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선반이 된 상판을 정리했다.
3년 전 이웃 친구가 비슷한게 두개 있다며 하나를 줬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싶은.
나무 상자로 단단히 둘러 쌓인, 라이오와 턴테이블이 달린 오디오 세트다.
고스란히 있던 영수증과 책자를 보니 196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샀다. 가격은 509불.
먼저 청소나 하차고 일단 뜯어 봤다.
엄청 무겁고 큰데 막상 뜯어보니 별거 없어 보인다. 이랬던게 손가락만한 오디오 기기까지 나오게 된거다.
제니스 상표. 이때 오디오는 고사하고 한국에선 제니스 라디오 하나만 가졌어도 부자소리 들었다고 했다.
반세기 묵은 먼지 걷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스피커 덧된 천 뒤 골판지에 손이 많이 갔다.
주말 하루 내내 새 친구와 보냈다. 사포질에 칠도 좀 하고 집에 들여 놓기로 했다.
하루 종일 문대고 칠했다 지우고 다시 먹이고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 새거 처럼 보이려고 할게 아니었다. 'Ctrl Z'로 돌릴 수 있으면 닦아 쓰면서 내 손때를 보태는게 나았을 것 같다.
그나마 손대면서 구석구석 예전 장인 솜씨를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보일듯 말듯한 장식 고리의 못하나 꼼꼼했다.
어쟀든 끝내고 말렸다. 마르는 사이 돌아보니 덩치 큰 물건 들어갈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지하실에 자리를 잡아준 뒤 한동안 판 사는 재미가 있었다. 1장 1불, 가끔 '1불의 행복'이 엄청났다.
그 행복이 가장 컸던, 로드 맥큐언(Rod McKuen)의 앨범. 막연하게 나마 늘 갖고 싶었던 거다.
사들고 올때 콩닥거리는 설레임, 튀진 않을지 걱정도 섞인. 그랬던 걸 한동안 잊고 있었다.
오늘은 '아시아'를 꺼냈고,
'다이어스트레이츠'도 빼냈다.
그렇지만 그전에 먼저 스틱스를 들을 거다. 켰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로 부터 음악이 시작한다.
*
전축으로 음악 듣는 일이 요즘엔 큰 노동일 것 같습니다.
20 여분 마다 판을 뒤집는 일이 그렇고
선곡해 듣자고 안경꺼내 쓰고 달려 들어 눈금 맞추는 일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소음이 섞인 음악도 못 마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주 꺼내 듣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노동이 주는 즐거움에 소음이 주는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이라도 음악 듣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