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Detroit - 2

절교예찬 2012.08.03 20:31:40

A.S. 

저는 읽은 것들, 다녀온 것들, 새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거의 예외없이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그것들을 분류합니다.

언제부터 이런 습성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디트로이트에 대한 '마일모아적인' 정보는 거의 없는 후기이지만

제 블로그에 올리면서 함께 올려봅니다.

무플이나 추방만 당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여행기 올릴 때마다 함께 올려보겠습니다.

물론, 다음부턴 실용적인 정보다 함께 추가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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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사람에게 주는 좋은 점들은 매우 분명하다.

사람들은 여행 역시 독서만큼 좋은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서, 형편에서 벗어나는 막대한 돈을 여행에 쓰고서도

다른 지출에 비해서는 덜 자책하는 편이다.

여행은 정말 독서만큼 좋은 것일까? 돈을 쏟아부을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디트로이트처럼,

두번 방문할만한 가치가 없어보이는 곳을 여행할 때면

이 질문이 더욱 단단하게 이마빡을 두드려댄다.


하지만.


베버는 

"두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말했는데

많은 점에서 독서와 비교되곤 하는 '여행'에는

이런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디트로이트 여행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시간과 돈이 썩어 문드러진다해도 디트로이트는 다시 방문할 생각이 전혀없는 도시였지만

한번쯤은 잠시 그 복판에 있어볼만한 도시였다.

(자꾸 문장들이 관계대명사를 넣은 영어문장처럼 쓰여져서 나 자신 몹시 신경쓰인다. 이해들 하시라.)


나는, 한때 매우 흥했으나, 반대로 너무 빨리 망한 이 도시를 돌아보며

만약, 우주의 어느 거대한 공간에 역사에 존재했던 도시들을 통째로 옮겨 도시박물관을 만든다면

이 도시가 반드시 의미있는 한 코너를 차지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결국 나는 이 도시를 돌아보는 동안,

이 도시 안의 어떤 것들을 보았다기 보다는

이 도시의 외모를 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최남선은 <삼도고적순례>에서 

소금의 값이 짠 것에 있고, 설탕의 값이 단 것에 있듯이

유적의 맛은 '쓸쓸한 것'에 있다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유적으로 '백제'를 꼽았는데

쓸쓸하기로만 따지면 

디트로이트도 만만치 않다.


다만,

백제의 쓸쓸함과 디트로이트의 쓸쓸함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 차이가 세월의 더께에서 오는 것인지 어떤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지만

백제의 쓸쓸함이 애잔한 쓸쓸함이라면

디트로이트의 쓸쓸함은,

그렇다.

한때 머리에 포마드 기름좀 바르고 다니며

저잣거리를 주름잡았던 사람이

나이들고, 돈떨어지고, 거기에 병까지 들어버렸을 때 오는

그런 쓸쓸함이다.


두께가 좀 되는 미국여행안내서라면,

그래도 꼭 빼놓지 않고 디트로이트에 대해 한두장 할애하는 까닭이

망한 도시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라는, 

그런 기특한 이유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책들은 한결같이,

GM의 본사와 헨리포드 박물관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디트로이트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고,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 시장도 뽑고 시의원도 뽑았을 것이므로

이 쇠망한 도시도 다시 살아보려고 애쓸 것이다.

종종 그것이 눈에 띈다.



백제,

옛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바람버섯도 찢기우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새 씨가 된다.


-<금강> 일부/ 신동엽



한때, 자본주의의 단물, 디트로이트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