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뉴욕 #5

사리 2014.09.30 01:13:37

어쩌다 뉴욕 #5 


허름한 숙소의 301호. 먹었던 게 앞뒤로 형체를 알 수 없이 나온다는 건 분명 나쁜 일이다. 

갱년기 맞아 호르몬에 문제 생긴 중년 여성도 아닌데 체온이 오르락 내리락, 오뉴월 뙈약볕에 미친년이 널을 뛰어도 이보단 덜하지 싶다. 

빅윙이라는 메뉴였고 두 조각을 시켰는데, 새끼손가락 두개 겹쳐 놓은 것만한 쪼그만 윙이 여섯조각이 

이상한 모양으로 나왔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두어조각은 의심 없이 먹었는데 그 다음 조각이 이상했고… 결국 먹다 버려버렸다. 


그 윙 때문일 거야… 그 종업원한테 윽박지르던 주인놈… 교포 같던데… 죽여버릴 거야!!! 

전에 묵었던 사람들 냄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은 화장실에서 곡을 하며 살기를 다졌다. 

살기를 다져봤자 어따 쓰겠는가… 지가 죽어버리게 생겼는 걸. 

개워낼 것도 쏟아낼 것도 없는데 쏟아지고 개워지니 이러다 내장이 쏟아지겠다 싶었다. 

문득 오만 상상의 나래가 자동으로 펼쳐진다.

첼시에서 BRG로 묵은 허름한 숙소에서 내일 아침 시체로 발견되는 거야. CSI가 출동하겠지. 

변기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토사물을 보면서 무슨 일이있었나 조사하겠지. 

내 여권과 신분증도 보겠지… 그리고 가족들에게 아주 늦게 연락이 갈지도 몰라… 

내가 뉴욕에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이 5명이 채 안되는데… 


“보험은 XX화재에 들어있어. 여기는 첼시 컴포트 인이라는 곳 301호이고. 

 한국시간까지 밤 10시까지 연락이 없으면 나 일 난 줄 알아. 

 그때까지 연락 없으면 AA랑 BB한테 연락하면 될 건데, 걔들 연락처는 XXX야.

 개들이 수습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뉴욕 가라고 부추긴 친구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무슨 일? /

토나 사만 하면 되는데 토사가 곽란에다가 열은 널을 뛰어. 

청춘의덫에서 심은하가 딸 혜림이 죽었을 때처럼 나 그렇게 방안에서 네발로 걸어다녀. 

내일 CSI가 수습하러 오면 어쩌지? 사망원인 토사… 이거 너무 창피하잖아. 

멋지게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어. 그렇다고 그렇게 죽기도 싫었단 말이야. 

파올로 누티니 공연 보겠다고 퍼스트 클래스로 와서 리모아 가방 챙기고,

헤드윅 보면서 흥분하다가, 모마에서 배실배실 거리다가

결국 토악질에 똥질하다 허름한 숙소에서 죽어버린다고? 야, 그 인생 참 더럽게 무모하다. 얄궂다. 

내 세례명 주인공도 길바닥에서 객사했다는데, 그때 그시절 성인들이야 객사하는 게 일종의 코스라고 쳐. 

나는 도대체 이게 뭐니. 여기서 이러고 가면 얼마나 황당하고 또 황망해. 


카카오톡을 보니 31분 동안 보이스톡을 했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은 잘 안난다.

방을 바꿔 볼 것, 아침까지 참아보다 도저히 안되겠으면 911이라도 불러서 가볼 것, 

(내일은 또 다른 숙소로 이동해야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체크아웃하기 전에 연장 신청을 최대한 해서 버텨볼 것,

아침에 일어나서 꼭 어떤지 전화할 것. 이정도만 꼼꼼이 머리속에 새겨놨었다.


