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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의사의 몫

참울타리, 2025.12.14 16: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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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냥 남들처럼 웃으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병실을 걸어 나올 수 없었을까.

 

37세 말기 위암으로 인한 장폐색 환자를 보기 전,어제 내가 쓴 글에는 마치 주문 같은 다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오늘 그녀와 삼십 분 남짓 이야기를 나눴고, 그 끝에 거의 탈진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내 몸에는 더 이상 병동을 돌 만큼의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오늘 회진 돌 때 나는 혼자 그녀의 병실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함께 근무하는 수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해 같이 회진을 돌았다. 다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음을 미리 알렸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말기 위암이 복강을 가득 채운 상태였다. 외과팀은 장폐색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장루 수술을 제시했지만, 수술 이후에도 곧 다른 폐색이 찾아올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제 말씀드린 수술에 대해 가족분들과 이야기해 보시고 결정을 좀 하셨나요?”

“네, 수술 받기로 했어요. 다른 선택지는 없잖아요.”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녀의 결정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다만 그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까지를 감수하는 선택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수술의 한계와 재장폐색의 가능성,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삶이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항암 치료를 계속할 의향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항암을 하면서도 몸이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의 전신 상태로는 항암 치료를 버텨낼 체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나의 대답에, 병실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 없나요?”

 

“수술은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입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수술은 안 할래요. 수술만 하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수술을 포기한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한결 가벼워 보였다. 이후의 대화는 완화 치료에 대한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먹을 수 있기를, 통증이 잘 조절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유동식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자고 했고, 먹는 진통제의 한계 때문에 입원 호스피스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음을 설명했다.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집에서 받는 호스피스는 없나요?”

 

장폐색이 있는 상태에서는 재택 호스피스에서 선택할 수 있는 통증 조절 방법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는 예전에 통증 패치도 써봤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나는 사회복지사와 호스피스 팀에 재택과 입원 치료 중 어떤 선택이 더 적절할지의뢰해 보겠다고 말했다.

 

“어제는 왜 아이들이 병원에 오지 못했나요?”

 

“아이들이 아직 열여섯이 안 돼서 병원 규정 때문에 못 왔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국 병원의 유연하지 못한 규정 때문에 내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 서른일곱 살의 엄마는 보고 싶은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를 억누른 채 수간호사 선생님께 이 경우가 예외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한으로 아이들이 오늘 병실을 찾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No one should be left alone, especially in moments like these.
Their final days should be spent surrounded by the love of their family.”

 

그 선언문 같은 내 대답 끝에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나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혹시 울어버릴까 봐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깡마른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오늘의 삼십 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처럼 느껴졌다.


혼신의 연주를 끝낸 뒤 지휘자가 느끼는 탈진이 이런 것일까. 소화기내과와 외과는 나의 긴 환자와의 대화로 한결 가벼워진 노트를 남기고 떠났다. 아마도 이 수고는 병원에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수술 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야 했던 작은아버지의 마지막과 같은 장면을 적어도 이 병실에서는 반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은 신의 몫이고, 공감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안겨주는 일은 이름 없는 한국인 의사의 몫이었다.

52 댓글

daddyryu

2025.12.14 16:52:32

그환자분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ㅠㅠ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울타리님.

참울타리

2025.12.14 17:25:25

그녀의 마지막이 평안하길 바랍니다. 아이들과 행복한 기억을 남기고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죽마고우

2025.12.14 19:03:33

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참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라고 느낍니다.

참울타리

2025.12.14 19:06:07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Kailua-Kona

2025.12.14 21:16:10

모든 의사분들이 참울타리님처럼 환자들을 대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횐자들을 향해 진심어린 마음으로 대해주시는 모습에 마음에 감동이옵니다. 다만, 너무 지치시지 않게 감정을 회복하시는 부분도 잘 챙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울타리

2025.12.14 23:09:55

오늘은 좀 많이 지치는 하루긴 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은계란

2025.12.14 21:28:27

울타리님 글은 볼때마다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는데.. 오늘 글은 유독 많이 슬프네요. (ㅠ_ㅠ) 저도 눈물이 핑

참울타리

2025.12.14 23:10:25

저도 울컥했어요. 너무 젊디 젊은 엄마라서...

