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블 출사展 - 63] 얼떨결에 미국에서 첫 집 구매한 썰 / 오늘은 출사 아닌 랜선 집들이

맥주는블루문 2021.09.03 02:54:24

1.

요즘 시간 참 빨리 흘러가네요.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라진다는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미국 이민 온 지 14년 동안 이리저리 도시를 옮겨가며 렌트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올해 초, 아파트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 또 다가오고 시애틀의 하우스 마켓도 미쳐 돌아가고 있을 때, 와이프랑 올해도 렌트비 네고를 할지 어쩔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냥 이번에 집을 사버릴까?’라고 별 고민 없이 한마디 내던졌다가 어쩌다 보니 첫 집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2.

사실 처음엔 가볍게 Redfin에 나오는 집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며 헌팅이 시작되었고, 구경 다니면서 조금씩 Serious 해지고 결국 오퍼까지 넣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콘도를 사서 렌트비를 아끼자고 생각하다가 결국 싱글 하우스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Redfin에서 콘도를 구경하다가 ‘그래도 집 사는 거 Garage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캠핑 장비도 다 정리해놓고’ 이렇게 발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싱글 하우스를 보다가 미드 센추리 풍의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보여서 오퍼를 넣어봤습니다. 이때가 올해 2월. Agent와 상담 끝에 요즘 오퍼 경쟁이 심하다는 말에 리스팅 가격의 약 17% 높은 가격으로 오퍼를 넣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집은 30개가 넘는 오퍼가 들어왔고 최종 리스팅 가격의 무려 34%가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고 합니다. 사실 그 때서야 마켓이 정말 미쳐 돌아간다는 것을 체감했고 그냥 렌트를 계속할까 고민을 하다 그럼 상대적으로 경쟁이 낮은 타운 하우스를 한번 알아보자로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3.

사진은 괜찮아도 직접 가보면 신축 타운 하우스도 정말 퀄리티 안 좋아 보이는 디테일과 마음에 안 드는 레이아웃 때문에 오퍼를 넣을 일이 없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동네에 지어진 지는 좀 됐어도 디테일이 참 마음에 드는 타운 하우스를 보게 됩니다. 오퍼를 한번 넣어 봅니다. 이번엔 타운하우스라 경쟁이 싱글 하우스 만큼은 안 되겠지 싶어서 리스팅 가격의 5% 높은 가격으로 오퍼를 넣었습니다. 역시나 오산이었습니다. 이 타운하우스도 10% 높은 가격으로 팔리네요. 이때 배운 건, 우리 눈에 괜찮은 집은 남들 눈에도 괜찮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4.

이때는 사실 그냥 아파트 렌트 1년 더 하고 내년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운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고 3월 말에 와이프가 Redfin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싱글 하우스가 나왔다며 구경해보자고 합니다. 조금 거리가 있어서 처음엔 보러 가기 귀찮다 싶었는데 어차피 계속 재택근무에 다시 출근이 시작되도 거의 리모트로 일하는 팀이라 거리가 좀 있어도 크게 상관은 없겠다 싶은 데다, 일단 사진으로는 오픈 컨셉의 집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해서 구경을 하러 갑니다. 그 주 주말에 투어를 가봤는데 생각보다 집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방 3개에 애 없이 둘이 지내기 적당한 크기에 무엇보다 높은 층고와 갤러리 같은 거실-주방의 오픈 레이아웃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동네도 조용하고 cul-de-sac이라 보안도 괜찮아 보였구요. 집에 돌아와서 한참 와이프와 얘기를 해보고 고민을 하다가 조금 흥분을 가라 앉히고 다음날 다시 한 번만 보고 오퍼를 넣을지 결정하기로 합니다. 다음날 다시 방문한 결과 충분히 오퍼를 넣을 만 하다고 결정합니다. 그 동네 주변 비슷한 규모의 집들이 최근에 팔린 가격도 좀 리서치해 보고 Agent와의 상의 끝에 이번엔 욕심이 좀 생겨서 리스팅 가격보다 23% 높은 가격으로 오퍼를 넣었습니다. Agent가 자기는 항상 리뷰 예정 시간 바로 전에 셀러쪽 agent와 얘기를 해보고 막판에 오퍼를 넣는 전략을 쓴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리뷰 바로 전에 넣습니다. 그날 저녁, 결과를 받을 시간이 됐는데 연락이 없습니다. Agent에게 연락해보니 자기도 아직 기다리고 있다며 되든 안 되든 연락 오면 바로 전화를 준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 Agent한테 연락이 옵니다. 총 17건의 오퍼가 들어왔는데 그중 저와 비슷한 금액인데 살짝 높은 금액을 오퍼한 사람이 있었는데, 셀러는 전체적으로 우리 오퍼가 조금 더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나름 정성스레 이른바 ‘러브레터’도 별도로 첨부했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현재 오퍼 금액에서 $5,000 올린 가격을 Accept 하면 바로 우리 오퍼를 선택하겠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놓칠까 봐 빛의 속도로 우리가 Accept 하겠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몇 분 후 Agent한테 전화가 옵니다. 축하한다고 우리 오퍼가 선택됐다고. 정말 얼떨떨한 기분도 들고 이거 혹시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다음날 Agent가 저랑 경쟁이 붙었던 오퍼를 공유해줬는데 정말 우리보다 살짝 높은 금액을 오퍼했더군요.)

 

5.

정말 얼떨결에 첫 집을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클로징 날짜가 전에 살던 아파트 계약 만료일과도 적당히 잘 맞아떨어져서 추가로 렌트비 날릴 일 없이 5월에 새집으로 이사를 완료하고 이것저것 취향에 맞게 집 꾸미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구도 좀 주문했는데 소파는 주문한 지 2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기약이 없습니다. 새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정말 좋은 이웃들을 만났다는 건데요.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는 전직 교사에 재즈 아티스트였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척 스타일도 좋으신 데다가 환영한다며 집에서 키우는 각종 채소와 과일을 먼저 와서 선물로 주고 가시고, 어디 길게 여행이라도 떠나면 집 봐준다고 연락처도 먼저 교환하십니다. 건너편 집의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저씨는 얘기하다보니 저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앞마당 관리 팁도 알려주고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해주니 참 좋네요. 또 다른 옆집 할아버지는 찾아와서 환영 인사를 먼저 건네주면서 너희 아직 잔디 깎는 기계 없으면 자기가 해주겠다며 우리 집 앞마당 잔디를 다 깎아 주시고 가십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또 말도 없이 우리 집 앞마당 잔디를 깎아주시고 가셨길래 너무 미안해서 빨리 잔디 깎는 기계를 사서 직접 하고 그 할아버지 앞마당 잔디도 정리해 드렸습니다. 감사의 의미로 쿠키를 구워다 드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좋은 이웃들을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고, 우리 역시 저분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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