지금 보면 거미줄 걷겠다고 전기톱 들고 휘두른 꼴이지만 그때는 이렇게 인생 마감을 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참 어이없고 어처구니도 없기도 하지. 첫 말이, 나 보험 어디에 들어있다라는 말이라니…

2000년대 초반, 무모한 배낭여행을 다니던 애들 사이에선 유행같은 게 하나 있었는데 여행자 보험만큼은 가장 비싼 걸 드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어쩌다가 사체로 발견되는 애들,

실종이 되어 찾지 못하는 애들, 갑자기 에이즈에 걸려서 없어진 애들, 단체로 마약하다 숨을 거둔 애들이 간혹 있었다. 

그 당시, “짜치게” 호텔팩 여행이나 단체 배낭여행 같은 여행같지도 않은 단체 관광이나 하는 애들은  

휴대물품 보상한도가 높은 거를 여행자 보험으로 든다고 했고,

거칠게 여행하면서 지지리궁상 떠는 것이 최고로 멋있다고 제대로 착각하던 애들 사이에서는

휴대물품 보상한도보다도 사망보상금이 높은 걸 들었다. 

“살아생전 못한 효도 죽어서라도 해야지”라고 그 이유를 종로 피맛골에서 들었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여튼, 근데 왜 첫 말이 보험은 어디에 들어였다였을까… 웃기고 또 당황스런 일이다. 


눈을 감고 잠에 든 건 두어시간 정도. 

개 떨듯 추워지면 욕조 안에 물을 받아 버텨보다가,

갑자기 열을 오르면 미친 사람처럼 홀딱 벗고 돌아다니다가,

변기 부여잡고 나올 것도 없는 속을 개워내고, 물만 쏟아지는 설사도 해보고. 

그러길 반복하다 지쳐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일 때가 새벽 4시인가 5시인가.

팔에는 뭔가 울긋불긋한 게 돋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두어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니 햇살이 창문 사이로 들어온다. 


모든 병은 해가 없어지면 심각해지고, 해가 뜨면 기적같이도 좀 나아진다. 

조금 괜찮아진 듯 하다. 우선 생사여부부터 보고. 체크아웃은 미안하지만 12시까지 해야한단다. 

뉴욕주 어느 시골마을에서 오늘 저녁에 오는 친구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내가 상태가 안좋으니, 네 이름으로 된 예약 호텔에 전화해서 내가 체크인 하게 부탁하라고 메세지를 넣었다. 

두번이나 보냈고 두 번이나 확인했다는데 대답은 없이 지 얘기만 계속 한다. 

체크아웃을 당하고 메디슨 스퀘어 앞에 서있다. 

걸어갈 힘이 없다. 벤치에 눕듯 앉았다. 동네 노숙자로 추정되는 두명의 아저씨와 나란히 누웠다. 


왓썹맨? / 다잉 / 왓? / 저기서 어제 먹은 윙 때문에 죽고 있다고… 

몇년전에 읽은 듀니어인가 하는 사회학자였던가? Sidewalk라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뉴욕의 노숙자와 노점상에 대한 연구.

줄리아니를 필두로 “깨진유리창의 법칙”을 내세우며, 작은 범죄행위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큰 범죄를 예방할 수 있고

이로써 뉴욕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다라는 일종의 “신화”들이 있다. 

깨진유리창의 법칙으로 따지면 노숙자와 노점상은 작은 범죄행위를 용납하게 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깨끗하게” 청소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듀니어가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이처럼 작은 범죄에 대해서 강력한 통제를 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훨씬더 가혹한 제제를 하는 것이

사람들이 믿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범죄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당시 미국은 경기 호황으로 인하여 범죄 자체가 줄어들고 있던 상황이었고,

특히나 다른 미국의 대도시와 비교해볼 때, “깨진유리창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던 다른 도시들이 범죄율이 훨씬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뉴욕의 노숙자들과 노숙자에 가까운 노점상들과 1년 넘게 지내면서 듀니어는 노숙자들이 사실 범죄를 높이기보단 줄이고 있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들이 일종의 그 블록블록의 게이트 킵퍼가 되어서, 좀 이상한 놈이 등장하면 알아서 처리가 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 이들을 “청소”하는 것은 거리를 계속 사람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빈 공간으로 만들고

