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해도 그렇고, 언제부턴가 먹는 것만큼 중요해지고 챙겨야 하는 마실 거리.
다행인지 불행이지 설치된 정수기 덕에 그대로 들고 나가게 된 병 물.
퇴근길 문 앞에 마실 것 두고 간 센스쟁이 후배
배달, 주문 다 된다지만 막상 사기 힘든 성인 음료. 막걸리 한잔에 천국이 열린 듯.
다음날은 쓰던 커피 조리기가 문 앞에 놓여 있기도
기호품이 필수품이 돼 궁하면 커피 우유라도 찾게 되는. (그나저나 이건 빨대로 한방에 팍 꽂아야 하는데)
원두에 그라인더를 넣은 뜻 담아 천천히 돌려 간 커피콩
며칠 만에 맡는 커피 향에 눈이 스스로 감기고
올려 마시고 한번은 내려 마시고. 커피 한잔에 이런 긴 시간 써본 게 언젠가 싶은
내친김에 아이들이 먹다 남긴 쿠키 놓고 대신한 식사.
커피 가는 게 신기했던 아이들. 2호가 먼저 달려들고 3호가 대기하고.
몇번 돌리곤 생각처럼 쉽지 않은지 진지해진 2호.
아이들이 갈아준 커피, 맛없을리 없지만 욕심내 '코피루왁' 주문을 보태고
스스로 '한국의 맛'이라 여기는 믹스커피도 간간이 곁들이는 풍족한 커피 생활
커피가 과하다 싶을 때 카페인 없는 포장 차로 완벽한 마실 거리 조합 완성.
격리 8일차. 구청 재난대책본부 문의하니 옥상에는 올라도 된다고
일주일을 넘겨 신어보는 신발 신고 캔 맥주 하나 들고 오른 옥상
니체가 했다는 말, 중세는 술로 최면하며 버텼고 근세는 커피로 각성해 열었다는
그 말이 떠올라, 아이들을 한발 건너보며 들던 맥주에 이어진 생각
커피와 술을 오가는 내 처지 대로라면 현세는 근세와 중세를 오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