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에서 2. 그날의 기도

사리 2014.10.09 23:15:15

어제 어쩌다 뉴욕 마지막편을 올리고는 

아주 극히 소수의 분들이 연재가 끝난 것을 아쉬워 해주시기도 하고

지난 번 안약 사건 이후에 캄보디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캄보디아에서 썼던 메모들은 컴퓨터가 아작 나는 바람에 다 날아갔는데

마지막날 기록은 이메일로 조금 저장해둔 것이 있어서 대충 손을 봐서 올려봅니다. 

특급 부록이에요... 

참고로 1편 안약은 여기에서 보실 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래 있었지만 이 글이 마지막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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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친구녀석이 방으로 들어온다. 


영어 잘하는 뚝뚝 아저씨는 오늘 일이 있대. 

그래서 싸오(캄보디아 현지직원)가 다른 분을 섭외했어. 

나가서 보니 뚝뚝 뒤에 있는 의자가 새거던대? 

저거 의자 새거 다는 데에만 1500불이 든다지 뭐야. 

아침에 나가서 둘러 보고 점심 때는 집으로 들어와서 밥 먹고 한 숨 쉬어. 

점심 때는 너무 더워서 머리통이 익어버리니깐. 

그리고 다시 두세시즈음에 나가서 마저 보면 될 거야. 

그러면 대충 나도 일이 끝나는 시간이 되니깐 그때 밖에서 저녁 먹자. 


오늘은 드디어 벼르지 못했다 벼르게 된 앙코르와트에 가는 날이다. 

앙코르와트의 도시 씨엠립에서 일주일이나 체류하는데에도 앙코르와트에는 얼씬조차 하지 않았다. 

앙코르와트를 갔다기 보다는 비자 연장 때문에, 이른바 “비자런”을 해야하는 처지였는데

씨엠립처럼 좋은 장소는 또 없었다. 

고향 친구 녀석은 이곳에서 국제개발일을 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에어컨이 나오는 집이 있으며 

심지어 방도 두개인지라 내 방이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싱가포르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돈지랄”을 할 수 있는데, 

기껏해야 로컬 푸드코트(호커센터)에서 하염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음식을 먹는 돈으로

이곳에서는 좀더 제대로 차려진 곳에서 먹을 수 있으며, 

단돈 500원으로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돈지랄이다. 

아참, 단체관광객들은 20불씩 주고 받는다는 발맛사지를

“현지 친구”를 둔 덕에 3불에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친구 녀석의 집은 정말로 앙코르와트 코앞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장권 확인 게이트 바로 앞에 있었다. 

이 녀석 새벽 운동을 앙코르 와트로 간다고 하더니 거짓말이 아닌 걸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과 같이 지냈던 - 지난 번의 사일과 이번의 일주일을 통해서

얘가 운동을 나가는 꼴을 못봤다는 것이다. 

뭐 한두번 새벽에 잠깨서 걸어가봤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새벽에 술에 취해서 집에 오는 길을 잃었을 수도 있다. 

굳이 묻지는 않기로 한다. 물론 내가 없는 때에는 운동을 갔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명한 것은, 앙코르와트는 코앞이다. 

탄 뚝뚝이 무색할 정도로. 


어제는 연습 삼아 시내에 있는 앙코르와트 박물관에 갔었다. 

입장부터 “너 놀랄 준비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목이 댕강댕강 잘린 불상부터 해서 1000개의 불상이 좌르륵 준엄하게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볼 건 별로 없었다. 

그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다. 

이건 무슨 신이고… 이렇게 생긴 건 어떤 신이고… 이건 12세기 작품 형태이고… 


나름 기억력 하나는 좋았는데 서른 넘어가면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박물관을 나오는 순간 홀딱 다 까먹어버렸다. 

국민학교 시절 시험 문제가 나오면 머리속에 기억을 더듬어 

이게 몇쪽 어디 부분에 나왔던 건데…라며 책 페이지를 떠올릴 수도 있었건만. 

나이 들면 기억력은 감퇴하고 이해력은 는다는데, 

이해력이 딱히 늘은 것 같지도 않으니 이건 그야 말로 퇴화다. 


대타로온 뚝뚝 기사 아저씨는 씩씩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1500불 들여서 만든 저 의자를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걸 

그가 그 의자를 대하는 몸짓에서 느낄 수 있었다. 

