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여행 때 맨홀 뚜껑을 찍었다. 그리고 살아나는 오랜 추억들.
스페인 마드리드에 갔다. 짐 풀고 걷기 시작했다. 땅만 보면서.
한동안 낯선 곳에 가면 바닥에 박힌 맨홀 뚜껑을 찍어 모았다. 여긴 정사각형이 많다.
자세히 보니 둥그런 뚜껑에 네모난 틀을 덧댔다.
투박한 디자인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 뚜껑 하나하나가 도시를 가늠케 하기도 한다.
이 도시는 무엇을 쓰고 또 그 규모는 얼마만 한지를.
관심이 이렇다 보니 맨홀 뚜껑만 덩그마니 나온 풍경도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고속버스를 타고 옮기다 휴게소에 내렸다. 내려 맨홀 뚜껑부터 찾았다. 종종 이정표 역할도 하는데...
목적지 하엔(Jaén)에 도착했다. 마을 느낌 그대로 추상화한 작품 같은 맨홀 뚜껑을 봤다.
뉴욕 브로드웨이를 걸었다. 남으로 북으로 걸으며 봤다. 그제서야 뉴욕을 알 것 같은 후련함이 들었다.
베이징은 남다른 기대감이 있었다. 고도 아닌가. 그런데,
실망이 컸다. 온통 새거다. 수천 년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수십 년도 못 찾았다.
그래도 뭔가 그들만의 느낌을 전했다. 어쨌든 내 마음속 베이징은 신도시로.
오사카 주변 간사이를 둘러봤다. 인상적이다. 맨홀 뚜껑 하나 정성 들여 그리고 만들었다.
그 정성과 관심은 바닥 면과 같은 재질로 만든 맨홀 뚜껑에서 잘 드러난다.
서울이다. 그래도 태어나 자란 서울이 제일 재밌다. 하루는 상계동에서 시청까지 걸었다.
걸으며 맨홀 뚜껑을 모아서 나름대로 분류했다. 상수도다.
하수도. 더러운 물 흘려야 상수도로 새 물도 올릴 테고.
내가 봤던 첫 서울 로고다. 이후 몇번 바뀌었지만 맨홀 뚜껑은 그때 그것 그대로 품고 있다.
전봇대가 있었다. 거기에 기대 술래잡기며 다방구도 했다. 기둥이 없어지고 선들이 땅 밑에 묻혔다.
도시가스도 생겼다. 도심에선 이제 가스통 나르던 아저씨를 볼 수 없게 됐다.
통신 역사도 엿보인다. 체신부가 있었다. 그러다 콤 콤 콤 인터넷 회사들이 땅으로 들어갔다.
땅속엔 집(?)도 있다. 이제 사라진 주택공사. 토지공사와 합쳐서 LH가 됐다.
그리고 무명씨들. 누구 건지는 몰라도 하는 일은 다 있겠지...
흔한 형태지만 맨홀계(?)에선 독특한 편이다. 내 경험만 놓고 보면 '한국형'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그리고 네모난 모양. 선명하고 만듯하게 각인된 경찰 맨홀 뚜껑은 딱 봐도 신경 쓴 티 난다.
둘이 하나. 같은 듯 조금씩 다른 모양. 그 궁합이 좋았는지 그대로 붙어 버린 것도.
손글씨를 봤다. 엄마 생각이 났다. 겨우 쓰는 글로 아들 둘 키워내셨다.
그리고 작은 것들. 수백 수천을 다니면서도 눈길 한번 안 준 것들을 이렇게 모았다.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미국에서도 한동안 맨홀 뚜껑을 모았다. 먼저 뚜껑에 앉아 아빠를 기다리는 1호가 저 만할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