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유독 긴가 봅니다

shilph 2020.03.25 13:51:18

올 겨울은 유독 긴가 봅니다

 

길고 긴 겨울비가 간헐적으로 쉬고

흐린 먹구름 사이로 반가운 봄향기처럼 햇살을 나리 쬐건만

올 겨울은 유독 깁니다

 

블라인드 틈새로 보이는 하늘은 청명하며

담벼락 아래로 보이는 뒷마당은 청록빛을 띄어가는데

올 겨울은 유독 길게 느껴집니다

 

차고에 그득히 쌓인 겨울 한정 맥주 탓일까요

가스렌지 위에 가득히 담긴 뜨거운 국물 탓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멀리서 불어온 동풍이 동장군 발목을 잡은 탓일까요

 

집안은 따뜻하고 앞마당은 빗물 한 점 남지 않았는데

앞문 옆에 대충 널부러진 제 신발 위에는 겨울 먼지가 그득하네요

올 겨울은 유독 길게만 느껴집니다

 

비가 와도 후드티 눌러쓰고 아이들 손 잡고 놀러나가던

그 겨울 어느 날이 그리울 정도로

올 겨울은 유독 길고 또 깁니다

 

하지만 이 겨울도 지나가겠지요

긴 겨울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녹이듯

그렇게 불어올 포근한 봄바람에

이 겨울도 지나가겠지요.

 

그저 이 긴 겨울밤과 비바람을 피하듯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봄향기 물씬 담은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내 마음처럼 이 겨울도 어서 녹아가길, 어서 지나가길 주문처럼 읊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