의 명령으로 전후 직후 당시 비교우위에만 의존해서 한국 경제가 농업에만 의존했다면, 전라도의 곡창지대에만 의존해서 한국이 생존해야만 했다면, 과연 그게 정당한 경제 현상인가요? 지금의 발전이 있었을까요? 수탈이란 표현은 쌀의 이동만을 중심으로 사용되는게 아닙니다. 그 구조를 고착시키는데 사용된 부당한 물리력, 시민들의 의지를 짓밟는 제국주의 등 모든걸 포함하는거에요. 결국, 그 당시의 구조는 제국일본 중심의 이익만을 위한 수탈입니다.
수탈을 개항기 국제무역으로 축소하지 마세요.
두라돌
2025-01-18 16:35:43
훌륭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해서 조만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Finrod
2025-01-18 16:57:43
?
여기서 조만간 얘기할 필요 없어요
님이랑 취향 맞는 뉴라이트 커뮤 가서 떠드세요
유키사랑
2025-01-18 21:04:11
"정치환경을 완전히 거세한 경제데이터만 보면서 쌀 "무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데이터의 왜곡이죠."
-> 본문 작성한 분이 간과 하고 있는 점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 됩니다.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꼭 집어서 그것만 그것만 열심히 보면 이런 글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되네요.
AAMom
2025-01-18 16:36:01
이사람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이 하는 주장과 똑같은 식민사관, 정말 토나오려 합니다. 최소 그들을 숭상하는 친일파 그자체. 친일파 후손도 아님.
상상이상
2025-01-18 16:43:04
저도 역사, 정치, 그리고 사회문화 현상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아주 많고 이야기하는거 좋아하지만 여기 사이트는 그런 토론의 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특히 요즘같이 서로 민감한 시기에는 주인장님께서 공식적으로 허락을 하신 글타래에만 관련 글을 올리는것이 어떨까요?
여기는 마일모아서 알뜰하게 그리고 조금은 풍요하게 여행다는 후기와 팁을 공유하는 사이트라는 목적을 서로가 기억하고 지킬려고 노력하는 곳이죠.
도리카무
2025-01-18 16:44:12
@마일모아 게시판에 이런글들이 여과없이 올라와도 괜찮은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날로그
2025-01-18 16:51:28
마모에 정치글 금지에요. 12/3 내란만 예외적으로 허용된거구요. 정보 글은 허용되는데 출처도 이상한 글들 계속 쓰시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마일이나 여행 혹은 정보 글만 허용되는거 아셨으면 좋겠어요.
Finrod
2025-01-18 16:55:22
자꾸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가 뭔지...?
불쾌하고 역겹네요.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8 16:57:21
수탈론의 근거에 대한 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희 외가가 충청도에서 유명한 지주였는데 일제에게 땅은 물론 놋그릇까지 전부 빼앗겼고 어린시절 애기씨 소리 들으며 본인 손으로 세수 한번 한 적 없으시던 외증조 할머니께서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간 스토리를 반박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과연 제 외고조 할아버지께서 자의로 본인의 집과 땅 재산을 기부하셨을까요?
그나마 소위 있는집 이었던 집안이 이정도였는데
없는집 사람들은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이건 드라마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40대인 제가 어린시절까지 살아계시던 분들에게 들은 생생한 이야기인데 제가 들은 이야기는 거짓이고 과장된 걸까요???
그리고 근거로 제시하신 1910년대 쌀 가격은 무역의 결과가 아닌 세계 1차대전 일본의 수탈로 인한 가격 폭등인걸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차 세계대전 군수품 제작으로 일본은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며 이로인한 산업화 및 도시화로 인해 식량이 부족한 상태였고 곡물가격이 폭등하게 됩니다. 그랬을때 당연히 식민지인 한국을 쥐어짜는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쉬운방법 아니었을까요? 또한 이것이 1920년대 두차례에 걸친 산미증산계획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물론 증산을 위하여 저수지를 정비하고 농작법을 개선시키는 등의 부수적인 현대화 작업이 있긴 했지만, 이는 우리를 최대한 쥐어짜기 위한 투자였을 뿐 입니다.
두라돌
2025-01-18 20:32:14
근거로 제시하신 1910년대 쌀 가격은 무역의 결과가 아닌 세계 1차대전 일본의 수탈로 인한 가격 폭등인걸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두 쌀가격이 시장통합에 따라 수렴하고 있다는 얘기를 한겁니다. 쌀가격은 일본에서도 폭등했는데(쌀소동) 일본의 수탈로 일본의 쌀가격이 함께 올랐다구요?
일제가 조선에서의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한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한건 맞는데 그걸로 조선이 어떻게 수탈을 당했는지요?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8 20:49:48
일본의 쌀 수요 급등 -> (강압에 의한)조선 쌀 수출 증가 -> 조선의 쌀 가격 상승.
1910년부터 일본은 토지조사를 시행하였죠 이후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지주들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 20% 에 가까운 토지가 일본인 소유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친일을 일삼은 사람들이 소유한 토지까지 합하면 더 많았겠죠.
거기서 나온 경작물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되는데,
가격이 당연히 수렴하는 쪽으로 가지 않는것이 이상한거죠.
두라돌
2025-01-18 20:51:37
20% 어디서 보신 숫자이신지? 40%는 아니구요?
