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산타

사리 2014.12.23 05:02:27

오늘은 항공관련된 사건이 소소하게 있네요. 



연말에 딱히 싱가폴에서 할 일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집에나 가서 엄마 아빠랑 놀자는 생각이 들었음. 

새벽 5시 충동적으로 MR을 에어로플랜으로 옮겨서 딱 원하는 날짜로 

싱가폴 항공 서울 왕복 2만마일로 상콤하게 발권 완료. 


룰루랄라. 오늘은 정말로 행복해. 

이틀 뒤면 나는 매섭다는 이번 겨울을 한국에서 보낼 겨울 남자. 

집에가면 까만 캘빈클라인 코트 입고 엄마 빽 들고 나가서

검찰청앞의 조현아 반성룩 포즈로 사진찍어서 페북에 연하장 대신 올려야지~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 시작함.


카톡의 보이스톡이 저녁 때 우렁차게 울림. 

얼마전 상하이로 발령받은 대학 시절 친구. 

옮긴 직장이 만만치도 않을뿐더러 외롭외롭 외로움의 거문고를 타고 있음. 

서울 가는 길에 잠깐 들르면 안되겠냐는... 

마침 선배 하나도 그때 상해에 머물 거라고 함. 

그래? 그럼 한 이틀 정도 까짓거 상해에 들려보지~


헌대 구입한 마일리지 티켓으로는 힘들 것 같음. 

아직까지 이메일로 티켓이 안온 거 보니 예약 취소와 환불이 되겠다 싶어 

캐나다에 전화 시작. 


저희 부서는 연휴기간동안에는 문을 닫습니다라는 공지.

아! 미쿡이라면 얄짤 없이 항공사는 근무하는데

캐나다는 역시 간지가 있어... 확 닫아버리잖아.. 하면서 기다림의 멜로디를 만끽하고 있음. 


차가운 상담원 언니. 

"니 티켓 예약하자마자 발권돼서 기록상 예약후 60초만에 메일 보내졌는데? 

못받은 건 니 사정이고... 90불 수수료 내고 변경해보든가~"

배운 남자로서 나 또한 아규먼트. 

"티켓을 못받았고 티켓을 정확하게 보내는 것도 일종의 책임 아니겠어? 물론 시스템 에러가 날 수 있겠지만..." 

차가운 언니. "수퍼바이저랑 통화해봐!"라며 연결. 


긴장된 순간. 엉덩이에 힘을 빡 주고 통화 대기. 

난 영리한 수퍼바이저에요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목소리로 대화. 

연결되자마자 이전 상담원에게 얘기를 들었는지

"네 케이스는 말이야~"로 바로 본론 직행하길래,

전 사실 어떤 싸우겠다는 의도 없이 마냥 순한 남자에요라는 나의 의도를 보내야겠으므로

"By the way, hello and how are you?" 라고 다소곳이 인사. 


뻘쭘한 수퍼바이저. 으다다다 모터달린 말을 잠깐 멈추더니,

"오우 땡큐. 굿. 하와유?"로 우리 얘기는 다시 시작. 


깔끔한 정리를 해주시는 수퍼바이저. 

캔슬 후 티켓 홀드하고 나중에 재예약 때 90불 수수료 내고 쓰는 방법밖에 없어...

게다가 마일리지 환불은 180불(?? 맞나요? 기억이 가물) 수수료가 붙는데

출발 21일전에만 가능한 거라구. 어쩌지? 그냥 홀드할래? 환불은 안되는 거야. 

티켓이 배달 안됐어도... 유감이지만 이게 그렇네...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지요. 근데 티켓 홀드할 때마다 족족 날려먹는 게 무서워서

전 마일리지 환급을 선호하는데.... 


왜 여행을 못가게 됐니? 


일정도 목적지도 바꿔야겠고... 게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문제의 그) 왼쪽 눈이 삐그덕 거려서...

좀 상황 좀 두고 보려구요. 


아하! 너는 지금 헬스 문제가 있는 거구나?? 그치??


아니요. 그건 아주 지엽적인 거에요... 그냥 타면 탈 수 있어요. 그냥 일정도 변경됐고

티켓 발행이 안될 줄 알고 취소되나 싶었던 거에요... 헬스 문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내가 아까 얘기한 것밖에 없어.. 


그렇군요. 다른 방법이 없겠네요... 


내 말 잘 들어봐봐. 너 지금 눈이 어떤 건데? 


충혈됐고 건조해서 꺼끌대요. 종종 있어요. ㅎㅎ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에요. 


하지만 눈이 문제긴 하네? 그치? 너는 헬스에 지금 문제가 있어. 그래서 내가 앞으로 할 거는 말이야...?


뭐하시는 거에요? 


자.. 우선 니 티켓 출발일을 21일 이후로... 쭉 땡겨서 1월 말즈음으로 훅 바꾸겠어. 

잠만 기다려바... 오올치. 바꿨다! 여기서 수수료 우선 웨이브! 


그럼 환급 수수료 내면 되는 건가요? 


아니지. 너는 헬스 문제가 지금 있는 거니깐 말이야. 이제 환불을 해줄 거야. 

기다려바... 오올치. 네 계좌에 2만마일이랑 세금 환급 됐네. 


어 그럼 환급 수수료 안내도 되는 거에요? 


어. 너는 헬스 문제가 있으니깐 괜찮아... 


아.. 생각치도 못했는데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렴~


좋은 연휴 보내세요. 


너도 말이야.... 




수퍼바이져, 당신은 나의 산타였던가요? 

평생 저는 산타는 지상 최대의 변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세계 어린이들이 1년 내내 나쁜짓 하나 안하나 judging 하는 게 일인 사람이

그게 제 정신인 사람일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괜찮은 산타가 있다면, 아마 당신이었을 것 같아요. 


라고 잠시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PS. 어디까지나 에피소드입니다. "신공"으로 쓰지 마시라고, 늘 이런 글 쓸 때마다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