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shilph 2021.11.24 22:22:12

어제 오후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병원은 다르지만 그렇게 오래 계셨던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으로 편하게 영면하셨네요.

 

몇 번 이야기한듯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6년 전 이맘쯤, 그러니까 12월 초에 몸이 안좋으시다고 병원에 갔더니 독감인듯 하다고해서, 며칠 쉬시다가 너무 안좋아지셔서 ER 로 가셨습니다. 이런저런 검사 후에 급성 뇌수막염이라고 밝혀졌고,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바로 수술을 하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너무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도 한켠에 있었는데, 거의 석달을 중환자실에 계셨지요. 한 6개월 정도 된 둘째를 아기띠에 안고 거의 매일밤에 찾아뵈었지요 ㅎㅎ 그 사진도 아마 있을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미국 병원비는 너무 비싸서 중환자실에서 보통 1주일 이상 머무는 경우는 없지만, 코드 블루 (심정지 상태) 도 몇 번 겪으시면서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이후 한 달 정도 더 병원에 계시고는 요양원으로 옮겨 오셨지요.

요양원에서는 그래도 좀 나아지셔서 늦봄~초여름 즈음에는 도움을 받고 걷는 재활운동도 좀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혼자 화장실에 가시려던 것인지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셨는데, 넘어진 위치가 좋지 않았는지 수술 부위를 부딪히셨지요. 다시 시술을 하셨지만, 건강은 급 안좋아지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침대에 누워계셔야 했지요.

요양원은 처음에 있던 곳이 보험으로 되던 곳이었는데, 보험에서 최대한도에 달해서 메디케어로 가능한 요양원으로 옮기셨습니다. 수술 받은 다음해 여름이었나... 가을이었나... 그럴겁니다. 2인실이었고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부 보조로 저희에게 부담금은 없었지요. 아버지께서 나이도 있으시고 + 중증 장애로 되셔서 그랬습니다. 제 세금이 좋은 곳으로 쓰이는 증거인거죠.

 

요양원으로 옮기시고 나서 몇 번 병원을 가셨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강은 점점 안좋아지셨고, 요양원에서 케어도 조금 부족한지 욕창도 조금 있으시고 하셨고 하네요. 그래서 병원에 가시는게 조금 낫기도 했습니다. 요양원은 아무래도 좁고 아이들과 가서도 옆에 계신 분 눈치도 보이고 하지만, 병원은 그래도 좀 더 넓고 하니까요.

코로나 이후에는 안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다행이도 계신 곳이 창문가라서 건물 밖에서 창문 너머로 좀 뵙고 했지요. 아이들은 아무래도 키가 안되니 안고서 얼굴이라도 보여드리고, 창문을 조금 열고 목소리라도 들려드리는거였죠. 애들도 어리고 해서 오래는 못 있었지만,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요양원에 가는게 일과였지요.

그래도 병원에 가시면 한 명은 들어갈 수 있으니 가서 얼굴 좀 보고, 아이들 사진 좀 보여드리고 했지요. 아이들과 바닷가에 간거, 하와이에 간거, 게 잡으러 간거, 농장에 간거... 피곤하셔도 눈을 크게 뜨시고 아이들 얼굴을 보시고는 하셨네요. 시간이 맞으면 아이들과 화상통화도 해드리고요. 딱히 대답은 못하셨지만 그래도 손도 흔들어주시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 초에 전립선암 4기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전립선암은 잘 낫는 암이기는 한데, 워낙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이셔서 부작용이 큰 약은 불가능했고, 호르몬 주사는 가능해서 조금 호전이 되었습니다... 만 암은 암인지라 더이상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게 한달 정도 전이었네요.

의사도 요양원 말고 호스테스를 권하면서 호스테스 측에서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 시간이 좀 안맞았었는지 연락은 못 받았네요.