총 1910만 필지중 9만9천455필지를 제외하고 신고대로 사정되었습니다. 99.5%가 조선농민의 신고대로 사정되었는데 어디서 그런 숫자를 갖고 오셨는지? 40%주장은 많이 봤어도 20%은 또 첨 봅니다.
goldie
2025-01-18 17:14:25
하다하다 이제는 일베에서나 볼 수 있을만한 글까지 올라 오는군요.
Melody
2025-01-18 17:19:38
수탈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시는 듯. 본인이 소신이 있으면 뉴라이트 소리를 들어도 결이 같으니 기분나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비난으로 알아들으시니 그것도 아이러니 하군요. 뭐 어쨌든 블라인드 각입니다.
하와와
2025-01-18 17:55:35
솔직히 이분 계속 이런글만 작성하는데 참...
마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쵸코대마왕
2025-01-18 18:03:45
총포 쏘며 개항시키고... 개항시키며 작성된 계약서에는 치외법권등 자기네 유리한거만 써놓은 계약서로 시작된일이 한국에도 좋은 일이었다? 혹시 조부모님이 무슨일 하셨었는지 궁금하네요... 저희 외할머니집 당시 경상도 유지였는데도 일본때문에 힘들었던거 하소연 하셨는데...
도대체 주변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공부하면 이런 사상을 품는지 ...
일본에 사는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 안하던대요;;; 신기한분이
직접 글쓰는 거 처음 봅니다...
베가본드
2025-01-18 18:12:32
제목부터 뉴라이트 주장 그대로 인 듯 하네요. 왜 이리 속이 미식거리는지, 청정한 마일모아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네요.
퓨리
2025-01-18 18:24:59
마모 게시판에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라인드 각입니다
건다무
2025-01-18 18:28:19
이런글 쓰면 님은 한국인 아니오?
뭔가 선민의식 느껴지고 그러나...
블라인드 갑니다. 다신보지맙시다
참사람
2025-01-18 18:29:59
출처 전성호 이영훈...
친일식민사관에 세뇌되신 분이네요
그 종교 사이트로 가시는게 맞겠습니다.
Smilee
2025-01-18 19:00:16
댓글들 덕에 블라인드 기능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Platinum
2025-01-18 19:28:33
상당히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은 의견인데, 아마도 많은 분들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실거라고 생각됩니다.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경우가 많더군요.
에타
2025-01-18 19:51:42
1)역사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2)역사 게시판이 아닌 마모게시판에 3)반복적으로 쓰시는 이유가 뭔가요? 이와 비슷한 글을 최근에 여러번 올리셨는데 4) 댓글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요. 또 글에 달린 댓글에 5)대댓글을 다시는 것도 아니고 본인 주장만 계속 하시네요. 여기는 여러명이 이용하는 게시판이지 일기장이나 개인블로그가 아닙니다.
지금 하시고 있는 행동은 게시판 분위기 해치는 것으로 밖에 이해가 안됩니다. (멤버들간의 분란을 막기 위해서 정치글 금지라는 규칙까지 생긴 마일모아입니다)
고래의꿈
2025-01-18 19:53:44
블라인드라는 좋은 기능이 있군요.
덕분에 처음 사용합니다.
잔잔하게
2025-01-18 19:56:25
저는 마모에 이런글도 괜찮다고 봅니다. 아쉽게도 댓글에 좀 더 알찬 빈박이 있을 법한데 없네요.
전 조선의 쌀 수출과 크림전쟁직전 아일랜드의 감자수줄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사간쪽에선 무역이라고 주장하지만 판 나라는 기근에 시달렸죠.
현대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자행되는 시장경제에 의한 수많은 불공정 무역들은 어떻구요.
두라돌
2025-01-18 20:06:51
본문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댓글이 없어서 딱히 반박을 할 수 없습니다. 제로콜라귀신님의 댓글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으며 관련해서 차차 글을 올릴겁니다.
쌀 수출-면화수입이 어떤 의미에서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시는지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대략 짐작가는게 있어서 덧붙이겠습니다.
경제원론에 나오는 비교우위론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두 나라가 무역을 할 때 양국은 무역의 이익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각국에 사는 모든 개인이 이익을 얻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이 중국에서 철강을 수입하면 미국의 철강생산자는 직장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무역을 하는 이유는 국가 전체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종종 비교열위산업에서의 손해가 무역의 불공정성으로 오해되고는 하는데 이건 명확히 나눠야할 문제입니다. 쌀 수출을 통해 거대 지주들은 이익을 보았지만 면화생산 농민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언급하신 아일랜드의 문제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종속이론이 학문적 파탄을 맞은것은 이와같이 경제원론의 기본개념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은 일본이 조선을 수탈했다는 주장과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8 20:29:28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비교우위론은 자발적인 교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계시네요. 비교우위론은 상호 이익을 위한 평화적인 상태에서의 무역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지 제국주의적 침략 상태에서의 무역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닙니다.
두라돌
2025-01-18 20:31:03
김성수 일가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쌀을 판건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잔잔하게
2025-01-18 20:58:00
그래서 부역자라고 하죠.
자발적으로 커피콩을 파는 이디오피아 지주처럼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8 21:09:33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여 김성수란 사람이 누군지는 잘 몰랐지만 검색해보니 일본에 적극 협조하여 자발적으로 쌀을 팔아 본인 배를 불린것은 맞네요.ㅋㅋ 이런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합니다. 조선인 김성수는 강압에 의해 쌀을 팔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조선인은 강압에 의해 쌀을 팔지 않았다.