지지복숭아

2025.12.14 22:15:38

좋은 글과 경험 감사합니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건 축복이지요. 저는 항상 서류 작업 해주시기싫어하거나 비협조적인 분들을 너무 많이만나서 회의감이 들던 찰나에 좋은 글 읽고 언젠가 저도 좋은 선생님 만나길 바래봅니다.

참울타리

2025.12.14 23:10:44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rodigy

2025.12.14 22:15:57

아이고 ㅠㅠ 참울타리님 같은 의사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저 영어로 올려주신 부분에 순간 울컥하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참울타리

2025.12.14 23:11:40

실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저 문장은 한국어로 뭐라 쓸지 생각도 안 나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alypso

2025.12.15 06:04:16

아침에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항상 환자를 생각하시는 참울타리님 존경스럽습니다.

참울타리

2025.12.15 06:29:1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립소님 건강하세요.

느리게걷기

2025.12.15 06:54:01

선생님의 글을 읽고, 무덤덤하게 시작한 저의 이 월요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하루가 될 수도 있을테니 오늘을 좀 더 의미있게 살아가보려고 합니다. 소중한 글 나눠주셔서 감사하고 마음을 다해 환자 한 분 한 분을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울타리

2025.12.15 07:46:40

제 뜻을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Monica

2025.12.15 08:02:03

저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40대 초반에 위암으로 간 기억이 있어서 특히나 더 맘이 아프네요.  

제 친구는 애는 없었지만 이분은 아직 어린 애들이 있어서 엄마로써 참 걸릴거 같아요.  그 맘을 누가 알수 있을까요. 

가족과 마지막 인사 잘 하고 너무 고통없이 잘 가셨으면 좋겠네요.  ㅠㅠ

 

참울타리

2025.12.15 08:24:16

말기암을 자주 보긴하는데 이 분은 너무 젊어서 맘이 참 아프더라구요.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 보내시고 편안히 가셨으면 좋겠어요.

으리으리

2025.12.15 08:48:46

마지막 말씀에 제가 울컥하네요. 내가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음이 감사한 하루 입니다. 마음 쓰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참울타리

2025.12.15 10:37:18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뉴비

2025.12.15 09:21:15

저도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껴야겠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 했더라도 수술 같은거 무서워해서 의대는 못 갔을거 같습니다. 모든 의료진분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참울타리

2025.12.15 10:38:01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이잉

2025.12.15 10:49:20

그저 가슴이 울컥하고 찡하고...참!!! 참!!! 참!!!

글 잘 쓰십니다!! 참울타리님 먼 곳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계속 훌륭한 의술 펼쳐주시길!

참울타리

2025.12.15 11:53:12

응원 감사드립니다!

반짝반짝

2025.12.15 10:56:17

저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 환자분이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고통스럽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정성으로 환자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울타리님도 지치지 않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참울타리

2025.12.15 11:54:18

어제 참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그녀가 짊어진 무게가 너무나 맘에 다가와서요. 응원 감사합니다!

된장찌개

2025.12.15 15:14:12

답글을 달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이번 글은 마치 바로 곁에서 목격하는 가족들 이야기 기분이 들었거든요. 묵직한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의사도 정신적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참울타리

2025.12.15 15:27:32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파카랑

2025.12.15 17:51:31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참울타리

2025.12.15 17:52:49

감사합니다!

앗초코

2025.12.15 19:28:40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환자분과 가족, 그리고 글쓴이 의사분과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 평안이 있길 바랍니다.

참울타리

2025.12.16 03:01:5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안이 함께 하시길!

외로운물개

2025.12.15 21:18:30

참울타리님의 글은 꼭 사람의 심금을 울려버리는군요..

누군가 마지막에 의지할분이 님이라서 다행이기도 싶네요...

