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부터 일하던 회사에서 이직하지 않고 계속 일하다 보니 50대가 되었습니다.
제 커리어의 황금기 전체를 이곳에서 보낸 셈입니다.
처음엔 작은 스타트업 였다가, 대기업에 인수합병되어 대기업의 일부가 되었다가, 몇차례 사업부 매각과 새로운 곳으로의 인수합병을 거치며 회사는 간판을 여러번 바꿔 달았지만, 저는 그동안 계속 자리를 지켰습니다. 최근엔 수년간 해마다 2,3차례 레이오프를 하며 엄청난 직원들을 쳐내는 과정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이 회사에서 그냥 은퇴까지 쭉 버텨볼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일이 생겼는데
최근 이 회사를 인수한 모기업이 파산을 해버렸어요.
그래서 회사가 문을 닫을거라는 공지를 받게 됩니다.
땡스기빙 연휴 직전의 일였습니다.
회사가 파산해서 아주 문을 닫는 상황이기 때문에 레이오프 였다면 기대할 수 있었을 것들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 COBRA 를 통해 의료보험을 유지할 수 없고요 - 회사가 없어지니까
- 세버런스 패키지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내팽개쳐지는 느낌입니다.
차라리 진작에 레이오프를 당했더라면 더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습니다.
1. 일자리를 곧 잃는다. 이제 무엇을 하지?
이 상황에 일단 두가지를 챙겨야 했습니다.
* 재정
인컴이 끊긴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계산해봐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여윳돈이란 게 있어본 게 몇년전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입니다. 세이빙 0 입니다.
401K 론과 HELOC 은 이미 진작에 탈탈 털어서 다 썼고 더이상 돈 나올 곳이 없습니다.
두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최후수단을 강구해 봅니다.
- 갖고 있는 부동산 자산을 처분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난 몇년간 차곡차곡 모아놓은 렌트주고 있는 조그만 부동산들이 몇개 있습니다. 급하면 그 중에 뭐라도 내다 팔면 어느정도 기간동안 생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팔려고 내놔도 실제 팔리기까지 몇달이나 걸릴지 모른다는게 문제입니다.
- 401K 에서 페널티 내고 택스 내고 인출해서 생활비로 쓸 결심을 했습니다. 위의 부동산 자산을 처분하기 전까지는 이걸로 버틸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 아주 급한 상황엔 Personal Line of Credit 에서 약 두달치 생활비 정도의 돈을 끌어다 쓸 수도 있지만 이건 이자가 거의 20%정도 라서 아주 급할때만 쓰기로 합니다.
* 가족
재정문제에 관해 대략적인 플랜이 세워졌으니 다음은 가족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안심시켜야 합니다.
P2 에게는 현재 재정상태와 앞으로 인컴이 끊긴 상태에서 생활비를 어떻게 조달할지 얼마나 조달 가능한지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고
타 도시에서 대학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회사가 파산해서 문닫게 되었다는 신문기사 링크와 함께 이런 메세지를 영어로 써서 보냈습니다.
- 내가 그동안 일하던 회사가 파산을 해서 곧 잡을 잃을 것이다. 우리 일상에 임팩트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대학 등록금은 문제 없이 계속 지불할 것이고, 먹고 자는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도 문제 없이 지불 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리타이어먼트 펀드에서 돈을 인출하고 투자한 부동산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새로운 잡을 구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만 최대 몇 달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잡을 구하게 된다면 남가주에 계속 살 수 있을 거라는 개런티는 없고, 다른 도시 또는 다른 주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될 수 있으니 염두에 두고 있어라.
2. 구직 시작
오랫동안 손보지 않던 이력서를 고치고
땡스기빙 연휴부터 바로 구직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링크드인에 나온 잡 포스팅을 보고 어플라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코딩테스트 준비를 병행했는데
이게 빡센 부분였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한 곳에서만 머물다 보니 그동안 채용 트렌드가 상당히 바뀌어 있었고 저는 그 트렌드에 뒤쳐져 있었습니다.
개발자 포지션으로 잡을 구하려면 일단 코딩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경력이 긴 개발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즘은 릿코드 스타일로 테스트 하는 회사들이 많고, 그건 실무능력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그냥 문제풀이를 하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썩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별수 있나요. 뽑는 사람이 그렇게 뽑겠다고 하면 그거에 맞춰야지요.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릿코드 문제를 풀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좀 적응이 안되었지만,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매일 시간을 좀 투자해서 풀었습니다.