두라돌
2025-01-18 21:12:47
검색하지 마시고 김용섭의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김성수 말고도 개항기에 돈을벌어 지주가 된 사람들 얘기가 더 나옵니다. 김용섭이 어떤 분인지는 검색해 보시죠.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8 22:19:29
저는 책을 읽지 않았지만 간단히 서치만 해봐도 김용섭 교수님은 일제의 수탈로 인하여 한국 농업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고 주장하시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 교수님의 주장은 아무리 보아도 제가 배우고 생각해온것과 같은 주장이신데 어느 챕터에 원글님의 생각대로 수탈이 아니라고 나오는지 묻고 싶습니다.
두라돌
2025-01-18 22:24:51
윗 댓글 맥락: 그 분이 추적한 개항기 지주들의 재산증식에서 님이 말씀하시는 일제의 강요나, 아니면 그 반대로 적극적인 친일이나 그런것은 없다는 얘깁니다.
그분이 말하는 일제의 수탈이라는 것은 일제가 쌀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적 개혁을 억누르고 지주적 토지제도를 존속시켰다는 얘기로써 전혀 다른 얘깁니다. 농민적 개혁과 지주적 개혁이라는 학설은 매우 거창한 학설로서 여기서 논할 내용은 아닌것 같고 결정적으로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말만 덧붙입니다. 글을 읽지 않고 검색만 하시면 엉뚱한 오해만 하게됩니다.
--------------
그냥 쓰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조선시대이래 지주제에서의 작인-지주 분배율은 5:5였습니다. 이 시스템을 일제는 그대로 두었고 따라서 동학농민운동 이래로 도도히 흐르던 농민적 개혁의 흐름을 일제는 억눌렀다는 얘깁니다. 그 농민적 개혁이 완수된곳이 바로 북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얘기는 다른 책에 나옵니다.
슈퍼맨이돌아갔다
2025-01-19 16:52:58
글을 읽지 않고 엉뚱한 오해만 한다고 공격적으로 말하셔서
책 빠르게 읽고 반박하러 왔는데 이미 회원등급이 강등되셨군요.
그래도 댓글은 읽으실 것이라 보고 답글을 남깁니다.
제가 이해한 책의 핵심은 '내재적 발전론' 입니다.
저에게 추천을 해 주셨으니 당연히 알고 계시죠?
아시다시피 내재적 발전론 그리고 자본주의 맹아론은 조선 후기 사회가 외세의 영향 없이도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내부적인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죠 즉, 일제의 식민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식민사관에 반박하는 이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수탈을 한것이 아니다 라는것이 원글님의 주장인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김용섭 교수님은 일제의 수탈을 단순히 쌀을 빼앗아간 것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제는 쌀 수탈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조선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셨죠. 일제가 조선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저해하고 식민지 수탈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토지제도를 이용했다는 점을 비판한 것아죠.
또한 토지조사사업이 단순한 토지 소유권 조사가 아니라, 조선 농민의 토지를 강탈하고 일본인 지주에게 넘기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일제가 조선의 토지 소유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글님은 책을 읽으셨어도 아전인수 격으로 원하는 부분만 읽거나 추려 본인의 입맛에 맞게 가공한 것에 불과하며 일제 수탈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있으십니다.
물론 제 이야기가 잘못되었고 본인의 말이 맞다 생각하시겠죠?
저 역시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름을 붓고 일정부분 기여를 한 것은 인정하는 바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였단걸 아셔야죠 식민지는 그 자체로 무언가를 빼앗기 위한 대상이며 본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하시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것에 반박하시면 원글님의 말이 다 맞습니다.
EY
2025-01-19 17:15:11
쪽지 보내기가 가능한 것 보면 회원등급은 그대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찌모을겨
2025-01-19 17:18:05
회원 정보를 보니 보류로 되어잇네요.
등급의 정의는 모르겟지만 글쓰기 댓글은 안되지 않을까요?
EY
2025-01-19 17:28:43
아... 그렇네요 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모님이 너그러우셔서 그나마 살려는 드렸네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펼치시기를..
잔잔하게
2025-01-18 22:01:03
다시 읽어봤습니다. 개항직후 무역의 불공정성도 논할 수는 있겠지만 수탈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죠. 말씀대로 조선왕조가 살아있던 시절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토지개혁부터 쌀반출등을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일제의 식량증진사업이 조선 농민의 생산량을 증대시켜서 농업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하실건지
두라돌
2025-01-18 22:08:5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반적으로 산미증식계획은 실패하였으며 중도반단되었다는 것이 통설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산미증식계획 그 자체로 인해 수탈이 더 심해졌다는 주장은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수출량도 자연스레 증가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지만 수출=수탈이라면 몰라도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산미증식계획의 일환으로 수리조합사업이 20년대부터 진행되는데 여기에 대한 연구의 흐름은 대략 총독부의 금융지원은 일본인지주에 집중되었고 수리조합 자체도 일본인들의 주도에 설립되었으나 30-40년대를 지나가면서 조선인이 적극적으로 임직원으로 참여하고 있는것이 확인됩니다. 또 마구평수리조합의 사례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양수기 등의 장비를 들고 온 이웃 일본인들을 손가락만 빨고 쳐다본것은 아니고 조선인들도 적극적으로 경쟁의식을 갖고 기존의 보나 저수지를 개수하여 적지않은 성과를 거둔 예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수탈이라는 단어가 사회과학적 용어가 아니며 개념상 매우 애매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추가서술 하도록 하겠습니다.
