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위해 눈 구경갔다가 고생한 이야기

cypher 2021.01.01 09:05:04

안녕하세요. 워싱턴주 거주중인 cypher입니다.

한참 캠핑시즌에는 State park 위주로 캠핑을 다니다, 날 좋은 시절 다 끝나고서는 방향을 선회해서 지인들과 Dispersed camping과 Off-road 나들이를 다니고 있습니다.

시애틀 지역은 워낙 겨울에는 눈이 안오는지라, 크리스마스기도 해서 겸사겸사 눈구경도 하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보낼겸 지인 한분과 아빠들과 아이들만 조합으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Snoqualmie pass 근처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_IMG_0620.jpeg

Exit 빠져나와서 Forest service road를 따라 30분 정도 산을 올라오니 절경이 펼쳐집니다. 멀찍히 저희 차 두대가 보이네요.

눈은 아무도 밟은 적 없는 신상(?)이고요, 사진 아래쪽의 유일한 발자국이 처음으로 저희가 올라온 흔적이네요. 

 

_IMG_0623.jpeg

 

_IMG_0630.jpeg

 

아들도 눈썰매 타느라, 그리고 간만의 눈에 뛰고 구르고 먹고(?!) 신났습니다.

 

_IMG_0626.jpeg

 

한 두시간 정도 재미있게 놀다 보니, 예보에 없던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슬슬 철수해야지 싶어서 아이들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고 차를 돌리는데, 멈춰있다가 출발하려니 차가 옆으로 미끄러집니다. 깃털같은 악셀링을 했어야 했는데 좀 셌나봅니다.

 

이미 내가, 혹은 남이 밟고 왔던 자국을 그대로 밟고 가면 큰 문제 없는데, 차가 미끄러지면서 눈 많이 쌓인 쪽으로 푹 빠져버렸네요. 이러면 장사 없죠. 게다가 눈 쌓인 건 밟으면 무릎위까지 빠질 정도인지라, 그대로 차가 빠졌습니다. 4WD Low놔도 아무 소용 없고요. 같이 오신 분 차에 윈치가 장착되어 있는지라, 일단 그 차 윈치를 걸어서 차를 뺐는데...

 

이걸 몇 번 반복하다가 지인분 차까지 같이 빠졌습니다 -_-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이 타이밍에 윈치 고장...

 

_IMG_0635.jpeg

 

체인도 쳐보고, 눈도 파내보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둘이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해는 지고, 당연히 산이니까 전화 따윈 안 터집니다. 그나마 애들은 싸온 도시락으로 뭐 좀 먹이고, 차에 몰아넣어두고 닌텐도 스위치 켜주니 팬티만 입고 게임하느라 신났더군요 -ㅇ-; 어차피 식량도 연료도 가스도 넉넉히 있는지라, 정 안되면 일단 텐트펴고 하루 자고 내일 다시 어떻게 해볼까도 생각해봤는데, 좀 높은곳으로 걸어올라가 보니 간신히 전화가 터집니다.

 

일단 각자 P2에게 상황공유를 하고, 지인들에게 SOS를 쳤습니다.

 

_IMG_0637.jpeg

 

그리고 눈발은 더 심해집니다 -_-;

한참을 기다려서, 다시 어떻게 전화를 해 보니 지인 두분이 Tacoma와 Lake Stevens에서 출발한답니다. 여기까지는 대략 한시간 반 정도 걸릴테니 일단 멍하니 차에 앉아서 하릴없이 기다립니다. 애들은 뭐 여전히 게임삼매경...

 

구조요청한지 약 두시간.

이쯤되면 어느정도 가까이 왔겠다 싶어서 지인들과 같이 쓰는 CB와 HAM으로 열심히 무전을 날려보는데, 드디어 연락이 됐습니다!

중간에 Issaquah에서 한분이 더 도와주겠다고 합류하셔서 오는 중이고, 지금 산 아래니 30분 정도 뒤면 도착한다는 반가운 소식.

 

_IMG_0639.jpeg

 

드디어 지인들이 도착해서 윈치 걸고 차를 당깁니다.

물론 그냥 순순히 끌어당긴다고 될 수준이 아니라, 삽으로 눈 파내고(이와중에 저흰 삽도 안챙겨와서...) 트랙션보드 깔고 생 쇼를 했네요.

이와중에 제차는 세번이나 더 빠져서 윈치를 세번 더 걸었네요 -_-

 

_IMG_0640.jpeg

 

장장 5시간의 사투 끝에 드디어 빠져나와서 산을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산 내려오자마자 P2에게 생존신고하고, 이와중에 집으로 안가고 그대로 텐트펴고 아들이랑 이틀을 더 자고 들어갔습니다 ㅋㅋㅋ;

 

_DSCF1041.jpeg

 

산 아래는 이렇게 평온한데 말이죠. (다음날 찍은 사진입니다)

 

_IMG_0669.jpeg

 

여담으로 트랙션보드(바퀴가 헛돌 때 바퀴 밑에 깔아서 접지력을 확보해주는 물건)는 하도 돌려대서 스터드가 다 녹아버렸습니다... -_- 사진의 시커먼게 전부 타이어 녹은 자국이고요.

 

밤 10시에 텐트치고 저녁먹고나서 텐트에 누우니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하... 왜 내가 LD대신 LSD 옵션을 골랐을까 - 그때만 해도 이정도로 하드하게 오프로드 다닐 줄은 몰랐었죠.

하... 윈치만 고장나지 않았어도 - 고장날 줄 알았나요.

하... 나도 윈치 달아둘껄 - 몇 달 전에 차 구성할때 잠깐 생각하다가 에이 쓸일 없겠지 하고 접었었죠.

하... 애프터마켓 LD는 일이 크니 그냥 차를 바꿔버릴까 - 근데 이 차가 오버랜딩에는 더 나은데 말이죠.

 

그래서 일단 브롱코부터 예약해뒀습니다. 이제와서 예약해봤자 2022년에나 받을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요 -_-

 

하여튼, 겨울의 눈쌓인 산길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고, 하드한 비포장도로는 LD(Locking Differential)와 윈치가 필수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