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쓰던 방에서 낡은 다이어리 하나를 들고 왔다.
누렇게 변한 셀로판 테이프에 간신히 붙어 있던 안내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인 연합준비위원회'가 만든 전단이었다.
나도 '참사연'에 가입했었다. 문화 활동에도 관심을 보인 조직이 마음에 들었다.
김기식 사무국장(전 금감위원장)이 조직을 꾸리고 사람을 모았다.
회원 활동 시작은 수강이었다. 김창남(현 성공회대 교수)님의 대중음악 강좌가 기억에 남든다.
훗날 다른 곳과 합치면서 난 빠졌다. 확대한 조직이 지금의 '참여연대'다.
'선언문'을 다시 봤다, "스스로 중심이기 보다는 밀알이 되고자"한다. 초심이 그랬던 것 같다.
뒤에 붙은 낯익은 이름. 독서에 탁월했고 박식했다. 축구 평론가로 방송에서 보기도했다.
공공 화잘싱에서 떼어온 광고지. 실천이 힘든 어학공부, 결국 사지는 못했다. 아, 장 마다 꼬리를 무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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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차병직 저, 창비 출)'에는 제가 알 길 없었던,
'참사연'이 '참여연대'가 된 내막이 적혀있습니다.
참사연을 주도한 김기식 전 금감위원장은 고 김근태 장관의 소개로 김동춘 현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다시 역사문제연구소의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과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만나 조직의 확대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조 교육감과 박 시장은 당시에 경실련의 한계에 '좌실련(좌파 경실련)'이란 조직을 꾸려 활동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전 위원장이 제시한 '참여민주주의'라는 말에 반색했고 결국 단체의 이름에도 '참여'가 확정되었다는 거네요.
당시엔 시민운동 시민단체라는 말도 없고(혹은 낯설은) 시절로 기억합니다.
그 대신 NGO라는 말이 더 널리 퍼졌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진 말이 되었네요.
책을 읽다 보면 요즘은 거물(?)이 된 사회 인사들의 바둥거리는 모습이 연상돼서 흥미진진했습니다.
참여라는 말은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의 정부를 '참여정부'라 할 만큼 큰 울림이 되던 시절인데요.
이런데는 김기식 전 위원장의 숨은 공로(물론 해외 학자 주장을 번역한 말이긴 합니다만)가 있었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