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200125] 낱말공부, 가금류(家禽類)

오하이오 2020.01.24 08:54:19

그제 22일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설 연휴를 앞두고 '신종 코로나' 감염 예방 수칙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중국 여행객에게 당부하길 "야생동물 및 가금류(家禽類)의 접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듣다가 갸우뚱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나 소, 돼지 등 가축과의 접촉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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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스(SARS-CoV-2)는 사향고양이에서, 메르스(MERS-CoV)는 낙타에서 생겼다고 하고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나 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나돌고는 있지만 아직 확신하지 못하기에

일단 '모든 동물'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사전( https://opendic.korean.go.kr/main )에 따르면, 

가금류는 '집에서 기르는 날짐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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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의를 당부한 '야생동물'과 '가금'을 빼면 여전히 '가축'이 남습니다.

모든 동물과의 접촉을 주의해야 한다는데 가축은 안전해서 뺐을 리는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가금이 날짐승만을 뜻하는 가축의 상대적인 말이란 것을 모르고,

사람이 키우는 모든 동물이라는 말로 오해해 썼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넘길까 했는데 이번은 그렇게 안 되네요. 

설이 코 앞이고, 명절이면 유난히 떠 오르는 한국의 어머니 때문에요.

어머니께서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머님께서 한글도 겨우 쓰시곤 하신데다,

생활하며 쓰지 않는 말이나 조금 어려운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워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께서 이 방송을 함께 보셨다면 '가금류'가 뭐냐고 물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조류라는 말도 피해 어머니에게 익숙한 말로 날짐승이라거나 새라고 했겠죠. 

(지금 정부가 아니라 어머니 옆에 없는 저 자신을 원망해야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말하고자 할 때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골라 써야 합니다.

특히나 경고나 안전을 당부하는 말은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간단해야 합니다.

무엇이 쉽고 어려운지 기준을 잡기는 힘들겠지만, 노력은 해야 합니다.

적어도 쓰는 정부도 모르는 이런 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대상이 '야생 동물'과 가금류(라 쓰고 가축+가금)였다면 

그건 결국 키우는 동물과 키우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는 동물을 말하니

그냥 '모든 동물'이라고 말하면 됐습니다. 

 

"중국을 여행하시는 분은 (애완동물은 물론) 어떠한 동물과도 접촉하지 마세요."

 

뜻이 좀 과격해진 느낌이 있지만 아직 관련 바이러스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정확하지 않으니

안전을 위한 당부는 조금 과하다 싶은 게 좋은 듯합니다.

 

끝으로 CNN이 전하는 예방 수칙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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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nn.com/2020/01/22/health/coronavirus-us-precautions/index.html 

달걀이나 고기는 완전히 익혀 먹으라는 조언과 

동물 시장 방문이나 생고기 접촉이나 식사를 피하라는 거네요.

중국 여행자는 꼭 지키셔야 할 것 같고, 

안전하다 싶지만, 혹시라도 걱정되시는 분들도 

이 조언을 받아들이시면 걱정이 좀 줄 듯합니다.

 

내일이 설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업데이트  200125   

글재주가 없고 글도 장황한 탓에 제 의도와 달리 해석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먼저 제 의도를 정리하면서 업데이트합니다.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는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건 제 주장이고요

'가금류'는 어려운 말이라는 건 제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에 따라 가금류도 바꿔 써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주장과 느낌 그리고 판단은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 생각해

반론을 주시더라도 제가 더 드릴 답변은 없습니다.

 

또 쓴 사람(정부)도 모르는 말을 썼을 만큼 가금류가 어려운 말을  

가금류를 가축과 가금을 통틀어 지칭하려고 썼을 것이라는 제 추측도

사용 당사자가 확인해 주기 전까지는 반박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정부가 뜻 그대로의 가금류만을 의미하며 발표했다고 하시는 거라고 믿는 분께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짐작하게끔 해주는 새 발표를 업데이트합니다.

 

질병관리본부가 22일 이 발표 후 다음날 23일 올린 보도자료를 보면 

'야생동물 및 가금류'라 했던 말을 '동물(가금류 포함)'로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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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dc.go.kr/board/board.es?mid=a20501000000&bid=0015&list_no=365845&act=view

 

추가 사실이 발견돼 주의 대상 동물 범위를 확대했다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하루 만에 수정할 정도의 새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낱말의 사용 착오를 최소한으로 보이려고 한 정정으로 봅니다. 

 

어쨌건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구두 발표 하루 만에 바꿔 

중국 여행 때 모든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문서로 알렸습니다. 

 

제가 짐작해 쉬운 말로 바꿨던 이 말은 이제 공식적으로 유효합니다.

"중국을 여행하시는 분은 (애완동물은 물론) 어떠한 동물과도 접촉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