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뉴욕 #6

사리 2014.10.03 12:56:06

아침 일찍 일어나 타임스퀘어 근처 동네를 산책한다. 

아직 마약이 덜 깬 아저씨와도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가던 아주머니와는 원래 이웃사촌인냥 근황을 물으며 얘기를 나눈다. 

이렇게 나사 한 두 개 빼 놓고 사는 사람들이 참 좋다. 

로비에서 공짜로 주는 커피를 한 잔 따라 마시고, 

아침에 다들 자느냐 인터넷 속도가 조금 빨라졌기에 재빨리 호텔을 예약한다. 

밀레니엄 힐튼 - mvp family 가격 151불. 

샤워를 한 후, 자고 있는 A를 깨운다. 

둘다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입관하는 자세로 부동자세로 잤다. 

자도 잔게 아닌 것처럼 뻑적지근 하다. 


작년에 겨울 진입할 때즈음, A와 함께 뉴욕을 오긴 했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친구였던 A는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을 앓고 있었고,

미국에서 상황이 악화되어 큰 수술을 해야만 했었다. 

어느날, 수술을 하게 되면 청력 한쪽은 잃는 것은 확실하고,

잘 못걷게 되거나 그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대. 라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수술하는 날 1만마일 떨어진 싱가폴에 있었는데, 

제발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했었고, 

불행중 다행인지 한쪽 청력만 잃은 것으로 수술이 마무리 됐다. 


수술 후 거의 1년이 다되어 수술 경과 점검을 위해 뉴욕에 병원에 간다했고,

수술 때에도 그 이후 회복할 때에도 한 번 못가본 게 미안하던 차에,

마일리지는 이러라고 쓰는 거야 하고 작년 그렇게 뉴욕에 왔고 (이때는 미국에서 있었기에.. BA마일리지로..)

그당시는 호사스럽게 인터컨티넨탈 바클레이로 BRG를 받아 왔었다 ㅎ


그때 택시 안, 정말로 이놈이 한쪽 청력을 잃은 건지 구라를 친 건지가 의심이 됐다.

귀 근처에다가 조근조근 말했는데 못듣는 것 같다. 

근데 그건 모르는 척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진짜 안들려?”라니깐 진짜 안들린단다. “소리 질러봐도 돼? 쪼금이라도 안들려?” 그러니 그러란다. 

“아악!” 큰 소리를 내봤다. 꿈쩍도 없다. 아.. 이새끼 진짜 안들리는구나…

“너 진짜 안들리내 깔깔깔” 하며 웃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루룩 났었다. 

울다가 웃으면 수북해 지는데…


A를 흔들어 깨웠다. 

야, 쫌 있으면 B가 올 시간이니깐 너도 씻고 챙겨라 이제. 

우리 드디어 호텔 가자! 


뉴욕에 간다고 출발 전날 말을 했더니

B가 토론토에서 토요일 첫 비행기를 타고 와서 합류한다고 했다. 

공항서 우리 숙소에서 대충 9시 30분즈음 만나기로 했다. 


어제 사온 빠바(파리바게트)에서 사온 소보로로 아침을 먹었다. 

소보로는 이름도 어쩜 그렇게 예쁘게 생겨서 맛있는 걸까. 

왜 이런 빵을 놔두고 베이글을 먹는 것일까… 

그 식빵 열장 꾸겨 넣은 것 같은, 순대 간처럼 빈틈 없는 맛을… 이러면서 소보로를 떼어먹는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B가 다가온다. 

인사도 안하고 대뜸 “너 여기서 짐 좀 지키고 있어봐”라고 하고 달렸다. 

뮤지컬 원스의 러쉬 티켓을 사기 위해서. 

아침 10시에 매표소가 열면 그때부터 판매 시작. 

주말에는 40불이면 산단다. 

숙소에서 운좋게 두 블럭 거리… 스무번째로 줄을 서고, 8시 공연으로 세장을 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이제 인사를 하자”하고 인사를 나누고,

둘을 앉혀 놓고 “오늘 너희들이 나와 할 일정을 알려주겠어. 들어”하고선 일장 브리핑을 한다. 


오늘은 뉴욕에 온 한인 관광객들의 싸이클대로 하는 거야. 

이른바 파워 블로거들처럼 말이지. 

우선, 지금은 짐을 가져다가 힐튼에다가 맡길 거야,

그후 우리는 첼시 마켓이라는 곳에 갈 거지. 

그곳은 나비스코 공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만 가게랑 밥집들이 있는 것 같아. 

거기서 우리는, 파워블로거님들처럼 랍스터를 먹을 거야. 

그후 첼시 동네를 좀 걷는 거지. 