최소 하루 한두개씩 시간이 좀 남으면 하루에 최대 15개까지도 풀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릿코드는 파이썬같은 언어로 풀 것을 권장하지만, 저는 릿코드 문제를 C++ 로 풀었는데
오랫동안 한 곳에서만 일하다보니, 그거 외에 다른 언어를 써 볼 기회도 없었고 다 잊어버렸고
그나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술술 써나갈 수 있는건 C++ 뿐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의 취업 후기를 보면 굳이 시간 많이 쓰지 않고 답부터 보고 외우는게 더 효율이 좋다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시간이 몇시간이 들어가든 그냥 머리를 쥐어뜯으며 쌩으로 풀기를 시도하고
하다 하다 안되면 그때가서 답을 봤습니다.
진도가 굉장히 느렸는데, 그래도 3달간 저녁시간에만 주로 풀어서 최종적으로 거의 150문제 정도를 풀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400-500개씩 푸신 분들이 대부분이고 천개 이상 푼 분들도 많은듯 한데, 그에 비하면 굉장히 적게 푼 것입니다.)
12월
처음엔 릴로케이션이 필요 없는 엘에이와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회사들 위주로 어플라이 했습니다.
몇군데 이니셜 스크리닝 통화를 했지만 대부분 그 이상으로 연결되지 않았고 12월 말 기준, 딱 한군데에서 (디즈니) 최종까지 갔고 결과는 탈락했습니다. 여긴 릿코드 스타일의 코딩테스트를 하지 않고, 주말동안 집에서 알아서 문제를 풀어서 월요일에 제출하라는 식의 문제를 내줬습니다. 코딩 테스트는 나름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거 같습니다 - 십여년전에도 느낀건데, 구직활동을 시작하고 첫 두세군데 면접은 연습이 부족해서 항상 망치게 됩니다.
1월
새해가 시작되고 아직 아무 진도가 안나간 거 같은 느낌입니다.
똥줄 타기 시작합니다.
이제 여유롭게 로컬에서만 어플라이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상황을 직시합니다.
마구잡이로 전국 어디에든 다 어플라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가주, 북가주, 시애틀, 오스틴, 뉴욕, 보스톤 할거 없이 어플라이 하기 시작했고
경력과 잘 매치되지 않는 곳도 마구잡이로 어플라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곳에서 인터뷰 스케줄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릿코드는 짧은 기간 준비했고 많은 문제를 풀지는 않았지만 나름 중요한 문제들을 잘 골라서 풀었는지, 코딩테스트를 할때 거의 매번 같은 문제를 릿코드에서 봤다는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준비한 대로 차근차근 코딩을 하며 설명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이때부터는 면접을 하게 되면 대부분 다 최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1월 말부터 2월 중순경 즈음
꽤 많은 회사들에서 최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한 회사당 인터뷰를 6-9번정도 하니까 매일 매일 캘린더가 꽉 차도록 인터뷰 스케줄이 잡히고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될 정도로 하루종일 인터뷰만 하며 지냈습니다.
- 아마존에선 한 팀과 최종까지 갔다가, 탈락 후 또다른 팀과 다시 진행해서 거기서 또 최종까지 간 후 거기서도 또 떨어졌습니다.
- 애플도 한 팀과 최종까지 갔다가, 탈락 후 또다른 팀과 다시 진행해서 거기서 또 최종까지 간 후 거기서도 또 떨어졌습니다.
- 메타에서도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졌습니다.
- Palo Alto Networks 라는 회사에서도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졌습니다.
- 그리고 또 수많은 회사들에서 인터뷰를 하며 정신없이 시간은 흐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최종까지 여러번 가도 아직 아무데서도 최종 오퍼는 받지 않은 상황.
점점 더 초조해지고 심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딱히 방법이 있나요. 낮엔 하루종일 인터뷰 하고, 저녁엔 더 많이 어플라이 하고 더 열심히 코딩 문제풀이 연습을 하며 하루 하루 전쟁 치르듯 보냈습니다.
3. 잡 오퍼
구직 시작 후 3개월 경과한 2월 말쯤
드디어 한 곳에서 최종 잡 오퍼를 받았습니다!
링크드인에서 1천군데 이상 어플라이 하고
인터뷰를 75차례 보고 난 후였습니다.
나름 인지도가 있는 회사이고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건
100% 리모트 가능한 포지션이라는 것입니다.
베이스 샐러리는 전 직장보다 20%정도가 줄었지만
사인온 보너스로 베이스 연봉만큼의 RSU를 받았습니다.
이게 남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잘 받은건지 이런건 관심 없고 지금같은 시기에 잡을 다시 구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할 뿐입니다.
기대감을 갖고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이 좀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