누추한 내 엉덩이를 저기에 잠시 붙이고 있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는 그 의자를 매우 자랑스럽고 또 정성스레 돌봤다. 

아마 저 의자에 여러 식구들의 삶이 걸려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보다 어린 게 분명하지만 자식이 둘 셋은 있을 것이고

그 가족의 생계를 저 의자를 통해서 할 것이다. 


어떤 순서로 갈 건데? 

기사 아저씨가 묻는다. 

사실 별 생각이 없다. 사원이 천개인가 된다는데 그걸 다 갔다가는 내가 사원이 되거나 시바신이라도 될 판이다. 

그냥 하루 코스로 가장 유명하다는 3개를 방문해본다. 

앙코르와트와 무슨 와트와 무슨 와트. 


사실 앙코르와트에 가겠다는 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사원들이 다 모였다고 하니깐… 

거기 가서 기도라도 하면 무슨 영험한 기도빨이라도 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

아니 지구적으로 봤을 때 나 따위와 비교한다는 게 비루하고 무례하게 비춰질 정도로 훌륭한 한 인간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초능력과 종교적인 무언가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가서 백팔배라도 하면 (물론 40도가 가까운 날씨에 백팔배를 죽었다 꺠나도, 특히나 내 체중으로 내 무릎관절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뭔가 있을 수도 있을 거야라는 아침 이슬만큼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그렇게 기도를 하려고 갔었다. 


오래된 돌로 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거기엔 세월을 이겨낸 불상들이 여러개 있고

주변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나는 누가 건들면 눈물이라도 흘려주겠노라며 

오늘은 단 한 사람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서 나의 모든 시간과 정신을 쏟겠노라고 다짐했다. 


물론, 이것은 제대로 된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데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앙코르와트는…. 그냥 큰 돌덩이였다. 

아니, 큰 돌로된 건물이었다. 그리고 사원이라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그냥 옛날에 지은 체육관 같기도 하고,

그냥 정말로 그냥, 큰 건물이었다. 나의 기도는 도대체 어디서 들여야 한다는 것인가? 

당황스러워진다. 


어쨌든 소기 목적은 단 한 가지였기 때문에 벽을 붙잡고 눈 감고 기도도 해보고

지나가다 어디서 급조해온 것 같은 불상만 봐도 절을 해보고… 

이게 뭔가 좀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는 아니었구나 싶은데도 

여기저기에 절하고 기도하고 뭐 그렇게 보냈다. 


그러고 있는 나를 유심히 관찰하던 이가 있었다. 

승려복을 입은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절 하는 데 데려다 줄게. 거기서 기도 드리렴. 

정말요? 

나는 길잃은 양이 양치기 개를 따라가듯 순한 마음으로 따라갔다. 


그곳에서 다른 승려가 나에게 향을 한 뭉테기 쥐어준다. 

우선 저기에 불을 붙이고 말이야 끈 다음에 저기에 꽂아. 

그리고 절을 이렇게 하고 빌어. 

그리고 불상을 두번 만지는 거야. 

불상은 목이 뎅강 잘려나간 불상이었다. 

그래도 앙코르와트 승려들이 하는 거니깐 뭔가 있는 거겠지.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절을 했고

불상을 두어번 만지고는 마무리를 했다. 

스님이 가까이 다가온다. 무슨 좋은 말씀을 해주시겠지… 


“이씹 달라”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뭔가 후두려 맞는 기분이었다. 

“이씹 달라, 머니” 

Dollar의 발음도 딸라라는 발음도 아니었다. 

한국말로 “달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20을 이십도 아니고, 욕할 떄처럼 침이 “ㅆ” 발음에 

유성음처럼 들어가는 이”씹”으로 발음해서 처음에는 욕으로 알아 먹었다.

프로페셔널한 욕쟁이들의 “씹”발음은 그냥 무성음이 아니라, 곧 침이라도 뱉을 수 있을 것과 같이

이사이에서 침이 공명하여 뱉어내는 소리에 가깝지 않던가.  

잠깐 머리를 리부팅하고 들어보니, 20불을 내 놓으라는 소리였다. 


황망해진다. 

마음 속에 갈등의 불이 붙는다. 

그냥 무시하고 확 가버려? 

아니 그랬다가 내가 기도한게 다 날라가면 어떡하지? 

