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寫談), 뉴욕 맨해튼 소화전

오하이오 2019.03.21 21:07:53

건너편 건물 모양 본다고 고개를 쳐들고 이리저리 휘젓는데
옆에서 묘한 인척이 느껴졌다.
다시 내려 돌려 둘러보는데... 아하!
이 녀석이 뭔가를 잔뜩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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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소화전. 
노상 올려다보고 있으려면 목도 참 아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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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녀갔는지, 신문지는 엉덩이 자국으로 폭 패여있고.

소화전이 때론 의자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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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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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을 지울 순 없지만

새 옷 입고 단장해 윤기가 번들번들.

 

들여다보기 전, 소화전 하면 이런 모양이 떠올랐다.
그 만큼 오래전부터 그렇게 서 있어 왔기에 
내 머리에 그리 박힌 것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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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았지만, 친구  하나 옆에 두고 잘 버티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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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모자를 썼다. 그 모자 벗겨 들고 냅다 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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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입었다.

녹슬지 마시고 장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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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쓴 듯한, 어찌 보면 잠망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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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잠망경이 고개 숙인 친구 둘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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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바른 몸통이 아니다. 다음 생엔 등 펴고 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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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다리'지만 솜씨 하나는 빠지지 않는다고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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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감추고 목만 내밀었다.
그런데 의문, 불 났을 때 온통 붉으면 잘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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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넌 초록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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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녹색으로 태어난 녀석은 아닌가 보다.
녹색으로 덮였지만, 주변엔 래커 칠한 자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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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 몸통에 뚜껑은 녹색, 
벗겨진 색깔 안에는 녹색이,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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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 색이지만, 
어라, 이건 아래에 수도꼭지도 달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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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커다란 둥근 판, 근데 뚜껑 떼어갈까? 사슬로 꽁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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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단에 보호색까지 하고 숨은 스프링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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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푸른 잎 사이 붉은 칠을 했나. 

이건 큰 물 구멍 아래 수도꼭지도 한 몸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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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감추고 목마저 움츠러들었다.

은색 몸통에 빨간색 마개로 치장한 소화전. 
머리 올린 듯, 치렁거리지 말라고 잘 감은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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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뚜껑에 아래 수도꼭지 손잡이가 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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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에 낡은 소화전이 자연스럽다. 
보호색을 한 듯해 급할 때 찾기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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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도 뚜껑도 너무나 단순한. 
소화전 '미니멀리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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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번쩍, 금색 몸통에 노란색 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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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몸통에 내 손 숨길 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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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사람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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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듯 특별한 눈을 가진 로봇 같다.  

계획대로 잘 짜 맞춘 조각 같기도 하고.

 

 

*

비자 받기가 힘들다는 소리에 제풀에 포기했던 미국 여행.

그래서 뉴욕은 늘 책 속에나 있던 여행지였습니다.

그러다가 기대치 않게 밟게 된 맨해튼.

마음에 품었던 코스를 밟다가, 문득 눈에 들어 온 소화전.

하나하나 따라다니며 보다 보니

미술관 작품 보는 것보다 재밌더라고요.

 

이건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여행을 하게 될 때면,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시간이 좀 남긴 했을 텐데, 성급하게 그때를 생각하며

사진과 메모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