Platinum
2025-01-18 20:10:41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는 순수한(?) 학문적인 분석을 해서는 안된다고 믿는 분들이 상당히 많지 않을까요?
갑자기 생각나는데 어렸을 적에 한국에서 좋은 김은 다 일본으로 간다고 일본이 나쁘다는 식의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렸을 적에는 그런 생각 못했는데 좀 커서 생각해 보니 일제시대도 아니고 70년대면 우리가 제돈 받고 일본에 김을 판거 아니었나, 일본이 적어도 총들고 억지로 김을 헐값으로 가져간 것도 아니고 한국 안에서 파는 것보다 더 좋은 가격을 주니 일본에 판매했던 건데 왜 그것을 일본이 나쁘다는 식으로 얘기했을까 오히려 한국산 김을 비싼 가격에 사주니 외화벌이도 하고 좋은거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우리가 어떻게 해도 식민지가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으니 일본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지는 교육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적어도 독립한지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그럴 수 밖에 없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에 비교해서 국력이 뒤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국력이 뒤지지 않는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그런 모습이 사라지는 시기는 생각보다 늦어지는거 같다는 생각이...
아날로그
2025-01-18 21:20:11
이런 댓글까지 있다는 것에 더 놀랍네요. 일제시대 겪었던 분들 증언이나 그때 사료, 사료를 바탕으로 한 글들 찾아보면 일제가 수탈을 얼마나 사악하게 했는지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걸 어떻게 70년대 김 수출이랑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일제가 한참 전쟁중일때 국내에서 생산한 쌀을 팔수도 살수도 없게 하고 전량 일본이나 전쟁터로 보내서 우리 선도들이 굼주리고 땅도 다 빼았기고 강제로 노역에 끌려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강해지더라도 침탈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아요. 그걸 기억하고 후손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고 그걸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방지할 수 있구요. 한강 작가가 이야기 한 죽은자가 산자를 돕는게 이런 방법이구요.
학문적인 분석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사실에 바탕을 둔 균형있는 자료에 기반하라는 거죠. 일본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한 연구와 그걸 퍼트리는 사람들에 동조할 이유가 뭐가 있죠?
Platinum
2025-01-19 13:51:52
핀트를 잘못잡으신거 같은데 질문 한가지 드려보겠습니다. 일제시대 일제가 무역이라고 부를만한 어떠한 거래가 없이 일방적으로 수탈만 해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자체는 나쁜 행동이 맞지요? 자 그러면 독립이 된 후에 다르게 벌어진 정당한 거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1) 두 행위는 다른 행위이므로 다르게 표현하는게 맞다
2) 예전에 나쁜 행동을 했던 사람들의 후예이니 무조건 나쁘다고 한다.
아날로그
2025-01-19 17:02:36
핀트를 잘못 잡았다고 하셨는데, 그럼 이 댓글에서 70년대 김 수출을 예시로 든 건 무슨 이유신가요?
1) 해방 후 일제가 한걸 전부 나쁘다고 이야기 한적 없구요.
2) 원글에서 일제 시대에 있었던 식량 수탈과 관련하여 일제의 만행을 이야기 한거구요. 원글에서는 식민사관에서 일제에 의한 경제 발달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Platinum님이 70년대 김 이야기를 하시니 그 비교가 잘못 되었다고 말씀드린거구요.
3) 일제 강점기때에 있었던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것들에 대해 일제가 인정하고 사과를 제대로 한적이 없습니다. 그걸 기억하고 가르쳐야 한다는게 제 논지구요. 근데 일제가 한일중에 좋은 것도 있지 않느냐라는 원글에 70년대 김 이야기를 가져오신 의도를 제대로 설명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4) 만약 같은 논지로 70년에 일본이 우리 김 팔아줬으니 좋은 것처럼 일제 시대에 식량이랑 면 생산 늘려주고 경제화 기반을 갖게 해줬으니 그건 인정하고 감사해줘야 한다는 논리가 원글이고 그게 식민사관이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5) 우리가 아무리 부강해지더라도 치욕스런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심하게 핀트를 잘못 잡고 계신듯 합니다.
Platinum
2025-01-19 17:52:06
우선, 해방 후 일제가 한걸 전부 나쁘다고 하신 적 없듯이, 제가 일제가 수탈을 안했다고 했거나 옹호를 했던가요?
그리고 관점이란 딱 2개만이 있어서 우리의 근대화는 전부 일본의 덕이라는 시점과, 일제에 의한 수탈과 잔학만 탄압만이 있었다는 시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만 나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일제 시대의 무역이건 수탈이건 하는 것과 70년대 우리가 김을 수출한 것이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고 제 핀트는 그것이 아닙니다. 70년대는 일제 시대의 상황과는 분명히 다른데도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감정을 100%분리하는 것이 시간이 필요하다였는데 확실히 핀트를 잘못 잡으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일본이 전혀 사과를 안한것이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고노담화가 벌써 90년대 얘기지요. 물론, 우리가 받아들일 만큼 진정성이 없다거나 독일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올텐데, 전세계적으로 식민지배에 대해서 진정성있는 사과를 한 국가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독일이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브란트가 역사적인 모습을 연출했지만 그것이 백인인 유태인들에 대해서 한정이고 다른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그에 준하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저는 가끔 피해 국가가 상대 국가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식민 지배 국가들이 다같이 모여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다시는 인류 역사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인류의 역사는 도덕성만으로 돌어가는 것이 아니고 결국 힘의 논리가 많이 좌우하지 않나, 우리가 도덕에만 매달리기 보다는 스스로 힘을 가지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국제정세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고는 합니다.
rmc
2025-01-18 19:57:44
한국인인척 하는 일본 극우인가요?
