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자던 2호가 우리방에 놀러왔다. 외가 식구가 합류하면서 여자와 1, 2호가 한 방을 썼다.
아침 먹고 호텔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던 여덟 식구 모두 점심 때가 돼서야 나왔다.
점심 먹으러, 한국 식당에. 장인 장모님 덕분에 외지에서 한식당을 다 찾게 되었다.
산해진미랄 건 없지만 그래도 다양한 음식 두고 흰밥에 김치만으로 식사를 마친 3호.
식사를 마치고 처가 장인,장모님과 처형을 택시 한대에 모시고 부자묘에 갔다. 남은 나와 1, 2, 3호.
호텔 주변을 탐험(?)하기로 했다. 작년에 없던 공공 자전거, 색마다 다른 회사로 십여개가 넘는단다.
주변에서 눈에 띄던 페어몬트 호텔 빌딩. 막상 코 앞에 놓고 보니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어진 상가 건물은 이색적이었다. 일단 화랑이 많았다.
화랑은 난징 시내에서 보기 힘든 '업종'이었는데 이 상가에선 쉽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많은 미술학원. 언듯 봐도 그림 가르치는 단순한 학원 같지는 않다.
둘러 보니 각종 아이들 학원이 밀집돼 있었다. 영어 학원에 탤런트 학원, 심지어 레고 학원까지.
현대적이고 화려한 북카페도 있었다. 단순한 쇼핑몰은 아니었다. 동네의 기풍(?)을 느낄 수 있었다.
페어몬트 상가를 빠져나와 뒷 골목으로. 한 블록 벗어났을 뿐인데 거리 분위기가 달랐다.
저렴한 식당이 즐비했고, 하드 파는 구멍가게도 있었다.
"지금쯤 엄마 왔겠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마침맞게 두 팀 모두 호텔로 돌아와 식당으로 직행. 3호는 또 잔다, 결국 저녁도 못먹고.
다음날 아침 눈뜨니 창밖이 흐리다. 페어몬트호텔 상반신은 구름에 덮혀 보이지 않는다.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빗소리 들어 오라고 창문을 열어뒀다.
3호는 비를 만지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어제와 같이 처는 아버님 어버님을 모시고 관광을 갔다. 비가 오니 박물관으로 가겠다 했다.
오후엔 처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비가 여전했다.
미국에서 알고 지내는 중국인 친구가 고향, 난징을 방문했다. 처를 보자 반갑다고 뛰어 온다.
이곳에서 자란 친구는 떠났고 이젠 친구의 어머님과 아버님 두 분이 사시는 집이다.
할머니가 내준 자두를 야물딱지게 먹어재끼는 2호.
손녀 룰루는 손님들에게 그간 배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흐믓하고 반가운 마음에 피아노를 답례로 연주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어른들의 수다. 1호는 룰루가 가져온 책을 빌려 읽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어르신의 벽엔 구식 종이 달력이.
언제 다시 여기서 이렇게 모두 모일지 모르는 순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두 가족이 저녁을 먹으로 나섰다.
가까운 곳에 예약을 했다며 25분을 걸어갔다. 이게 대륙의 '포스'?
비 맞고 올만한 식당이었다. 이 집은 화궈(hot pot)를 사람마다 준다. 식탁보 아래 전기 히터도 독특했다.
소고기, 양고기와 다양한 야채에 2, 3호도 흐믓한 듯.
2, 3호와 달리 1호는 개인 화궈를 받았다. 걱정스러웠지만 사고 없이 잘 먹어냈다.
후식을 먹을 즈음 미국의 이웃 친구가 합류했다. 난징이 자주 보던 사람을 신기하게 만들어줬다.
*
이번 난징에서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집이라도 온듯한 편안함으로 보냈습니다.
중국말은 인사말도 겨우 하는 처지인데 '가이드'를 하기도 했고
볼거리를 찾아 나서지 못해 호텔방에 박혀 있는 순간도 느긋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처가 식구와 만나고, 또 미국(에서 만난) 친구와의 만난 일은
난징을 더 좋은 느낌으로 간직할 핑계(?)가 될 것 같네요.
그렇지만 한해 사이 안타깝다고 할까 우려스럽다고 할까 하는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그저 내 느낌 뿐이었다고 믿고 넘깁니다만
왠지 이제는 (한동안) 난징에 다시 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