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유명세' 그리고 '너무' 세 낱말에 관한,
1. 오롯이
이전에 몰랐던 '오롯이'라는 낱말이 요즘 눈에 자주 뜨입니다.
순우리말인 것 같고, 시적이란 느낌을 받은 이 낱말이 최근 정치 분야에도 자주 쓰였습니다,
('겐세이' '뿐빠이' '야지'를 일상화한 곳에선 낯서네요.)
이런 예로 뜻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막상 사전을 보니 제 짐작은 틀렸습니다.
(사전: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 http://stdweb2.korean.go.kr)
많은 언론이 두 가지 뜻에 맞게 쓰질 못했습니다.
대부분 '다' 혹은 '오직' 처럼 강조하는 의미로 잘 못 쓰고 있었습니다. (위에 5개 모두 잘못 쓴 예)
물론 그 뜻에 맞게 쓴 기사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3개는 옳게 쓴 예)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라는 오롯이와 '담아냈다' 거나 '표현했다'는 동사가 잘 어울립니다.
(다만 다른 언론사 관련 기사의 문구가 거의 같은 걸로 봐서
보도자료를 작성한 홍보담당자가 바르게 쓴 걸로 짐작합니다.)
정치권에서도 바르게 쓰기도 했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한 자당 후보를 지원하면서 쓴(뉴스에 난) 글입니다.
오롯이 두 번째 뜻, '고요하고 쓸쓸하게'라면
뒷마당 구석에 핀 꽃을 두고 '오롯이 피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 유명세
유명세(有名稅)의 세(稅)는 세금으로 한자를 풀면 '유명해서 내는 세금'이 됩니다.
그 세금은 내고 싶지 않은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내는 것을 상징하고,
유명세는 유명해서 겪는 '불편이나 곤욕'을 뜻합니다.
그래서 '유명세'엔 '치르다'는 동사가 흔히 쓰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언론조차 이 말을 제대로 쓰지 않습니다.
네이버에서 뉴스를 검색하니 첫 화면에 딱 하나만 바로 쓰인 게 보입니다.
대부분은 '유명세를 얻었다'고 잘못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명세를 탔다'는 말도 잘못입니다.
'명성' 이나 '인기'로 쓰면 되는 말을 유명세로 늘려 쓰고 틀리게 썼습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560
조금은 다르길 바라며 최근 영향력과 신뢰도 1위라는 JTBC만을 상대로 검색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다른 언론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3. 너무
제가 국민학교 2학년 때 ( )에 알맞은 낱말을 골라 넣는 국어 시험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기는 '너무'와 '매우' 두 개만 있었습니다.
문장의 부정과 긍정성만 이해하면 됐기에 쉬웠습니다.
'너무 아파서 학교에 못 갔다', '꽃이 매우 아름답다'라고 하면 됐습니다.
제 1994년 국어사전의 '너무'는 여전히 제 국민학교 때 배웠던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방송에 등장한 사람들이 '너무'라고 말했지만,
'매우'나 '정말'로 바꿔 쓴 자막을 흔하게 봤습니다.
그랬던 '너무'의 뜻이 바뀌었습니다.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상태'
부정이나 긍정을 품지 않게 됐습니다.
여럿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니 아예 길을 내준 셈입니다.
1+2+3. 유명세는 살렸으면
'너무'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습니다. 낱말의 쓰임을 구분한다는 것은 불편이기보다는 풍요라고 생각해 왔는데, 편리를 택했습니다. '오롯이'나 '유명세'의 지금 말뜻도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유명세'만큼은 지금 뜻을 잘 살려 지켜 가길 바랍니다. 명성을 바라는 마음은 흔히들 갖는 바람이겠지요. 그런 만큼 많은 사람에게 이면의 부작용도 일깨울 수 있는 낱말 하나쯤 지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