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Bernd Becher,1931~2007와 힐라(Hilla Becher, 1934~2015)부부를 검색하니 기대했던 이미지들을 그대로 쏟아냅니다.
비슷비슷한 형태 건축물이 빼곡하게 모인 사진들
https://www.tate.org.uk/art/artists/bernd-becher-and-hilla-becher-718/who-are-bechers
세상에는 정말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같은 것으로 여겨질 것들이지만,
베허 부부는 그런것들을, 특히 건축물을 찍고 모아 보여줍니다.
작업 초기에는 반응이 싸늘했다고 합니다.
'순간의 포착'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는 사진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도 못했고,
건축물의 무덤덤한 표정(?)에서 작가의 의도를 엿보기도 힘들었기에 그랬겠다 추측합니다.
실제로 베허 부부는 기계적으로, 역동성(변화와 왜곡 등)을 최소화해 찍었다고 합니다.
맞춘 틀에 짜 맞추다시피하니 사진을 보고서는 부부중 누가 찍었는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https://www.moma.org/calendar/exhibitions/95?#installation-images
그런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모으고 펼치는 전시 방법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아 놓고 보니 그게 그거였던 것들이 달리 보이고,
작은 차이가 크게 느껴지자, 비로소 무표정한 사진들이 서로를 빛내주는 것 같습니다.
베허 부부의 사진에 '개념미술( Conceptual Art)'에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이름이 더해지면서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https://schellmannart.com/Bernd_und_Hilla_Becher
개념미술가로, 또 미니멀리스트로서 베허 부부의 영향은 꽤 커 보입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과 닮은 듯 다른 듯한 작품을 보이며 스승 못지않은 주목을 받습니다.
http://www.anatomyfilms.com/thomas-ruff-portraits/
토마스 루프(Thomas Ruff)는 표정없는 대형 초상 사진을 발표합니다.
정면에서 무덤덤하게 찍은 무표정한 얼굴이 베허 부부의 건축물이 대체된 듯 보입니다.
http://www.thomasstruth32.com/smallsize/photographs/streets_of_new_york_city/index.html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는 방사선 풍경 연작을 발표합니다.
거리에 사람을 없앤 차가운 풍경은 베허 부부 사진의 느낌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https://www.tate.org.uk/art/artworks/gursky-chicago-board-of-trade-ii-p20191
베허 부부의 제자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안드레아 구루스키(Andreas Gursky)일 것 같은데요.
빽빽한 증권 시장의 화려한 색상이 언뜻 베허 부부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andreas-gursky-hayward-gallery-london/index.html
그렇지만 극적인 앵글을 피하고 대상을 정면에서 포착한 점이나
지나치게 복잡하고 다양한 색으로 오히려 뚜렷한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베허 부부의 무덤덤한 사진을 잇는 것이란 생각도 드네요.
'너무나 많기에 없는 것과 같은'게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역대 사진 최고가(430만불)로 팔린 구르스키의 '라인강'은 기존 작품과 달라 보이지만
특정 대상을 없애고 덤덤한 풍경을 만든 것은 결국 같다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작품 살 엄두가 나지는 않아 화집에 눈길이 가다가도 그 가격도 만만치 않아 포기합니다.
가지지는 못해도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든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https://monovisions.com/bernd-hilla-becher-framework-houses-in-siegens-industrial-region/
베허 부부가 제게 소중한 의미는 규정된 개념미술이나 미니멀리즘에서 비롯된 건 아닙니다.
의미없다 싶은 자잘한 물건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수집(Collection)' 습성이 있는 저를,
https://spruethmagers.com/artists/bernd-hilla-becher/
베허 부부는 북돋워 주는 것 같았습니다.
가치 없는 것들이 모이면 가치를 만들어 주기도 하니 "너 하던대로 해" 하는 것 같은.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Bernd-Becher-and-Hilla-Becher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요즘 들어 부부 작가가 아닌 작가 부부가 보입니다.
온 세상을 함께 여행하고 누가 찍어도 똑같은 사진을 만들어 내는 부부의 삶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