어디서 절을 한번 하면 돈을 받고, 절을 두번 이상하면 돈을 내고 오라는 건

어렸을 때부터 받은 절과 관련된 조기교육 아니던가. 

어쨌든 절을 네번이나 했으니 돈을 내긴 해야하는 것 같고,

기도빨도 제대로 서려면 돈도 좀 내야한다던데… 


다시 조근조근 이 둘을 살펴보니 

김동리 화랑의 후예에서 황진사와 같은 아우라가 풍겼다. 

아… 난 꼼짝 없이 당했구나. 

어쨌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이 미로같은 곳에서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아임 어 스튜던트! 푸어! 디스카운트!” 라고 외쳤다. 

그래서 오십프로 할인 받아 “씹”달라에 기도값 흥정을 할 수 있었다. 


봉변도 이런 봉변이 없었고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화랑의 후예들과 작별을 하고 나오는 길, 

사원 작은 문 앞에는 어떤 어린 엄마가 뇌에 물이 찼을 것 같은, 체구에 비해 머리가 너무 큰 아이를 안고 있었다. 

싱글마더.. 아이는 아프고… 배가 고프고… 애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고… 

지갑에 가져왔던 나머지 오불을 그 어린 엄마에게 주고 합장하듯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 돈이 바꿀 수는 없겠지만, 빨리 오늘 하루는 이 더운데 나와 있지 말고,

그냥 집에 들어가셔서 밥도 잡수시고 좀 쉬세요…의 마음. 


그렇게 그 작은 사릿문 밖으로 나왔는데… 

아뿔싸, 똑같은 증상의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 들쳐 업은 엄마들이 다섯명은 넘게 있었다. 

속은 상하는데 어쩔 수는 없고 그냥 화랑의 후예들과 저 엄마들로부터 빠져나오는 것만이 관건인 것 같아

줄행랑을 치고야 말았다. 


싸오에게 말을 했다.

앙코르와트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스뚜삐드”라고 한다. 너 사기 당했다며… 


나도 안다. 내가 스뚜삐드한지는…

정확하게는 영어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절하게 느꼈던 게

나는 정말로 스뚜삐드하다는 거였으니

굳이 일깨워 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싸오에게 나쁜 마음은 없다. 

싸오는 정말 얼굴이 순하게 생기고 말을 느긋하게 하는데

나쁜 감정이 한 톨이라도 생기지 못할 정도로 사람을 무장해제 시킨다. 


잠깐 점심에 오수를 즐겨볼까 하지만

화랑의 후예들이 계속 생각나서 한쪽으로 분하고 한쪽으론 웃겼다.


오후 나절 사원 두군데를 머리가 익어서 대굴빡이 홀딱 벗겨질 정도로 걷고 또 걸었고

그 걸음 하나하나마다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그걸로 족한 것이었다. 


씨엠립에서 마지막 밤이다. 친구 녀석은 일이 좀 늦게 끝날 것이란다. 

발 맛사지 가게에 갔다. 며칠 있으면서 싸이몽 아주머니가 가장 좋았다. 

나는 한국말로 그는 캄보디아 말로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아주머니에게 한국말로 “내일 낮에 저 가요… 다음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문득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특히 나라가 잘 살지 못하는 나라 상황에서

남자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술에 쓰일지 주색잡기에 쓰일지 모르지만.

여자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다 자식새끼들한테 들어가니,

팁을 줄 일이 있으면 여자들한테 좀 많이 주라고 말이다. 


화랑의 후예들한테도 뜯겨버린 마당에 그냥 지갑을 통통 털어 돈을 드렸다. 

고단한 얼굴이 활짝 웃는다. 


나오고 나서 깨달았다. 

핸드폰은 충전금액이 없어서 전화도 안되고,

나는 택시비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학교 2학년 때 1년 넘게 다닌 학교 다니던 길도 잊어먹은 놈이,

불도 잘 안켜진 깜깜한 씨엠립의 변두리에서 길을 찾는 건 무모한 일이었다. 

한시간을 헤매고 다니다가 가방을 뒤적거리니

현지화폐가 몇 푼 나온다. 

길에 오토바이를 갖고 서 있는 청년에게 다가가 

“나 이거 있는데 태워다 줘”하고 하며 오도바이를 탔다. 


뜨겁고 습한 씨엠립의 공기를 맞으며 그날이 갔다. 


그리고, 자기 전에도, 당신이 빨리 낫길, 

깊게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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