고통을 나눌줄 아는 참 의료인 존경 스럽습니다...꾸벅

참울타리

2025.12.16 03:02:18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개님.

무지의향기

2025.12.16 11:16:38

이름도 모르는 그 한국인 의사분 참 고맙다. 그 젊디 젊은 삼십대의 엄마가 아이들을 만나며 선생님 기억할 것 같아요.
저도 고맙습니다. 그분께 지금 꼭 필요한 것을 챙겨주셔서, 그리고 나눠주셔서... 

참울타리

2025.12.16 11:21:15

감사합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해도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졸린지니-_-

2025.12.16 12:19:07

무슨 댓글을 달아도 이 글에 나오는 모든 분들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을까요.....

뭘 달아도 그 마음들이 퇴색될 것 같아서 댓글을 남기기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그 위에 제 마음도 보태고 가겠습니다.

참울타리

2025.12.16 12:33:02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피하키

2025.12.16 13:06:53

원래 눈물이 좀 많은 편인데..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마지막에 또 울컥했네요. 어린 아이들이 엄마를 볼수 있게 병원의 규정을 오버라이드 해주셔서 제가 대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갑자기 뇌출혈로 수술하러 들어가셨다가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한테 잘 가시라고 인사를 못드린게 두고두고 마음에 한이 되네요.  

참울타리

2025.12.16 13:21:3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일보다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sono

2025.12.16 14:44:36

항상 쓰시는 글 읽을때 마다 진짜 참 울타리가 되어주시는 선생님이구나 싶어요

인술을 펼치시는 보기 드문 분

이런 분들이 많아야할텐데..ㅠ 늘 감사드립니다

참울타리

2025.12.16 15:11:56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도 매번 이렇게 행동할 순 없고 되도록 양심에 거스르지 않는 선택을 하려할 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건축가

2025.12.17 11:01:47

너무 슬프네요 ㅠㅠ 아침부터 가슴 아프지 하지마용 ㅠㅠ

매순간을 가족과 지인들과 의미있고 행복하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울타리

2025.12.17 11:51:12

마음 아프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하루 하루가 감사함인데 잘 모르고 살지요

Infinity

2025.12.17 11:58:48

너무 잘읽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 그리고 늙어가는 부모님을 둔 입장에서 너무 슬픈 글이네요. 

요즘 점점 부모님이 늙어갈수록 더욱 제가 눈물이 많아지는거 같습니다. 특히 그 "엄마", "아빠" 라는 단어를 들을때마다요... 항상 옆에서 같이 웃으면서 안아프게 지내고 싶지만.... 참 인생이라는게 좋은것만 있는게 아닌듯싶습니다. 참울타리님의 배려덕에 엄마의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엄마를 조금이나마 더 눈에 담을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실때 더 부모님찾아뵙고 시간을 보내야겠네요~! 다들 가족과 따뜻한 크리스마스되시길 바랍니다.

참울타리

2025.12.17 12:48:06

언젠가 하는 이별이지만 참 마음 먹먹한 이별입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Ajolbaji2020

2025.12.17 18:20:47

마지막 구원은~ 부분을 깊이 공감합니다.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감사해야 하는데... 축복된 클수마스가 되길 바랍니다. 

참울타리

2025.12.17 22:57:3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monk

2025.12.18 02:55:22

항암과 수술을 경험한 환자로써 넘 감동적인 글이네요. 이렇게 따뜻한 참울타리님을 만난 그 환자분은 그래도 다행이다 싶네요.

지금처럼 의술과 인술을 함께 펼치는 멋진 의사샘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남아주세요.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참울타리

2025.12.18 04:06:48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돌팔매

2025.12.18 08:50:15

그 환자분의 구원, 남겨진 아이들, 그리고 참 울타리님을 위해 기도 함니다. 시간내서 메마른 우리의 삶에 감동을 주는 소중한 글 올려주신  참 울타리님 감사함니다. 

참울타리

2025.12.18 09:50:29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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