루시드
2025-01-18 20:03:33
토착왜구요. 해방후 일본에 못돌아간 일본인 후손일수도 있구요. 댓글중에도 한두명 더있네요.
BBB
2025-01-18 20:16:03
지난번 글에 댓글 달았더니, 쪽지로 이것저것 써서 보내셨더라고요. 뭔가 대단한 내용인가 하고 봤더니, 이영훈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사관을 반복하는 것이더라고요. 더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어서 답장은 하지 않았는데, 이런식으로 또 글을 쓰시네요.
무지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을 본인이 교화시켜야겠다는 사명같은게 있으신 것인지, 집안이 대대손손 친일파고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리며 잘살고 있어서 이걸 미화시키고 싶어서 그런건지 궁금하네요. 차라리 후자라면 개인적인 부분이니 약간의 이해라도 가는데, 아니라면 왜 이런 내용들이 주류로 인정 받지 못하는지 부터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네요.
헐퀴
2025-01-18 20:25:24
이분 글들에 흥미로운 형식적인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마치 팩트 체크를 위한 건조한 글인 척 쓰시면서 정작 제목은 "한국인의 특성", "착각"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어보인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적어도 내용을 떠나서 본문 문체만 놓고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죠.
결국 어그로가 목적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답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벌찬
2025-01-19 14:11:51
제가 파악한 마모에서 어그로글 쓰고 꽉막힌 토론(?)하려하고 지식 뽐내는 분들 특징은 현실에서 좋게 말해서 많이 심심하신분들인것 같더라구요.
Ulalarius
2025-01-18 20:37:59
블라인드란 좋은 기능을 이번에 알았네요. 이런분들이 쓰신 내용들보면 너무 힘드네요. 두라돌님, 한국을 떠나셨다지만, 적어도 여기서 쫌 아닌건 아닌거 아닐까요? 그정도로 열의가 넘치시는 대단한 학자시면 여기서 이런 토론을 기대하실필요는 없지않으실까요?
에반
2025-01-18 20:39:52
암만봐도 이승만때부터 우리나라는 단추를 잘못 이어온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나치를 대숙청했던 것 처럼 우리나라도 일제 부역자를 피도 눈물도 없이 다 숙청해버렸어야 하는건데요..
케어
2025-01-18 20:44:20
한국은 일본에 좋은가격에 쌀을 팔아서 면직을 살수있는기회를 얻었으니 행운이었다라는 주장을 이렇게 길게 쓰신건가요?
고기만두
2025-01-18 21:17:11
가끔씩은 제 안의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는 것이 야속할 때도 있습니다.
구역질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냥 손쉬운 블라인드 라는 기능이 있는데... 그냥 차단하고 넘어갈까 하는 생각을 몇시간을 했습니다....만,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라 자꾸 저를 옭매입니다.
"더럽다고 길 가에 똥을 안치우고 냅두면 안되잖아요, 누군가라도 나서서 치워야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저들은 왜 저럴까???
생각해보니 특징이 정리됩니다.
1) 학계에서 이미 정설이 된 내용을 부정합니다.
2) 굳이 학계가 아닌 소규모 그룹 혹은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냅니다.
3) 그리곤 일방적인 자료만 들고와서 반박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들의 말 혹은 글에는 *실제 살아있는 역사증인들과 학계의 자료는 철저하게 무시되거나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아주 단순한 *심리적 스키밍(scheming)*입니다. 보여주는 데이터만으로 독자의 시야를 좁히니까요. (Framing)
단순한 심리학적 예시로,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A행위를 시키고 싶을때, 굳이 더 하기 싫어하는 행위B를 묶어서 물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A할래? 라고 물어보는 것 보다, 훨씬 A 행위를 거절할 확률이 떨어지죠.
구글에 "일제 수탈 근거"라고만 쳐도 역사 다큐와 역사자료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그들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죠.
가령 아래와 같은 KBS 역사 그날 영상을 보죠.
https://youtu.be/jQ90QvkZCeM?si=3jJecouztZhysEGz
해당 영상에는 이미 증인들과 사료 및 근거 데이터가 나옵니다.
조금만 생각을 더 해봅니다.
아니 한국에선 수도 없이 들었고, 현재 미국에서 조차 종종 듣는 "식량안보"를 차치한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은 굶어죽어가는 판국에 식량수출이 1910년에 23만섬이었던 것이 1934년에 178만섬으로 올라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정상적인 상황인가라는 단순한 의문만 가져도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나서 자라, 교육을 받고 산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압니다. 해당글이나 원글자의 이전글의 리플들만 봐도, 많은 수가 가족 지인 중에 그 역사의 산증인들을 만났고, 또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까요.
굳이 왜 이런 짓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한국의 시기적인 관련성과 그 불안함, 혹은 조급함이 그 원인일지 않을까 강력하게 추측이되나, 더 나아가서는 제가 좋아하는 마모의 규칙과 반할 수 있기때문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노말한사람
2025-01-20 17:53:03
제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심한말을 하고싶지만 마모 규칙을 위반할 수는 없어서 이런 댓글들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갑니다.
