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지한 자의 은퇴 계좌 시작 이야기

한한 2024.02.10 09:05:43

2015년 11월 새벽 2시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미친듯이 흔들렸고, 갑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운전대를 꽉 잡고 브레이크를 연신 밟았지만 자동차는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에 커다랗게 닥쳐오는 벽을 보면서 집에서 자고 있을 아이를 떠올렸다. '미안해!' 운전대를 잡은 손을 놓고 몸에 힘을 뺐다. 눈을 감자마자 꽝! 에어백이 터졌다.  
  
벼락같은 소리에 아주 잠깐 정신을 잃었던 듯 하다.  
'어? 나 안 죽었어?'  
눈을 떠보니 몸이 심하게 떨리는 것 말고는 괜찮은 듯 했는데, 일그러진 보닛에서 연기가 마구 나고 있었다.  
급하게 문을 열고 나오니 뒤따라오던 차가 비상등을 켜놓고 운전자는 전화를 손에 들고서 나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다.  
'It was a deer! Are you okay? just called 911'  
고맙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던 운전자는 다시 경찰인지 통화 상대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듯 했다.  
  
새벽 2시에 가로등 하나 없는 길에서 번쩍번쩍 요란한 소리가 경찰차와 구급차가 출동했고, 나에게 이것 저것 질문을 했는데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은 잘 나진 않는다.  
경찰이 나를 근처 도넛 가게에 내려주었고, 그 날 같이 작업하기로 한 직장동료가 나를 데리러 왔다.  
예정 된 회사 작업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 했을 때, 잠든 아이 얼굴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있었다.  
  
삶에 큰 애착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날은 내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이 훨씬 더 컸었다.  
  
그 일을 기점으로 나는 박봉을 쪼개어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험을 최대로 들어두고, 은퇴 계좌에 얼마를 납입해야 하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로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추가로 생명 보험을 더 들었고,  
이직을 하던 때, 새 회사의 보험가입이 확인 되기 전까지는 매일 2-30마일 씩 타면서 좋아하던 자전거를 꾹 참고 타지 않았었다.  
  
나의 모든 저축과 은퇴 계좌는 오로지 아이를 위해 시작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자랑도 아닌, '가난에 최적화 된 삶'을 유년 부터 대학, 직장 까지 거치왔기에 은퇴 후의 삶을 구상하고 꿈꾸기에는 통장도 여유도 부족했었다.  
하지만 나 때문에 세상에 나온 아이는 나 처럼 보호막 없이 위태롭게 자라기 않기를 바랐다.  
  
은퇴 계좌와 Roth IRA에 max를 납입하고  
급여는 최저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무조건 저축 계좌에 넣었다.  
Dave Ramsey 팟캐스트를 매일 매일 들으며, 어떻게 첫 단추를 끼워야 하는지 배웠고, 6개월 생활비 저축이 모였을 때 부터 10년 20년 뒤 목표 금액등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그 때 아마 마일모아 같은 사이트를 알고 열심히 공부 했다면 지금 훨씬 더 수월 했겠지만, 그 때는 저축이 내가 아는 전부 였다.  
돈에 대해 무지했고, 주식은 잘 아는 사람만 할 수 있으며, 부동산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는 그야말로 'Financial Blind' 가 나였다.  
부끄럽지만 어쩌겠는가,  
  
다만, 아이가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해서, 요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면서 일정 부분을 떼서 주식 계좌를 열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로블록스 게임을 하면서 로벅스가 돈으로 얼마인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이야기하고, 
애플 와치를 같이 사면서 애플 주식도 한 주식 같이 샀다. 

틈틈이 주가 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싸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은 어렵지만,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시스템임을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 아저씨 이야기들도 하면서 아마존 주식 가격이 얼마인지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앞으로 대학을 가게 되면 렌트비가 얼마인지, 만약 집을 사서 모기지 론을 받으면 매 달 얼마가 들지 등도 논의한다.  

이런 금융 이야기를 집에서 자주 하다 보면,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 주제에 잘못된 정보를 주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오늘 새벽에 잠이 깨서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집을 렌트를 주고 두 번째 집을 구입하는 계획을 세우며 숫자를 끄적여 보다 문득,  
아.. 내가 이제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고마움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그래도 나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잘 들어주는 아이가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눈 뜬 장님이 반 쪽이나마 눈을 뜨게 해준 마일모아의 아낌없이 정보를 나누어 주는 분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하다.  


-- 저도 사과님이나 잭보울스키 같은 분처럼 돈도 되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드리고 싶은데 워낙 아는 게 없이 부족해서 많이 아쉽기만 합니다. 
글 솜씨 마저도 부족해서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