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국 군인들 존경하는 문화는 언제 봐도 부럽습니다. (한국 고등학교 위문 편지 사태 관련)

redcloud 2022.01.11 22:44:04

저는 30대 후반에 늦게 공부를 시작한 고학생입니다. 벌써 학기가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시작하려니 체력도 안 받쳐주고 참 힘든 모양입니다. 공부가 안된다는 핑계로 여기 저기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뉴스나 보고 있었는데, 참 안타까운 뉴스가 하나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더군요. 한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제로 위문편지를 쓰라고 했는데 몇몇 학생들이 거기에 반발해서 오히려 군인들을 조롱하는 편지를 썼답니다. (아직 사태 진행 중이라 이 문장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선생님들께서 강제로 편지를 쓰게 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분명 잘못이겠고.. 강제로 쓰라고 했다고 애먼 군인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조롱한 학생들도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한국에서 강제 징병 2년을 포함하여 30여년을 살고, 미국 땅에서도 10여년을 살아온 저로서는 한국에서 군인들을 조롱하고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꽃다운 시기에 강제로 군대에 끌려 가서 원치 않는 훈련과 구타 및 악습에 고통받으며, 그래도 내 조국과 국민들을 지키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기에는 한국에서 군인들 대우가 너무나 열악한 듯 합니다.

 

그나마 이 열악한 와중에, 최근 정부에서 사병들 월급을 올려주고, 일과 시간 이후에 핸드폰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등 사병들 복지에 신경을 쓰는 면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만, 아직까지도 월급 및 복지는 정상 수준에 한창 못 미칠 뿐더러, 일반 시민들은 남성, 여성을 떠나 군인들의 희생을 당연시한다거나 ("라떼는 더 했어"라는 워딩으로 시작되는) 쉽게 조롱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마 저 학생도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그 (고3의) 분노를 군인들에게 표출한 것이겠죠. 이번 사태는 학생 한 명의 잘못이라고만 보기에는 힘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이러한 군인에 대한 좋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에는 복잡한 역사 및 정치 상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군인들을 조롱하게 된 문화가 "공권력"의 두려움에 위축된 삶을 영위해왔던 한국 시민들에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보다 더욱 말도 안되는 군생활을 해왔던 소위 쌍팔년도 예비역들에게는 그저 쉬운 그린캠프처럼 보여 요즘 군대가 군대냐고 조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지금 강제로 징병 및 징용되고 있는 20대 초반 꽃다운 청춘들이 조롱을 당해야 할 당위성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미국 시민들의 현역 군인 및 베테랑에 대한 존경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마트에 가도 베테랑을 위한 주차 공간이 대부분 따로 마련이 되어 있고, 비행기를 탈 때도 베테랑들을 우선 순위로 태워주더군요. 그리고 군인 혹은 예비역이라고 하면 박수를 쳐주고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TV프로그램 'What Would You Do?'에서처럼, 군인들이 마트에서 사려고 하는 물품을 대신 계산을 해주는 장면도 제 두 눈으로 직접 여러 번 목격했죠. 물론 미국은 모병제이고 한국은 징병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대만 및 싱가폴 친구들에게 듣기로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그들의 국가에서도 한국처럼 자국 군인들을 홀대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이 추운 시기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감사하면서, 동시에 이 상황이 어린 고등학생에게 너무 인신공격 및 도를 넘는 비방으로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태가 그저 선한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조용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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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022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 조금 추가합니다.

 

(1) 젠더 이슈: 몇몇 분들이 이 사건을 젠더 이슈로만 바라보려고 하시는데 (물론 그래서 남성들이 더 열받은 것은 맞는 것 같지만) 저는 이 문제를 단순히 젠더 이슈로만 바라볼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밑에 댓글에 호크아이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출타 장병을 고의로 시비, 구타로 사망케한 사건, 위수지역 군인들을 대상으로 숙박, 음식, 피씨방, 노래방 비용 과다 청구, 대중교통에서 앉아서 휴가가는 군인에게 폭언 욕설 등 대상은 소수지만 모두 일반인들이 군인들을 까보는 의식 하나쯤은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제가 이 댓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출타 장병들을 고의로 시비 구타해서 사망했던 사건도 남자 고등학생들이었고, 군인들에게 욕설 폭언한 사건도 제 개인적으로 여성보다 남성들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남성들이 여성보다 문제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여성, 남성"을 떠나 "일반인들의 사회의 전반적 인식" 그 자체가 저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다시 마지막으로 강조하지만 개인 미성년자들만 표면적으로 희생양 삼아 비난하고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성년자의 일탈은 학교 측에서 교육하면 될 문제고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징병 및 징용 시스템에서 부당하게 희생되는 사병들과 시스템,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2) 정치 이슈: 세상에 거의 모든 문제는 정치적인 이슈로 귀결되기 마련이고, 물론 이 문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 저는 여당 야당, 혹은 진보 보수 이야기하려고 올린 글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일반인들이 보는 군인에 대한 인식" 그 자체를 지적하려고 올린 것이고, 따라서 마일모아에서 금지하고 있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랑 별도로 논의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서 올린 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습니다. 한 분께서 남녀갈등으로 이득보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고 하시면서 제 의도를 의심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그 정치인의 반대 극단에 있는 현 정부가 사병의 월급 및 복지를 가장 많이 올려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는 진보 보수 등 한 때 마일모아를 시끄럽게 했던 정치 이슈가 아니라, 부당한 징병 및 징용 시스템에 희생당하고 있는 사병들과 그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인식에 집중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