그러면 배가 좀 꺼질 거야.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면 분명 벼룩 시장이 나올 거야.

벼룩시장에서 좀 돌아다니다가… 

버스를 타고 센트럴 파크에 가서 좀 산책을 할 거야. 

참고로 오늘은 센트럴파크에서 제이지랑 노다웃이 공연을 할 거래. 

하지만 우리는 못봐. 왜냐하면 이른 저녁을 먹고 뮤지컬 원스를 보러 갈 거거든. 

그러고 나서 맥주를 마시든 호텔로 들어오든 할 거야. 

이거 이외에 다른 생각 있거나 반대하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인간 중에 우유부단 하기론 전교 1등 2등 다투는 이 두 명이

이런 브리핑을 듣고 “뭐 하고 싶다…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할 일은 만무하다. 

아니, 사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할지 주루룩 정한 것에 가깝다. 

안그러면 상의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게 뻔하다. 장사 하루이틀 해봤나… 


밀레니엄 힐튼에 갔다. 

지하철에서 바로 내리니 눈 앞에 떡. 월드트레이드센터 앞에 있다.

인터넷으로 19불에 스위트룸 업글하는 오퍼가 와서 하겠다고 했는데,

프론트에서 그런 요청 자체가 안보인다고 한다. 

다행히 컨펌 메일을 받은 게 있어 보여주었다. 

프론트에서 수동으로 하는 건 45불짜리밖에 안보인다고 한다. 

심드렁해하자 직원이 그냥 업그레이드를 재량으로 할 수도 있으니깐 공짜로 해줄게 한다. 

어썸하세요 라고 했다. 


방이 준비가 안되어 짐을 맡기란다. 

짐을 맡겼다. A가 화장실에 다녀온단다. 

직원이 말을 건다. 

“재패니즈?” / “놉” / “왓 시티 아유 프롬? 도쿄? 오사카?” / “놉, 아임 낫어재패니즈”/ 

“곤니치와?” / “노 아이 캔트 스픽 재패니즈!” / “도조 요로시…????(발음이 희미해짐)” / 

“도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 “룩앳잇! 유아 재패니즈!” 

아 졌다…  결국 난 도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때문에 일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지? 당최가 이해가 안된다. 

분노했다. 일본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는 게임에서 졌다는 게. 

하지만 그 자리에 더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본사람이었는데 일본사람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일본사람인 게 들통나버린 일본사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밖으로 도망나왔다. 캔디처럼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이 큰 얼굴. 양손이 모자르다. 


첼시 마켓으로 갔다. 가는 길에 어떤 아줌마가 교통 사고를 내고는 소리를 버럭버럭 내면서 싸운다. 

피만 안 흐르고 있으면 싸움 구경은 늘 익사이팅이다. 

길바닥에는 Set yourself free - Divorce $500 이라는 입간판도 있다. 

첼시 마켓은 관광 명소답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드디어 랍스터 가게에 들어섰다. 

3.5파운드짜리 랍스터를 시켜서 셋이 먹는다. 맥주도 한잔. 

서서 먹는 긴 테이블에 정말로 모두가 한국 사람이다. 

옆팀은 한국에서 출장온 회사원들 같다. 

보통 특징이 있다. 한사람은 테이블 정리를 하고, 한사람은 냅킨을 깔고, 

한사람은 음식을 가져오고, 한사람은 아무것도 안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그 한사람은 대게 그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도쿄 유나이티드 라운지에 가도 마찬가지. 

라운지에 테이블을 갑자기 “어린”직원들이 붙이기 시작한다. 

인원수대로 테이블이 만들어지면, 몇몇이 일어나서 생맥주를 따라온다. 

또 몇몇은 냅킨을 테이블에 깔고 포크와 젓가락을 놓는다. 

몇몇은 라운지 음식을 싹싹 긁어다가 안주로 테이블 가운데에 내어 놓는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안하는 한 사람은 계속 앉아 있는다. 

다 세팅이 끝나면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통 그 아무것도 안하던 한 사람이 주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은 누가 들어도 억지인 웃음 소리를 낸다. 특히 그 웃음을 열심히 하는 남자 직원이 있다. 

그리고 그 얘기는 보통 못참아 줄 정도로 재미가 없다. 

그리고 계속 그는 말을 한다. 

그들은 이런 공간에서 회사앞 맥주집처럼 떠들어댄다. 


예전에 인턴쉽 할 때, 인사과장이 불러서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 

인사과장은 오히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인턴쉽으로 온 젊은 애들이 더 화상 같았다. 

비위 맞추고 아부 떨고 그러는 게… 왜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다. 

인사과장은 나중에 아부에 흥이 났는지 드디어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걸로 착각해서 하기 시작한다. 