마적level3
2025-01-18 21:44:34
제목이 재밌네요 ㅋㅋㅋ
님 말대로 이 부분에 대해 "착각"하는 게 한국인 특성이고
님은 제대로(착각과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면,
님은 한국인이 아니란 얘기네요.
Merlet
2025-01-18 21:57:25
와우 아무도 묻지도 않고 마일모아와 관련도 없는 주제로 연재까지 한다는 자신감은 어떻게 하면 얻나요? 미국에 살면서 이런 자신감은 전형적인 백인남성 전유물인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군요
KeepWarm
2025-01-18 21:59:09
시사 정치 및 기타 분란 대상으로 제제 안된게 신기할 따름...
JJCDAD
2025-01-18 22:02:11
블라인드 처리 완료. Dog소리를 참 정성들여서 쓰셨군요. @마일모아 주인장님이 어서 이 글을 처리해 주시길 요청해 봅니다.
아소다
2025-01-18 22:06:04
블라인드 처리합니다. 하이고 참.
돈쓰는선비
2025-01-18 22:13:52
휴... 이분 계속 이러시는군요. 다른 글에는 예상한대로 비난 댓글이 많았다고 하셨으면서 듣기싫은 댓글은 읽어보지도 않은듯하네요. 이분은 역사의 아픈 기억이 있으신 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릴 생각은 없으신가보네요. 수탈 당한 분들이 수탈 당했다고 하는데 '착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뭐 한 번 만나고 싶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역사적으로 일본놈들에게 자유를 박탈 당하고 몹쓸짓을 당한 분들의 가족들이 많으니 말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서 입에맞는 자료만 가져와서 여기 자료가 있으니 착각하지 말라 하나요.
용트림
2025-01-18 22:39:03
개인적으로 이런 논의와 관련된 글 읽는 걸 좋아합니다.
근데 제목에서 이미 굳이
한국인의 특성=반일종족주의(제 추측)
깔고 시작하는 걸 보니 글쓴이는 이미 이곳에 계신분과 건설적인 이야기를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 보입니다. 블라인드합니다.
조아마1
2025-01-18 22:51:10
결국 그 수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헌병이나 군인을 동원해 무력으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양국간에 극단적인 환율차이를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이를 이용해 본국에 비해 헐값에 사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일본 본국기준 봉급을 받는 일본인 헌병/군인을 고용해 강제로 수탈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경제적이었을테니까요.
당시 매국노 조선인 지주들은 자국민이 굶어죽던말던 일본에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팔아 부자가 되면 그만이었을테고
위안부나 징용, 군대 동원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굳이 비싼 일본인 헌병을 동원해 힘들게 강제로 끌고 갈 필요도 없이
당시 악질 조선인 브로커들한테 고액 해외근무/파병으로 인신매매 사기를 치게 해서 스스로 오게 해 넘겨받으면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지금도 일본정부에서는 쌍방간의 합법적인 계약서가 있네 뭐네 하면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거구요.
그런데 이 인신매매 사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본국에서도 상당수 벌어지긴 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위안부/징용 문제는 일본인 희생자들과 연계하는 것이 훨씬 더 충격적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두라돌
2025-01-18 22:54:05
극단적인 환율차이요?
당시의 환율체계는 금환본위제였습니다. 이 말은 시장환율과 법정환율이 괴리될 때 법정환율이 시장환율에 접근할 때 까지 무한히 자본유출이 일어나게 됩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조선은 매일매일 외환위기를 달고 살았을겁니다. 소로스가 떼돈벌 얘깁니다. 당시의 환율 시스템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무력으로 빼앗는것이 아니라는 인식은 동의합니다.
조아마1
2025-01-18 23:38:05
당시 금본위제는 일본엔에만 (그것도 잠시) 해당되고 식민지용 조선엔은 일본엔과 등가교환이 원칙이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데다가
아예 무늬로도 금본위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조선엔의 보증발행이 점차 늘어 나중에는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www.bok.or.kr/portal/bbs/B0000218/view.do?nttId=10017609&menuNo=200&searchOptn2=&pageIndex=11
안그래도 일제강점기 내내 무역적자였는데 해방직전에는 아래에서처럼 수탈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 넘는 막장짓까지 하기도 했었구요.
https://m.blog.naver.com/moowon0112/221831448182
두라돌
2025-01-18 23:48:49
원래 엄밀한 의미에서의 금본위제는 영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위 댓글에서 금"환"본위제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금반출입이 뚫려 있는 금환본위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보증발행은 정부 재정의 건전성에 의해 제약받으면서 가능할 수는 있지만 말씀하신것 처럼 환율을 조작해서 대규모 수탈을 할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도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무역적자얘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
링크하신 글은 차현진씨의 글로 알고 있습니다. 제 글의 일부에도 이 분께 배운 흔적이 있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해방 직후 통화량의 증가는 대차대조표상 통화량 폭증의 메커니즘이 깔끔히 이해가 되지 않아 제게는 조금 미스테리입니다.
조아마1
2025-01-18 23:58:45
환율조작이 아니라 시장독점으로 무역적자를 유도해 벌이는 인위적인 환율유지를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이는 "최소비용 최대수탈"이라는 당시 열강들의 전형적인 식민지 경영원칙에 입각한 것이구요.
