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눈 떠 쉬는 시간은
다섯 식구 방 세개에 나눠 자다 일어난 직후
마친 빨래를 모아들고 나간 1, 2, 3호는
볕 좋고 바람 좋은 베란다에 널고
관광을 재촉하지 않고 쉬어가기 편했던 숙소
검소하고 부지런함이 엿보이던 곳
흔들리는 뚜껑이 테이프로 감겼던 에어컨, 문풍지 사다 두르고 소음을 줄여 쓰는게 보람 있던 곳
우리동네로 유학온 인연으로 만난 수녀님 초대로 묵게 된 천주교 피정센터.
여행지 여유로움을 더해준 콩이와 보리는 수녀원에서 키우는 유기견
발랄한 보리와 달리 늘 구석에 움츠린 콩이는 여전히 상처에서 회복되지 않은 듯
난생처음 개와 산책하게 된 2호. 즐거움이 큰지 함께 몇 바퀴를 돌던.
수녀님 두 분께서 모기장을 다 두르고 공개(?)한 콩이와 보리의 집
외출 직전, 직후 아이들이 찾게 된 콩이와 보리
엔진 예초기를 쓰시기에 배터리 예초기를 선물했더니 가볍고 편하다고 기뻐하시던 수녀님
피정센터에 온 날, 옥상에 올라 경치 보여주며 들려두시던 짧은 동네 이력
주변은 공동묘지에 지어진 피란촌이었다고. 지금은 개발이 한창이라 짐작만 하지만
조금이나마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막마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소를 빼돌리는 거점으로 소 막사를 잔뜩 지었고
피란민이 소 막사에 살게 되었다고
막사를 개량하고 고치며 비교적 최근에는 부두 노동자가 이어 살게 되었다고
두세 사람 함께 지나갈 수 있는 큰(?) 골목에
더러는 한 사람 겨우 다닐 작은 골목에 알차게 모여 살던 곳이었겠지만
이제 사람 떠난 빈집 보는게 어렵지 않았던
소막마을 생활을 짐작게 했던 마을 공동 화장실, 그제야
마을 한가운데 한결같이 높은 파란색 굴뚝을 올린 목욕탕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소막마을 변두리 낮은 언덕 위 집. 듣고 보니 애초 집으로 지어졌을 것 같지 않았던.
무거운 마음으로 구경하다 잠시 웃게 만든 소막마을 벽 장식은 막걸리 통으로 만든 듯.
무거운 내력이 있는 이 마을을 가볍게 내 마을버스를 타고 나서는 외출(혹은 관광)
외출 마치고 오르던 성당 입구, 제집 가는 듯 역시나 발길 가벼운 1, 2, 3호
피란촌에 지어 피란민과 함께하며 특별한 이야기 많다는 성당이 있는 두루 특별했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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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역 방송국 KNN이 작년에 '한국전쟁 70주년 피란 1023'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재했다고 합니다. ( http://www.knn.co.kr/category/tv/koreanwar1023 ) 이 가운데 이 성당에 얽힌 이야기(7분 분량)가 있어 소개합니다.
방송에서 소개되지 않은 여담을 여럿 들었는데, 두가지만 소개하자면. 1958년 부터 이곳에서 일하시다 2017년 돌아가신 하 안토니오 신부님은 독일 출신이라고 합니다. 성을 '하'라고 지은 이유는 고향 앞을 흐르는 강을 떠올려 '물 하(河)'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분님께서 돌본 100 명 중 딱 한 명의 여자아이는 지금도 성당에 살고 계십니다. 저희도 오가며 몇 번 뵈었습니다. 수녀님들께서는 보통 신도들을 칭하는 호칭과 달리 이 분을 '언니'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이곳에 머물면서 역사 속 과거로 돌아간 느낌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