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특별했던 숙소

오하이오 2021.09.03 17: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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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눈 떠 쉬는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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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식구 방 세개에 나눠 자다 일어난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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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친 빨래를 모아들고 나간 1, 2, 3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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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고 바람 좋은 베란다에 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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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을 재촉하지 않고 쉬어가기 편했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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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고 부지런함이 엿보이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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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뚜껑이 테이프로 감겼던 에어컨, 문풍지 사다 두르고 소음을 줄여 쓰는게 보람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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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로 유학온 인연으로 만난 수녀님 초대로 묵게 된 천주교 피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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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여유로움을 더해준 콩이와 보리는 수녀원에서 키우는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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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보리와 달리 늘 구석에 움츠린 콩이는 여전히 상처에서 회복되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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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개와 산책하게 된 2호. 즐거움이 큰지 함께 몇 바퀴를 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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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두 분께서 모기장을 다 두르고 공개(?)한 콩이와 보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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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직전, 직후 아이들이 찾게 된 콩이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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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예초기를 쓰시기에 배터리 예초기를 선물했더니 가볍고 편하다고 기뻐하시던 수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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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센터에 온 날, 옥상에 올라 경치 보여주며 들려두시던 짧은 동네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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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공동묘지에 지어진 피란촌이었다고. 지금은 개발이 한창이라 짐작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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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나마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소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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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소를 빼돌리는 거점으로 소 막사를 잔뜩 지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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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이 소 막사에 살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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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를 개량하고 고치며 비교적 최근에는 부두 노동자가 이어 살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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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사람 함께 지나갈 수 있는 큰(?) 골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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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한 사람 겨우 다닐 작은 골목에 알차게 모여 살던 곳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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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 떠난 빈집 보는게 어렵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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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막마을 생활을 짐작게 했던 마을 공동 화장실,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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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가운데 한결같이 높은 파란색 굴뚝을 올린 목욕탕이 유난히 많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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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막마을 변두리 낮은 언덕 위 집. 듣고 보니 애초 집으로 지어졌을 것 같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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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마음으로 구경하다 잠시 웃게 만든 소막마을 벽 장식은 막걸리 통으로 만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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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내력이 있는 이 마을을 가볍게 내 마을버스를 타고 나서는 외출(혹은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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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마치고 오르던 성당 입구, 제집 가는 듯 역시나 발길 가벼운 1, 2,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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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촌에 지어 피란민과 함께하며 특별한 이야기 많다는 성당이 있는 두루 특별했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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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역 방송국 KNN이 작년에 '한국전쟁 70주년 피란 1023'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재했다고 합니다. ( http://www.knn.co.kr/category/tv/koreanwar1023 ) 이 가운데 이 성당에 얽힌 이야기(7분 분량)가 있어 소개합니다.  

 

 

방송에서 소개되지 않은 여담을 여럿 들었는데, 두가지만 소개하자면. 1958년 부터 이곳에서 일하시다 2017년 돌아가신 하 안토니오 신부님은 독일 출신이라고 합니다. 성을 '하'라고 지은 이유는 고향 앞을 흐르는 강을 떠올려 '물 하(河)'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분님께서 돌본 100 명 중 딱 한 명의 여자아이는 지금도 성당에 살고 계십니다. 저희도 오가며 몇 번 뵈었습니다. 수녀님들께서는 보통 신도들을 칭하는 호칭과 달리 이 분을 '언니'라고 부르시더라고요. 이곳에 머물면서 역사 속 과거로 돌아간 느낌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