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길어진 낮, 아이들과 산책 간 처가 굵은 빗방울 떨어지자 금세 돌아왔다.
이왕 가기로 했던 거 아예 차를 타고 인근 수도원으로 갔다.
천주고 신자는 아니지만 종종 산책삼아 오가는 곳이다.
비를 맞아 촉촉한 채 가라앉은 성모상 앞 장미를 보니 내 마음도 차분해진다.
다음날도 흐렸다. 그래도 마음은 맑음. 학년 대표로 출전했던 스펠링비 대회 시상식이 있었다.
제 형을 보겠다고 고개를 복도로 내민 3호.
다음날은 맑았다. 그리고 더웠다. 낮 최고 섭씨 26도를 찍었다.
다음날 어제 금요일 오전은 다시 먹구름으로 덮였다. 밤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
다행히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주말을 시작하자 구름이 걷혔다.
학교에서 돌아 오자 마자 담요 하나 깔고 그대로 잔디에 엎어진 아이들.
머리 세개 이어져 있는 모습 보니 지붕에 주렁주렁 열린 박 같다.
책 읽는 아이들 뒤켠에서 쓸모가 없어진 선반을 분해했다. 녹슨 탓에 한참을 고생했다.
뒷마당을 정리하고 돌아 보니 1, 2, 3호가 사라졌다. 춥다고 집으로 들어갔다.
'코리안 온리' 집에서 영어로 말하길 멈추지 않아 한글책을 한권씩 꺼내읽고 하루를 마감했다.
잠자리에 누울 찰라, 귀고리가 끊어졌다. 지난 5년 간 귀에 붙어 떨어질 날 없다가 이제서야 떨어졌다.
오늘 토요일, 지난주 시작한 동네야구로 주말을 시작했다.
집에 오니 놀러온 핀과 함께 아이들도 야구를 하고 있었다.
타자헬멧을 쓰고 수비를 하던 3호.
피칭을 할때도 헬멧을 벗지 않는다.
어설픈 타격 폼을 한 2호,
피칭 폼은 메이저급 1호,
폼과 달리 2호가 치고 나가 1루를 밟았다.
그렇게 한동안 야구를 하던 아이들이 거실 옆으로 몰려 들어 조잘 거렸다.
무슨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포켓몬 카드를 펼치고 '트레이드' 한다.
나 어릴적 딱지는 따먹거나 잃는 거였다. 세대 차인가 문화차인가? 이 아이들은 뺏고뺏기는게 아니라 교환을 배운다.
[추가] 이날 이후 이어지는 변덕스러운 날씨 오늘 (월요일) 잇습니다.
토요일 봄날의 화창함은 저녁 이웃과 회식 자리까지 어어졌다.
훈훈한 분위기에 그렇게 봄은 왔고 여름으로 가려니 했다.
입방정을 떤 탓인가, 일요일 아침 돌변한 날씨 종일 비가 내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날 새벽 비 맞으며 출장을 떠난 처가 시카고에서 연결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눈으로 공항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다음날 연결편을 잡고 하루 묵어 가게됐다.
호텔바우처를 준다고 긴 줄을 줄여 담당자를 만나니 날씨 탓이라 숙박권을 줄순 없단다.
월요일 아침, 전날 비로 뚝 떨어진 기온 아이들이 잔뜩 움추린채 학교를 갔다.
처의 비행기가 또 취소됐다. 결국 출장을 포기한단다. 뒤숭숭하게시작한 한주, 앙상했던 나뭇 가지에 파릇 새싹은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