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알려진 그림이지만 처음 봤을 때 갸우뚱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닥 공중에 뜬금없다 싶게 낯선 물건 때문입니다.
비스듬히 보면 제대로 보인다는 해골 모양.
숨기 듯 그린 것도 그렇지만 굳이 왜 흉측한 물건을 그렸는지...
나중에 보니 해골은 종종 등장했습니다.
이런 그림을 묶어 '바니타스(Vanitas)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라틴어인 바니타스는 '헛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 전도서에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중 한 구절 1장 2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Vanitas vanitatum, dixit Ecclesiastes;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해골은 '인생 무상' 즉 '죽음을 잊지 말라'는 상징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바니타스 그림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림'이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정물화에 정물의 하나로 쓰인 해골 달리
여성에게 쥐어진 해골은 여느 바니타스 그림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작가는 바니타스 그림이 유행하던 17세기 조르주 드 라 투르입니다.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해골 쥔 여성의 그림을 여럿 그렸습니다.
여성의 표정이 차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슬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헛됨을 깨닫는 다는 것은 허무에 빠지는게 아니라
아웅다웅하는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 같습니다.
바니타스 상징물로서의 해골은 무상을 일깨워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그로 얻은 안식을 통해 삶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라고 일깨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나만의 바니타스 상징물도 있지 않을까 하다가 떠 올린 카메라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해골과 달리 기록을 남기는 카메라, 역설적인 내 바니타스 상징물.
결국 사라지지만 있는 동안 다 남는 내 흔적,
하루하루 거짓 없이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겠다(Carpe diem)는 다짐을 담아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을 흉내 내 찍었습니다.
그렇게 내 다짐대로 살고 나서는,
천상병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