만일 식민지가 아닌 순수한(?) 마음에서의 한일병합이 이루어졌다면 조선엔이 아닌 일본엔을
그대로 사용하게 해서 양국이 진정으로 하나의 경제권이 되었을 겁니다.
아무튼 다음 글에서 더 말씀하신다고 하시니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라돌
2025-01-19 00:10:02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무역적자를 유도한다고 하셨는데 무역적자는 대부분 면포와 같은 소비재와 기관차같은 사회간접자본재의 수입이었습니다. 이러한 재화의 수입이 총독부가 유도한것이라는 말씀은 잘 납득이 안갑니다.
또한 무역적자가 조선엔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만 반대로 무역적자를 결제할 수 있는 일본엔의 유입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총독부는 동경채권시장에서 엔화를 빌려서 그 돈으로 철도장비를 사서 조선에 들여온것이고 그것이 경상적자로 잡힌건데 그것이 어떻게 환율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긴지 잘 이해가 안갑니다. 총독부는 외환시장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는데요..
조아마1
2025-01-19 00:42:30
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식민지가 필요로하는 대량의 상품을 오로지 지배국에서만 구매하게 독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만일 필요한 물건을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일본에 대해 무역적자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거꾸로 경상수지 적자가 나는데 어떻게 조선엔 가치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지가 오히려 더 궁금합니다. 말씀하시는 총독부의 철도차량구매 일본엔 직접결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총독부가 스스로 일본엔을 찍어낼수 없는 이상 결국 조선엔 세금을 받거나 화폐를 찍어내 이를 일본엔으로 환전해서 갚아야 했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일병합으로 인해 일본엔과 조선엔은 등가교환(=고정환율)이 원칙이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인에게는 교환해주지 않아서 결국 시장에서 실질환율로 교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총독부도 일본정부로부터 일본엔을 받아 굳이 불리한 고정환율로 조센엔으로 바꾸지는 않았을테구요. 그 실질환율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기가 힘드네요.
두라돌
2025-01-19 00:51:54
일제는 20년대 들어서 회사령을 폐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조선에서의 회사설립제한을 철폐합니다. 그리고 조선방직은 10년대, 경성방직같은 대기업은 20년대에 들어섰으며 3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질소주식회사가 아예 함경도에 와서 영업을 하였기 때문에 오로지 지배국에서만 구매하도록 독점한다는 의도를 총독부가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엔 직접결제는 하나의 예일 뿐이고 구체적인것은 국제수지표를 보시면 납득이 되실겁니다. (아니 복식부기인데 납득이 안될 수 없지 않습니까?) 대략 30년대 후반까지 경상적자는 일본에서의 차입으로 매꿔집니다. 조선총독부는 동경채권시장의 큰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차현진씨는 일본정부가 "조선이 우리한테 떡이야 혹이야?"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옆집 인수했더니 그집아들 사업자금 대주는...) 국제수지표는 김낙년의 "일제하 한국경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40년대로 가면 전시기에 강제저축을 통해 오히려 조선이 일본에 자본을 수출하기는 합니다. 조선엔은 일본엔과 1:1교환이 된게 맞습니다. 만약 실질환율이 달랐더라면 차액거래가 발생할테니까요.
조선엔-일본엔의 자유로운 태환이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큰 문제입니다. 관동주와 만주에서의 법화가 조선은행권이었는데 자유태환이 안된다면 일본, 조선, 관동주, 만주국과의 관계도 모두 교란됩니다.
조아마1
2025-01-19 01:19:36
네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실질적인 등가교환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굳이 조선엔을 그것도 금본위가 아닌 보증발행까지 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일본엔으로 통일하면 되니까요. 물론 앞서 말씀드렸듯이 총독부는 필요에 따라서 일본인들에게 등가교환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시장에서는 자유롭게 변동환율로 거리가 가능했을 거구요. 이는 정부의 고정환율과 시장의 변동환율이 이중적으로 적용으로 되는 지금의 일부 국가들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역사적으로도 고정환율이 제대로 유지된 경우는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마 아시겠지만 어차피 조선은 대규모로 쌀을 수출했던 딱 두해를 제외하고 나머지 해는 모두 무역적자를 냈습니다. 이렇게 무역적자를 내면 당연히 이익을 내는 것은 일본 본국이고 손해를 보는 것은 식민지일 것입니다. 안그래도 만성적인 재정적자까지 내고 있는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원할한 식민지 경영을 위해 어떻게는 이 쌍둥이 적자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적을 내야하는 면에서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국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할수도 있을 겁니다.
두라돌
2025-01-19 01:29:57
총독부의 세입은 대략 네 가지 원천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세, 공공서비스요금(철도), 그리고 조선은행 차입과 동경채권시장 차입입니다. 조선은행에서 차입을 하면 그걸 보증발행이라고 부르는 거구요.
결국 일본엔으로 통일을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셨던 거군요. 이는 조선엔이 관동주의 법화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엔과 통합해 버리면 안정성에서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가능한한 1:1을 유지하지만 여차하면 금환본위제를 깰 준비도 되어 있었고 실제로 전시기에 그랬습니다. 제국의 방파제로써의 역할을 조선은행권이 했기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조선은행권과 일본은행권은 시장환율과 별개로 동등한 통화로 인식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하죠. 조선은행권은 바로 금으로 바꿔주는 통화가 아니니까요.
