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혈자 2017.06.28 06:26:30

기쁜 소식이 있었다. 황재균이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FA가 되어 충분한 경제적 부와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음에도, 메이저리그에 늦깎이 신인으로 도전을 한다는 것에 감탄하여 내심 전심으로 응원하던 그의 성공이었다. 사실 콜업만으로 벌써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르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무대로의 초대, 정말로 간절히 원하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 졌다는 것, 그 자체로 나는 성공이라 말하고 싶다. 오는 29일에 선발 3루수로 출장한다고 브루스 보치 감독이 단언해 두었으니, 이제 기쁜 마음으로 응원하면 될 일이다. 기쁘다, 그가 그 가슴벅찬 전화 한 통을 받았다는 사실이.


이영미 기자가 쓴 인터뷰 기사에서는 그가 콜업되는 상황을 한 편의 영화에 비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재균의 옵트아웃 소식이 한국과 미국 모두 에서 기정 사실화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엘파소 치와와스 (파드리스 트리플A 팀) 와의 경기를 준비하는 도중, 그 문제의 전화 한 통이 왔기 때문이다. 발신자는 SF 자이언츠 부단장, 설마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기사에 따르면, 자이언츠 부단장은


“오늘 오후 3시 30분 비행기 예약해놨으니 샌프란시스코로 와야 할 것 같다. 황재균은 이제 리버 캣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트리플 A팀) 선수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빅리그로의 콜업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태에 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화 한 통을 끝끝내 받게 되었다. 말로는 형언 할 수 없는 벅찬 기쁨이 아니었을까? 얼떨떨 했을 테고, 또 감격을 주체하지 못했으리라. 기사에서 황재균은


"아직은 얼떨떨하다. 야구하면서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솔직히 실감도 안 난다. AT&T 파크에 들어서면 실감이 날까 싶다. 많은 팬 분들의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댓글로, SNS로, 또 경기장에 직접 찾아와서 응원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힘들 때마다 그분들의 응원이 내게 용기를 심어줬다. 이젠 올라가는 게 아닌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라고 소감을 전했다. 너무 놀라고 기뻐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는 대화 내용에 빠져들어 울컥 나도 격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언제 그런 전화를 받았던가?


문득 대학 합격자 발표날이 떠올랐다. 스키장에서 돌아오던 해질녘의 고속도로에서 전화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굉장히 또렷하게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속으로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지만, 막상 전화를 받고 나니 그냥 무덤덤해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또 그로 인해 수많은 기회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오래 지나서 알게 되었다.


미국 으로 유학을 올 때에도 비슷한 전화 한 통을 받을 수 있었다. 어플라이 했던 학교 중에 한 곳에서 굉장히 일찍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려 주었다. 학과장이셨던 교수님께서 이러저러한 혜택들이 있으니 꼭 우리 학교로 와주기 바란다며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실 때, 얼마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지 모른다. 여러 학교에 지원해 두었으니 어딘가 받아주는 곳이 한 군데야 없겠냐 했지만, 그래도 그 전화 한 통으로 내가 계획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그것으로 너무나 벅찼다.


운 좋게도 그 후에 여러 곳에서 어드미션을 받을 수 있었고, 꿈에 그리던 학교로 진학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무대로의 이동은 그 후로도 지금까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지금의 나는 그런 전화 한 통들이 쌓이고 쌓여서 된 것인가 보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응원하던 그 선수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 그의 삶을 변화시킬.


퇴근길에 한 매니저와 나눈 대화는 내 기쁜 생각의 흐름들을 순식간에 누그러뜨렸다. 그의 팀에서 일하던 내 또래의 젊은 엔지니어가 LOA (Leave of Absence) 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이제 입사한 지 2년 남짓되는 친구가 나로서는 납득이 안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긍이 잘 되지 않고 있다. 내가 진행하던 사내 대학 강의들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듣던, 우리 통계 리뷰 팀에 들어와서 열심히 활동하던 가까운 동료였기에 울컥하는 마음이 잘 다독여지지 않나 보다. 내가 좀 더 가르쳐주고 좀 더 도와줬으면 달라졌을까? 한 두살 형으로서의 왠지모를 미안함이 가슴 한 켠에 무겁게 자리잡고 있다. 또 한 번, 회사에는 차디찬 칼바람이 불려나 보다.


가슴 벅찬 소식을 접한 황선수와 고통스런 소식을 듣게 된 내 동료와, 기쁨과 고민의 중간에서 허덕이는 나와, 그리고 각 자리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있는 마모식구들에 진심과 위로를 전해 본다. 슬픈 소식보다 기쁜 소식이 그 전화 한 통으로 이메일 한 통으로 더 많이 전해지기를 또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