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이야기 - 3

참울타리 2021.02.24 14:14:47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면서 날씨도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코비드 환자 수도 꽤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오늘은 오후 당직이라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Patient passed away, please come and pronounce.

 

 갑자기 날아온 텍스트에 차트를 열어 환자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봅니다. 1월 말경에 널싱홈에서 제가 입원시킨 환자입니다. 89세 아시아계 체구가 작은 할머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주 전에 코비드로 입원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양의 산소 치료가 필요했던 상황으로 보입니다. 할머니 따님분께서 comfort care를 어제 선택하셔서 그 이후로 하루 정도 더 사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할머니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할머니 병실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일단 환자가 사망하면 그 방에서는 N95급의 마스크가 필요 없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의료진을 감염시킬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들숨 날숨이기 때문입니다. 

 

 가녀린 체구의 할머니가 눈에 들어옵니다. 중심정맥관 등 여러 라인과 와이어들이 할머니 몸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많이 아프셨겠다... 할머니가 많이 안쓰럽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으셨는지 몸이 아직 따뜻합니다. 청진을 길게 해 봅니다. 89년 동안 뛰어왔을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호흡으로 느껴졌을 숨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동공은 언제나 그랬듯 할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이야기 해 주듯 크게 열려 있었습니다. 통증에 대한 반응도 그 어떤 외부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듣는 사람 없지만 나지막히 읍조립니다. Time of death 1802.

 

 할머니는 정말 주무시는 듯이 편안하게 보입니다. 수 많은 죽음을 보지만 정작 이 과정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육신이란 영혼을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 

 

 겨우내내 전쟁을 치뤘습니다.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꾸준히 코비드 환자 입원은 줄을 잇고 있고요. 전대미문의 팬데믹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강하게 몰아치는데 인간의 존재가 참 미약해 보입니다. 

 

 환자 숫자가 이렇게 줄었을 때... 백신 접종을 aggressive하게 해서 더이상의 변이를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겨울까지도 백신접종이 지지부진하다면 또다른 많은 수의 죽음과 마주해야 합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었든 사람은 살고 싶어하고 생명의 가치는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기나긴 시간 잘 참고 잘 견디어 왔습니다. 다같이 소셜 디스턴싱과 위생 수칙을 잘 지켜서 코비즈를 과거의 이야기로 무용담처럼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