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불어 좋은 날 – 양수리 느티나무

쿠드롱 2023.07.22 06:01:56

지난 3월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에 다녀올 마다 개인 일정으로 다녀오는게 아니다보니 시간에 쪼들려서 근근히 서울 시내의 맛집 군데 아니면 그간 기억나는 곳을 둘러 보기도 바쁘게 됩니다급하게 당일치기라도 다녀올까 싶어서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수소문을 해보니 평일날 갑자기 생계를 젖혀두고 하루를 제끼기에는 연식들이 오래되어버렸네요마음을 접었지만 동네에도 예전보다 일찍 벚꽃이며 개나리를 보니 한번 꽂힌 꽃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차도 없고, 동행도 없으니.. 대중교통으로 있는 근교를 생각해보니 예전 서울 살때 자주 갔던 양수리의 두물머리가 떠오릅니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팔당역에 내립니다. 전에는 차로만 다녔던 곳이었는데 세상 편하네요.

팔당역에서 오랜만에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들고 마을버스를 기다립니다. 사실 한국에 왔다는게 실감이 나는게 자판기 사이즈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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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저런 앙증맞은 크기의 컵은 만져본 적이 없는듯 하네요

세월이 지났지만 익숙한 길로 마을버스는 지나갑니다팔당댐 가는길에 수없이 많았던 낙서벽은 이제 새로 도색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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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기타 라이브 카페의 시조였던 봉주르를 지나 조안면 사무소에서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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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로 바로 가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곳, 기와집 순두부 때문입니다.

평일에도 사람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차가 없으니 겉절이와 미역무침에 동동주 낮술 한잔 하는 호사를 누릴 있어서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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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면사무소 앞에서 다시 두물머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미국에서는 차로 이동하다가, 표지판 하나 달랑 있는 시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느새 활짝핀 자목련, 진달래, 개나리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양수리 시장에서 내려 두물머리까지는 산책로가 되어 있어서 왼쪽으로 남한강을 끼고 걷다보니 두물머리의 아이콘,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되어서 주변에 펜스도 두르고 관리를 하지만 오래전에는 나무에 금줄도 걸어놓고 올라가기도 했었던 예전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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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뿌옇긴 하지만 느티나무 건너편에 앉아서 이렇게 기억을 되돌리다 보니 많이 들어봤던 영화 생각이 납니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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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익숙했던 영화였는데 사실 실제로 영화를 본건 언젠가 EBS 한국영화 걸작선였었고, 영화에는 동시대를 잠깐이나마 추억하게 만드는 많은 장면들이 있어서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혹시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https://youtu.be/GVHZTDG_Zxg

 

영화는 1980년에 개봉했으니 실제 배경은 1970년대말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개발이 한창이던 서울의 변두리에 홀홀단신으로 상경한 친구의 이야기로 기억이 납니다극중 이발소 시다로 일하는 춘식 (이영호)  이발소 도우미 미스유 (김보연) 데이트 하는 곳은 서울 성동구 응봉동 입니다. 멀리 한양대학교, 성동교가 보이고 건너 압구정 아파트 단지와 무너지기 전의 성수대교도 보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청춘들이 강북의 달동네에서 멀리 영동의 아파트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요

 

(실제 영화를 찍은 곳은 당시에 한창 개발이 이루어지던 지금의 강동구 천호동이고, 포스터에는 없지만 박원숙씨가 운영하는 중국집 주방장으로 김희라 씨가 나오고, 심지어 이발소 손님으로 최불암씨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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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극중 중국집 배달부인 덕배 (안성기) 방배동의 대저택에 사는 명희 (유지인) 심심풀이 상대로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양수리 두물머리 저 느티나무 아래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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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사람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요? 바람 불어 좋았던 그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