이 거리를 보고 있는 사람도 없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노숙자/노점상들의 커뮤니티를 망가뜨려

오히려 범죄를 높일 확률 혹은 “범죄화”로 만들어 버릴 확률이 높다는 게 그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인 듯 했다. (오래되서 좀 기억은 안남…)

동네 주민들에겐 익숙하고 인사말 주고 받는 노숙자들이 결국 그 동네의 공생관계가 되고 또 어느 정도 안전을 지켜낸다는 그런 말.. 

뭐 지금 이 상황에서 범죄든 뭐든간에… 그때 벤치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을 때에는 옆에 누군가가 있는게 고맙긴 했다. 

줄리아니는 길바닥에서 아파서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었겠지… 


오늘의 숙소는 타임스퀘어의 이코노 랏지. 

가서 물어보니 아직 전화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이 X새끼.. 너부터 죽일 거야.. 두번이나 말했는데 지 할 말만 하고, 내말은 씹고… 빨리 등 좀 대고 누워있음 좋겠건만… 

5시즈음 끝나는 미팅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세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기운이 떨어지고 아직 열이 좀 있고 근육통이 좀 있어서 그렇지

앞뒤로 쏟아져 나오던 것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어졌고, 누구 먼저 죽여 놓을까 (체크인 씹은 친구 vs 윙집 주인)를 생각하고 있다. 


문득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요거트로 올린 놈으로. 

짐을 맡기고 햇살이 좋아 하릴없이 걸어본다. 

햇빛을 받으니 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보니 뉴욕 공립 도서관 근처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광합성하려고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다. 

정말로 그곳에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있다. 

한 컵 먹는다. 떨어진 당이 훅 오른다. 다시 발작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뉴욕 공립 도서관에 가야하는 “미션”이 있었다. 

그리고 모마에서도 수행해야할 미션이 있었고. 오늘은 어차피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거 미션이나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지난 여름 한달동안 뉴욕에 머물렀던 친구가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어떤 정보를 알아 왔어야 했는데,

그것을 결국엔 하지 못했으니 나보고 해오라고 했었다. 

젊은 시절 함께 홍대에서 대부분을 함꼐 보냈던 친구였다. 

이처럼 카페가 한집건너 네다섯개 되는 시절이 아니었던 

홍대 카페하면 뒷골목에 비하인드라는 곳과 홍대정문앞 커피빈 정도가 있었던 그 시절에

오후 느즈막히 비하인드라는 곳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 

친구들이 하나둘 각자의 일을 끝내고 모여들었고, 그날 마음에 따라서 이것저것을 했었다. 


공식적인 미술 교육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부터 이 녀석은 이런저런 재밌는 작업들을 해왔다. 

전시나 기획의도를 밝히는 글을 쓸 때면 종종 이 녀석의 글을 내가 손을 봐주고는 했는데,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까슬까슬한 그 느낌 때문에 달랑 한장의 글을 고치는 것도 시간이 엄청 걸리는 일이었다. 

보통 4가지 버젼으로 수정해서 주었는데, 가장 손을 데지 않은 1번 버젼부터 가장 내 방식대로 고쳐버린 4버젼까지 주고,

니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하라고 하면, 보통 2번 정도를 골랐던 것 같다. 

글을 편집하면서 “너 이 부분 왜 사기치냐?”라고 꼬집으면, 그렇게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어? 내 전시에서 사실 그부분이 가장 이번에…”라는

어떤 면에서 다른 방식이지만 언어를 공유하면서 사는 친구였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저학력을 가진 그와 한국 사회에서 학력상 매끈한 경력을 가진 나는 

쉬크하기가 그지 없는 주인장들이 있는 몇몇의 술집에서 먹은 맥주가 몇 트럭은 됐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수잔 손탁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 얼마나 같은 얘기를 다르게 보고 앉아있는가를 이해했고,

“왜 한국 남자 중에는 좋게 늙은 사람이 없지? 여자들은 좀 있는데 우리 괜찮게 늙은 롤모델 남자 한 번 찾아보자”라며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었고,

지금까지도 서로 그간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부터, 주변에 있는 남욕을 공유하는 그런 상황이다. 


