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의 추억

barnacle 2020.03.29 05:26:45

여기 게시판을 읽다 보니 현재 발생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하여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심지어는 메르스 때 잘못한게 뭐냐라는 말도 듣는데, 부정확한 비교가 많은 것 같아서 답글을 달려다 글을 새로 하나 팝니다. 저 의료인도 아니고 분야 전문가도 아닌, 완전체 서민인데 메르스 사태 때 한국에서 제 아이가 태어났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 아이가 2개월째 가정에서 준 격리 상태에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두 정부 시스템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메르스 때를 떠올리면, 단순히 무능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반인들을 매우 당황하게 했던 당시 정부의 미묘한 막장성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1. 정부가 정보공개를 거부한다. 그리고 위협을 한다.

일단 정부가 정보를 감추는 것도 아니고 공개거부한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구 천만 밀집 도시에서 전염병이 도는데 정부가 너희는 알 필요 없음이런 식인 것이죠. 출산 예정 15일 전인데,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발병 병원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합니다. 아이 출산하러 병원가야 하는데, 전염병 발생하는 곳으로 가는지 아닌지 전혀 알수 없어서 맘카페 정보를 취합해서 동선을 정해서 진료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감염 병원 명단 공유하면 메르스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구속까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와이프도 병원명단 퍼다가 날랐는데, 졸지에 잠재적 처벌 대상자가 되어버립니다.

 

 

2. 책임자가 없다. 그런데 국민은 야단을 맞는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데, 대통령은 재난 컨트롤 타워 아니랍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국가를 위해서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답니다. 그러면 국무총리가 뭔가 해야할 것 같은데, 국무총리가 없습니다. 공석이에요. 그 다음 서열은 초이노믹스의 그 부총리인데, 유럽으로 해외출장을 갑니다. 대통령은 미국방문이 예정되어 있는데, 방문 취소한다는 이야기를 최후 순간까지 안합니다.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이 정말로 미국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하루는 교육부 장관은 학교 휴업하자고 하는데, 보건복지부는 같은 날에 교육부 반대성명을 냅니다. 다음 날에 서울 시장이 메르스 감염자의 동선을 긴급발표하는데, 보건복지부와 청와대가 서울 시장을 공격합니다. 참고로 연방제 국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는 그 유명한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하세요를 공식적인 정보로 올려놓고, 메르스 핫라인은 연결은 유료(?)로 운영합니다.

와이프가 이제 산통이 조금씩 오기 시작해서 아기 낳으러 가야 하는데, 정부도 산부인과 병원도 명확한 지침이 없으니, 우리 가족은 대혼란입니다. 거기다 경찰.검찰.법무부.청와대 모두 메르스 감염이 일어난 병원 이름을 SNS에 올리면 유언비어유포-업무방해-명예훼손죄로 엄단하겠다고 합니다. 그냥 정확한 정보 파악해서 안전하게 아기 낳고 싶은 것 뿐인데, 야단맞고 엄하게 범죄자 취급 당합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그 와중에 역사에 남을 살려야 한다표어도 유명하지만, 그보다도 저는 박근혜 전대통령이 말한 “...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방안을 마련할지 이런 것을 정부가 밝혀야 합니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러시아식 유머도 아니고, 진짜로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정부를 비판합니다.

 

 

3. 질병관리본부 단상

지금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조직이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본은 메르스 사태 중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최초 확진자가 바레인에서 왔다고 검사해달라고 했을 때 매뉴얼에 맞지 않다고 거부하고 지역 병원으로 보낸 전력이 있습니다. 최초 확진자가 메르스 검사를 안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위협(?)해서 검사를 받았다는 설은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대혼란에 빠져서 SNS로 병원명단 교환하고 있을 때 질본은 공식 트위터를 닫아버렸다가 무지하게 비판받고 3일 후에 여는 등 혼란이 계속된 끝에, 지금은 익숙한 인물이 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포함해서 9명이 메르스 사태에 대한 징계를 받았습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질본에 대한 저의 이미지도 저 정보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였고, 하여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4. 사태가 끝난 후

하여간 아기는 그 혼란 속에서도 격리된 산부인과에서 태어났고, 저는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국가와 공공조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자질도 문제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년 지난 상태였는데 국가조직이 이렇게까지 막나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죠. 메르스 피해자들이 세월호 피해자들처럼 조직될까봐 감시했다는 매우 뒤끝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이 막나가던 조직을 그대로 20175월에 물려받은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대응하는 현 정부입니다. 최종적인 평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끝나봐야지 알겠지만, 두 사태를 한국에서 온몸으로 경험한 일반인 입장에서는 현 정부가 적어도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국가조직을 닦달해서 마지막까지 갈 것이라는 느낌은 듭니다. 마지막에 받는 것이 좋은 결과이던 아니던 간에 말이죠.

 

 

모두들 어려운 시기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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