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20도를 훌쩍 오르며 올들어 가장 더운 일요일
어쩌다 우리 놀이터가 된 텅빈 동네 대학 주차장.
아이들이 제 바퀴를 신나게 굴릴 때 나는 나대로 신났던 오후.
세상을 담박에 흐려 버리는 묘기를 부리는 날
선명했던 풍경을 쉽게 지울 수 있던 건
렌즈를 빼고 작은 구멍이 뚤린 '핀홀'로 사진을 찍었기 때문
오래전에 사서 한두번 쓰고 팽게쳐둔 '존플레이트(Zone Plate)' 핀홀
전날 집 주변을 찍으며 테스트 하다
화창하기 그지 없는 이날에 써먹기에 딱 알맞다 싶어
아이들이 스케이트에 스쿠터를 챙길 때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활보하며 담은 텅빈 대학 풍경
정적 없어 쓸쓸해 보였던 풍경이 화사하게 보이니
마음이 가벼워지자 피식 새 나왔던 웃음.
그때 기억, 세상이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찍겠다고 달려 들 때
심사가 뒤틀려 반대로 가겠다며 샀던 핀홀 어댑터를 샀던 치기.
아마도 세상이 높게(고 선명) 가니 나는 낮게 가겠다고 했었던 듯.
세상이 지나 다시 보니 거기에 높낮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그저 다른 것. 기구의 쓸 모가 다르고, 찍고 보는 사람의 취향이 다른 것.
한참을 놀던 케이트를 벗는 아이들. 더불어 내 놀이도 끝나고 선명해진 세상.
레전드 포켓몬 잡으러. 텅빈 대학이었건만 우리 앞엔 이미 모인 사냥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