(나는 사실 그 친구의 나이를 모른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친구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얘는 나보다 아마 3살인가 적을텐데, 그냥 다 야자하며 살았으므로..)

20대 중반즈음이었나… 언젠가 나이가 좀더 들면 같이 작업을 해보자고 했었다. 

자기는 미술 작품으로 하고 나는 그 작품들에 글을 쓰거나 그런 일을 하는 것인데… 꽤 근사한 일일 것 같았다. 

헌데 문제(?)가 생겼다. 그 친구가 작년부터 그바닥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뭔가 좀 크게 유명해졌나보다. 

나는 그 녀석이 유명해질 걸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유명해질 줄은 몰랐고,

그 녀석은 평생 자기가 유명해질 거라고 생각을 전혀 안했고 평생 가난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었던 터였다. 그러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항상 서울에 가면 거의 대부분 이 친구의 작업실에서 잠을 잤는데… 갈 때마다 작업한 것들을 손에 쥐어주곤 했었다. 

집에 꾸깃꾸깃 가져가서 두다가 보기 싫어지면 버리고 그랬는데 ㅎㅎ (그래서 지금 거의 없는데…)

미술품 수집하는 분이 그 얘기를 듣고는 미쳤다고 하신다…  

아마 그걸 미래의 “값”이라고 생각하고 곱게 보관하는 관계였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런 친구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튼 둘이 같이하는 그 첫 프로젝트가 도서관에 어떤 것에 대한 것인데… 뉴욕 공립 도서관을 처음으로 타겟 삼아서 해보자고 했다. 

뉴욕 공립 도서관 1층에 있는 할머니 자원봉사자에게 “이런일을 하고 싶어서 이런 정보를 얻고 싶은데요…”라니깐 3층에 어디로 가보란다. 

3층에 어디로 갔더니 2층에 어디로 가보란다. 2층에 어디로 갔더니 217호로 가란다. 

217호로 갔더니 옆방에 있는 누구한테 가보란다. 그 누구한테 가봤더니 그 사람은 자기네 공식 웹사이트 주소를 주며 여기에 문의를 남기란다. 

결국 그 큰 도서관을 굵은 소금에 오래 절여 놓은 배추마냥 걸어다니다가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얻지 못함 자체가 - 그리고 그 얻을 수 없는 구조 자체가 프로젝트의 한 중심축이었기 때문에 “미션”을 일부 수행한 것이기도 하다. 

보고를 했다. “못얻음” - “ㅋㅋㅋ 수고했다.”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 바탕으로 작업을 했을 것인데, 못얻었고 얻을 수 없고 기록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아무것도 없음으로부터 새롭게 시작을 해야할 것 같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또 하나의 미션이 있었다. 이번 뉴욕행의 뽐뿌질님께서 모마에 가서 고흐의 별헤는 밤 그림 사본을 사두라고 했으니… 

어차피 체크인도 못하고 앉아있는 판에, 당이 잠깐 올라 살아있는 판에 얼마 안되는 길이니 걸어본다…. 

호퍼의 주유소와 고흐의 별 헤는 밤을 사고, 길 건너편에 있는 모마 아트숍 같은 곳에 갔는데… 


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원래 이런 아트숍에 가봤자 그냥 “참 쓸모 없고 어설프게 예쁜 게 많다”라는 생각만 드는 게 대부분인데…

딱 하나에 꽂혀 버리고 말았다. 


제품 구성을 보자. 

