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응급실 근황 + 마스크 잘 받았습니다!

정이 2020.04.07 13:19:57

안녕하세요

3일 연속 일하고 와서 거의 만 하루를 자고 일어났더니 좀 살것 같아요.

3월 중순 부터 말까지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디어가 떠들석 하기 시작할적에 거의 호흡기 질환 환자들만 오시고 기존의 비응급 환자들의 발길은 뚝 끊겨서 거의 호흡기 질환 환자들과 응급 환자들만 봤었는데요, 본격적으로 락 다운이 시작된 4월 초부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응급도 늘어나고 그와 더불어 비응급도 많이 늘어났어요.

"환자분 본인 께서도 아시다시피 10년 넘게 앓으신 관절염을 응급실에서 한번에 샥 고쳐드릴순 없다. 이건 응급이 아니다. 이런 비응급으로 계속 응급실에 오실 경우 바이러스에 더 노출되는 수가 있다" 이런식으로 끊임 없이 연설을 하고 있네요. 

 

락 다운으로 음식과 물을 구하기 여의치 않은 홈리스 들도 매일 매시간 응급실에 들어옵니다. "코비드 증상이 뭔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 그거 다 있다" 이런식이에요. 할 수 없이 코비드 격리구역의 병실로 데려가니 온갖 보호장비를 낀 의료진들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 앓는 소리로 기겁을 하고 다른 병실을 달라고 합니다. 여기가 코비드 격리구역이다, 당신은 증상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다른 병실로 갈 수 없다고 대답하면 시큐리티를 불러야 할 수위의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몇몇은 아기 처럼 곱게 쿨쿨 주무시다가 퇴원 오더가 떴다고 알려주니 수돗물을 emesis bag에 담아놓고 과장되게 토하는 시늉을 하며 토했다=아프다=퇴원 못한다를 시전했으나 네...토사물이 그렇게 티 없이 맑을순 없죠...

 

인력 부족이 심각해졌습니다. 응급실을 떠난 스태프와 유증상이라 자가격리를 시작한 스태프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젠 거의 맨날 스태프가 부족합니다. 이와중에 정신 못차린 우리 병원 윗분들 께서는 "병실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말라" 지침을 내리셨습니다. 격리구역의 몇몇 병실들은 문이 없이 가림막만 있는 뻥 뚫린 공간이고 부족한 MDI 탓에 다시 네뷸라이저를 이용한 치료가 거의 모든병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하고 지척에서 환자를 보는건 우리지 너네가 아니니 꺼지라고 (마음속으로) 일갈한 후 계속 병실 밖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ㅎㅎㅎ

 

제가 몇번 인증한 적이 있는 부직포 노랑 가운이 드디어 동났습니다. 병원에서 다시 빨아서 재사용이 가능한 흰색 방호복을 준다고 해서 우리도 다른 나라들 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흰색 방호복을 받는 것인가!! 왠일이랴!! 하고 들떴으나... 노랑 가운과 비슷한 모양에 돗자리 재질의 엄청 뻣뻣해서 입고 벗기도 힘들고 간호를 하기도 힘든 그런 가운이 도착했습니다. 더불어 사이즈가 엄청 커서 왜소한 체격의 저같은 경우는 가슴팍은 훵 뚫린 대신에 소매가 손을 다 덮어버리고 그러네요. 노랑 가운이 그립습니다...

 

팀워크는 여느때보다 좋습니다. 주말에 인튜베이션을 하고 조금 있다가 TPA 처치가 필요한 stroke 환자도 오고 조금 있다가 STEMI도 와서 아수라장이 될뻔 했으나 닥터고 널스고 텍이고 다 같이 달려들어서 제 때 처치를 해서 빠른 시간 안에 환자를 중환자실과 Cath lab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응급의가 "나 오늘 좀 ER 닥터 같다"고 말해서 다 같이 빵 터졌네요ㅎㅎㅎㅎ

 

헤어캡이 동나서 모두 천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헤어캡을 구해 쓰고 있습니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여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만 제건 조금 늦게 올 예정인가봅니다ㅠㅠ 4월 23일 도착 예정이라고 뜨네요. 글 쓰는 김에 인증샷도 올리고 싶었는데요... 판매 페이지의 사진을 대신 올려봅니다. Nothing can better describe me at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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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님이 참울타리님께 나눔하시고 참울타리님께서 저한테 또 나눔해주신 KN95 마스크 전량을 일선에서 함께 웃고 울고 고생하는 우리 간호사들, 간조사들, 시큐리티들, NP, 그리고 누구보다 고생하시는 environmental service 분들과 같이 나누었습니다. EVS 분들은 병원에서 N95를 받긴 하였으나 답답하다고 아예 쓰지 않거나 비뚜름 하게 쓰시거나 겨우 입만 가리시거나 그러시더라구요. 일반 서지컬 마스크 보다는 나을듯 싶어 드렸더니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다시 두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마모에서 귀하게 나눔 받은 마스크 인증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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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님, 병원으로 보내주신 n95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박스를 연 순간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게 K-정이다!!하고 당당하게 외칠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Jkwon님, 마스크 잘 받았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필리핀 간호사가 cool 하다고 엄지 척을 해줬습니다. 1월에 한국에 가니 다들 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더라며 한장만 달라고 하기에 "부디 이걸 쓰고 아프지 말고 일 빠지지 말고 나와서 나 좀 도와주라" 생색을 좀 내고 줬습니다. 저도 이걸 쓰고 건강하게 계속 환자들을 돌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Skylove님, 마스크 잘 도착했습니다. 이제 곧 서지컬 마스크가 동날 수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병원에 떠돌아 이건 저만 쓰려고 아직 뜯지 않고 잘 모셔놨습니다 ;ㅂ; 아껴가며 환자들을 돌보는데 귀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elnet2u님, 마스크 잘 받았습니다. 보내주신 글귀는 병원에 갖고 다니는 가방에 넣었습니다. 힘들고 지칠때 보면 많은 힘이 될것 같습니다. 이젠 서지컬 마스크 마저 동날 수도 있다는 소문(출처: 응급의;;)이 나서 긴급할 때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적단 분들 부디 아프지 마시고 수분 섭취 꼭 잘 하시고 손 잘 씻으시고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