애들이 꺄르르 꺄르르 대고 웃는다. 쟤들이 단체로 약을 주워 먹었나… 

괜히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해.. 그냥 좀 간단하게 살자고… 

그 중에서 한 놈이 좀 재수가 없었다. 

그냥 웃는 정도만 하지 추켜세우는 멘트들을  계속 싸바싸바 잘도 날린다. 

아 정말, 아부도 수준있는 아부가 아니라 그냥 싹싹 빌고 치켜주는 그 촌스러운 아부…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하는 거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인사과장의 조용한 정리 발언. 다들 귀를 귀울여 진중하게 듣는다. 

“ㅋㅋㅋㅋㅋ” 하고 일부러 소리내어 웃는다. 

다소 놀란 인사과장, “사리는 왜그러나?” 

“아우.. 아까 하신 얘기 계속 귀에 맴돌아서 미치겠어요. 저 오늘 다 잤어요… 잘 때도 생각 날 것 같아요.  저 내일 지각하겠네요!!” 

인사과장은 하늘도 날 표정. 그 아부대마왕의 얼굴에 빗살무늬 토기가 그려진다. 

그 애 귀에다 속삭여줬다. “하려면 딱 한방으로 하는 거야…” 


참고로 가짜 웃음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 

- 숨을 뱉으면서 웃는 소리는 가짜인게 확연히 티나는데,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이 흉부를 이용하여 웃는 소리는 가짜처럼 안들린다. 


랍스터를 끝냈다. 팟타이 먹자! 

옆 팟타이집으로 갔다. 1개를 시켜 셋이 나눠 먹을 요량. 

10.35불인가 나왔는데 주인장이 실수로 1.35불을 카드로 찍어 승인 받았다. 

“그냥 이걸로 가죠?”라고 했다가 태국 주인장한테 혼났다. 

빈그릇과 뚜껑에 팟타이를 세등분해서 나눠 먹고 다음엔 뭘 먹나 싶었다. 

여럿이 다니면 딱 하나 좋은 게 이것저것 다 먹을 수 있는 거겠지.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슬라이더를 먹고 있다! 눈이 갑자기 커진다. 

대뜸 가서 “여기 슬라이더 가게가 있었어요? 어디서 샀어요?”라니깐 

아까 랍스터 팔던 곳에 앞에 있는 가게에서 슬라이더를 판단다. 

슬라이더는 나누기 편하라고 1인분에 3개가 나와서 하나씩 나눠 먹고… 

이제는 단 게 먹고 싶어서 쿠키집으로 가서

지금껏 미국서 먹어봤던 (공장 쿠키포함) 가장 맛없는 쿠키를 먹었다. 


기분 좋게 나와 카페인을 흡수해주고.. 

좋은 날씨에 걸고 또 걸어, 어쩌다 밤새 사경을 헤맨 컴포트인에 당도했다. 

그 앞 주차장이 주말에는 벼룩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1불의 입장료를 내고… 와 정말 신기한게 많은데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하나도 없네~라고 감탄하며 나왔다. 


그 윙집 주인장이 있으면 끄댕이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갔더니 주인이 없다. 

친구들과 앉아서 낮술을 먹었다. 

A가 시킨 맥주가… 정말 세상에서 그렇게 맛없는 맥주는 처음 먹어봤다. 

맥주 마시는 내내 놀렸다. 하지만 여기서 먹고 토사곽란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듯했다. 


버스를 타고 센트럴 파크에 가서 잠시 산책. 

이 날씨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북적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국 식당에 갔다. 

두 녀석은 평소 못해먹는 음식을 다 시켜 먹을 요량이다. 

결국 주방에서 싫어하게, 오징어곱돌밥 쫄면 그리고 콩비지찌개를 시켜 먹었다. 

배불리 먹고 뮤지컬 원스를 보러 간다. 

본공연전 나온 무대가 아주 좋다. 노래를 엄청 잘한다. 

본무대는, 남자 배우가 워낙 노래를 잘한다. 


영화 원스가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데, 영화 자체를 별로 재밌게 보지는 않아서 인가… 

하루 종일 너무 과하게 돌아다녔고 잠은 모자랐기 때문인가. 

병든 병아리마냥 고개가 떨어진다. 

좋은 노래와 연주에 마추어 잠이 들었다… 잘 잤다. 

40불 내고 잔 꼴이다 ㅠ.ㅠ

잠깐잠깐 깼을 때 본 장면들은 “와 좋다!!” 라는 기억밖에 안난다. 

아… 차라리 40불로 맥주를 먹을 걸.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나 편안한 침대야”라는 침대에 누웠다. 

씻지도 않고 잠깐 누워있다는 게 그냥 잠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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