제품은 여권지갑. 소가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수첩처럼 여권을 꼽고 그 위에는 신용카드 네장, 뒷편에는 비밀칸처럼 신용카드 두장을 더 넣을 수 있다. 

옆에는 보딩패스를 넣을 수 있는 섹션과 돈을 넣을 수 있는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내 저질 미학적 기준으로 보자면 충분히 아름답고 고혹적이다. 


가격을 절대로 보지 않겠다 다짐했었지만 여권지갑에 심카드를 넣는 주머니를 보는 순간 무너졌다. 

가격을 보기 전에 심리적 마지노선을 정한다. 어처구니 없게 정해야만 포기도 빠르다. 그래 70불. 

가격택을 확인한다. 120불. 난 못사!라고 결정내리는 순간 “현대카드 20% 할인”이 머리속에 자막처럼 지나간다. 

120불에서 20프로를 빼면… 96불… 이거 애매하다. 


70불 VS 96불. 

일찌기 사춘기 때에도 겪어본적 없었던 질풍노도가 시작된다. 머리에서는 두 자아가 힘겨루기를 한다.

물끄러미 그리고 최대한 궁상맞게 여권지갑을 쳐다본다. 

세상에 심카드 넣는 칸이 따로 있다니.. 그럼 이제 지갑에다가 스카치테이프로 씸카드 안붙이고 다녀도 되잖아..

지갑이 대부분 20만원은 하는데 저정도면 비싼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 쓰고 버릴 것도 아니고 한 번 먹고 끝날 것도 아니고 계속 갖고 다닐 건데…

게다가 저것봐.. 보딩패스를 완전하게 넣을 수 있는 칸이 있다고… 저런 여권지갑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 

정확하게 25분을 그 여권지갑 앞에서 너무 절여진 배추 한포기가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마지노선은 1분당 1불씩 늘어났는지 결국 손에 쥐고야 말았다. 


제게로 와주세요. 

현대카드 고마워요. 


언제 아팠냐 싶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가볍게 걷는 사람들이 도통 이해가 안갔는데 이제는 이해도 된다. 

그리고 그 사치스러운 마음이 한껏 고조되어 걸어 와서,

“이코노 랏지”에 체크인을 했다. 


어떻게 형언해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침대는 대학교 기숙사만한 침대가 있는데, 명칭상으로는 “퀸”사이즈다. 

오늘 이따 밤에 올 친구 이름으로되어 있고 BRG로 받은 방이라서 침대 변경은 안된댄다. 

나 혼자 누워도 좁은 침대이다. 

화장실에서는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인터넷은… 그 짭퉁 통신사 3G가 더 빠르다. 안된다고 보는 게 맞다. 


체크인할 때, 신용카드를 스와이프 하는 것이 아니라

80년대 보던, 기계에 넣고 먹지에 긁는 걸로 한다.

카드키 만드는 기계가 고장나서 터번을 두른 씽이라는 직원이 마스터키를 갖고 

방마다 열어준단다. 사람이 나갔다 들어오면 씽이라는 직원을 찾아서 방을 열어달라고 해야한다. 

여기는  21세기의 뉴욕 타임스퀘어의 한복판이다. 


자원방래한 유붕을 맞이하러 유붕이 자원방래하였다. 

뉴욕주에 산다지만 뉴욕 콧구멍도 못할 시골에 사는 친구.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이 유붕이 내가 이쪽 길인듯?이라고 하면 쥐박으면서 저쪽이야!라고 하는데 그쪽길이 틀렸다. 

지가 뉴욕주에 산다고 뉴욕 길을 안다고 자부하는 것 같았다. 

저짓 한두번만 더해봐라, 치받아 버릴테니.. 분노의 삼계탕을 마음속에 끓인다. 


방에 들어오자 그도 할말을 잃었다. 

키도 없고 침대도 없고. 

어깨를 붙이고 강시처럼 나란히 누워 말했다. 

“내일은 돈내고 자자” 

"나 좋은 호텔 갈거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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