무역적자를 내면 당연히 이익을 내는 것은 일본 본국이고.... 이 말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겁니다..
마지막으로 진지한 댓글 감사합니다.
조아마1
2025-01-19 01:41:27
네 이는 당시 열강들의 착각이기도 했습니다.
지배국의 지속적인 무역흑자는 산업을 끌어올릴수 있지만
결국 식민지들이 영원히 갚지못하는 빚으로 남게 되는데
이를 그만큼 식민지에서 원자재를 싸게 수탈하거나
다른 이권 등으로 충분히 메꿀수 있다고 생각했었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이익을 낼 수 있었던 식민지는
엄청난 땅이나 자원을 가진 극히 일부의 경우이지만요.
이제 정말 자러 가겠습니다.
바다
2025-01-19 01:17:58
이분 왜 계속 여기서 이러는지..
보리보리
2025-01-19 01:30:20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스시러버
2025-01-19 07:54:02
"일본이 강제로 약탈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아직 조선왕조가 멀쩡히 살아있던 시절입니다."
- 일본이 민비까지 고작 몇십명으로 죽여버렸는데, 멀쩡히 살아있다고 할수 있을까요?
brandict
2025-01-19 08:25:10
덕분에 게시판에 블라인드기능이 있는걸 배우고 갑니다
뉴욕주민
2025-01-19 09:19:37
이런 미친 글이 올라오다니... @마일모아 게시글 삭제 요청합니다.
봉잡았네
2025-01-19 09:21:32
뉴라이트가 쓴 책 한권 읽고 역사학자들보다 더 안다고 생각하는 용감함....
nysky
2025-01-19 09:21:40
아무리 역사적 사료를 가져다 준들 이런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토론/논란 이슈 자체가 뉴라이트의 주 목적입니다.
좋게좋게 봐주다보니 뉴라이트애들이 수면위로 확 부상됐었죠.
엣셋트라
2025-01-19 09:28:28
가설: 일제는 조선을 수탈하지 않았다.
근거: 일제와 조선의 쌀 가격이 같이 움직인다.
데이터는 제가 맞는지 틀리는지 체크할 능력이 안되니 그렇다 치고, 수탈이 있었다면 두 시장의 가격이 같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셔야할 것 같은데요?
football
2025-01-19 11:03:26
현재 공직에 계신 분들과 외교관 분들께 상당한 실례 아닌가요. 추가로 시험이나 취직 준비하는 분들께 말씀하신 논리가 통할지 모르겠지만, 근현대사 공부를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사실로서의 역사 or 기록으로서의 역사로만 사실관계를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근현대사 학습하신 교과서가 교학사인지요... 많은 학교나 취업 준비할 때 금성교과서로 학습하지 않았나요.
손만대도대박
2025-01-19 11:26:06
이분 앞으로도 계속 게시판을 이런 글들로 도배할
모양이신가 본데..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요? 충분히 정치 시사글 같고 충분히 논란을 만들려고 노력하시는 글 같은데.. 이제 적당히 하시는게 어떨까요? @마일모아
네꼬
2025-01-19 11:53:03
https://www.milemoa.com/bbs/board/7729007
의도적으로 정치시사글 계속해서 올리며 예고하면서 논란거리 만들지 마세요. 규정위반입니다.
포트드소토
2025-01-19 11:55:57
이런 분들 알고도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쉽게 속는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근데 공식적인 역사책이나 그런게 흔한데도, 굳이 꼭 이런 음모론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게 이해가 안되요.
쌤킴
2025-01-19 12:33:16
저두 덕분에 블라인드라는 기능을 배우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kaidou
2025-01-19 17:02:24
계정 해킹당하신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작년 4월까진 안 이러셨는데..갑자기?
modernboy
2025-01-20 16:48:04
조일관세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 않은 상태에서 조선과 일본의 쌀시장이 하나로 수렴해 갔다는 가정은 사실상 불성립한다 봅니다. 미시경제만 보고, 거시경제는 간과한 측면이 큽니다. 관세는 국가 수입원으로도 중요하지만, 국내산업 보호 및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 자유국제무역 체제 내에서도 내수경제를 고려해 상당부분 용인됩니다. 사실상 무관세였던 개항기 조일무역은 그런점에서 기형적이고 수탈적이었다고 봐야합니다. 이후 미국, 청, 영국 등과 맺은 관세조약은 조선이 비교적 관세자주권을 지킨 국제무역으로 여겨도 무방합니다. 관세 외에도, 차관에 대한 논의 역시 부재한 상황에서 수탈론은 오류다 라고 결론짓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19세기말 당시 개발도상국인 일본이 이를 통해 획득한 이익은 일본내 저가 미곡정책, 저임금을 가능케 하여 추후 일본이 손쉽게 자본축적을 이루고 산업혁명을 압축적으로 달성하는 원인이 됩니다. 군수물자 확보에도 박차를 가해, 추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승리를 이룸으로 비로소 아시아 최초 근대 제국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에 반해 조선은 대량 미곡유출로 인해 실질적 미곡가격이 폭등하고 상대적 생활수준 저하가 심각해지고, 여기에 각종 부패와 맞물려 임오군란, 동학농민혁명 등 각종 사회혼란 발생 및 생산력 제고에 치명타를 입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빠져 국가파탄 및 식민지의 길을 갔다고 봅니다. 그렇게 제국의 길과 식민지의 길은 동시적로 발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