그리고 지난 주말에 또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이번에도 큰일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좀 더 상황을 봐야하니 병원에서 좀 더 계셔야 했고, 일반 병동에서 IMCU 로, IMCU 에서 ICU 로 옮기셨습니다. 수혈도 두어차례 받으셨고요

그리고 월요일 밤에 ICU 에서 계시면서 좀 더 상황이 좋지 않다.. 라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어제 아침에 더 상황이 안좋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12~24시간 정도 남으신듯 하다고요. 암이 방광으로 퍼져서 방광에서 피가 나는 상황인데 수혈하는 양보다 피가 나오는 양이 더 많고, 수혈을 하니 심장 박동은 올라갔는데 심장이 제대로 작동을 못하니 폐로 피가 들어간듯 하고, 그래서 산소포화도가 점점 떨어지는 상황이라고요. 건강하셨던 분이셨다면 수술이건 뭐든 하겠지만, 의사도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병원에 가고, 어머니와 동생에게도 가게 문 닫고 오라고 했습니다. 와이프에게도 알리고요. 

병원마다 다르지만 아버지가 가신 병원은 원래 방문객도 제한적이었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최대 8명, 두 명씩 입장이 가능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만 아이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직계 자손은 되는데, 손주는 안된다고요. 그래도 일단 아이들을 조퇴시키고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화상통화라도 해드리려고요.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호흡기를 끼시고, 심장이 뛰도록 도와주는 것도 달고 계시고, 다양한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계셨지요. 오래간만의 중환자실 느낌... 제가 들어갔을 때 잠깐 눈을 뜨셨다가 다시 감고 계셨습니다. 아이들 화상통화 좀 시키려고 계속 눈 좀 떠보시라고 했는데도 못 뜨시더라고요. 힘드셨을테니까요.

그리고 와이프와 함께 다시 들어갔을 때 호흡기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걸 잠깐 조정하는 사이에 눈을 좀 뜨셔서 화상통화를 잠시 했습니다. 한 1분 남짓....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 아이들 얼굴은 한 번 더 보셨지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아이들 얼굴도 못 보고 가시나 해서요.

 

그리고 외삼촌과 다른 분들이 다 들어가시고,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보시고, 저와 동생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봐드렸네요. 담당 의사가 와서 마지막 정리하기 까지 30분 정도 더 시간이 있어서 모습을 좀 더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의사랑 다른 사람들이 와서 호흡기랑 다른 것들을 제거해야 하니 잠시 나가있으라고 해서 잠시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에는 이것저것 다 빼시고 얼굴도 한 번 닦으신 뒤라서 깨끗하시더군요. 조금 힘드셨는지 눈을 좀 뜨셨고, 아마도 제 얼굴과 동생 얼굴도 잘 보셨을듯 합니다. 그리고 좀 뒤에 약기운이 잘 돌았는지 눈도 감으시고 편안하게 계시면서 몇 번 코골듯이 숨을 쉬시고, 아주 편안하게 잠들듯이 가셨네요. 마지막 숨을 쉬기 까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말 정말 아주 편하게 잠들듯이 떠나셨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행이도 몇 년간 마음 준비를 했었던지라 그래도 남들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인게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머니도 예상보다 잘 계셨고요. 오히려 큰애가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듣고 많이 울었지만요. 저녁 내내 시무룩 했지요.

 

미국에 오기 전에는 가장으로 고생하시고, 이민 와서도 이런저런거 하다가 그로서리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일만 하시고, 이제 조금 나아지나... 싶더니 아프기 시작하셨네요. 미국 와서 어디 여행도 못 보내드린게 참 후회가 됩니다. 어디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거도 못 사드렸고, 한국도 제 결혼식에 가신 것과, 그 전에 고모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한 번 간게 전부이시고요. 조금 더 건강하셨으면 하다못해 아이들이랑 하와이라도 같이 가보던, LA 라도 가보던 했을텐데 말이지요.

애들은 기억에 없겠지만 큰애는 좀 아장아장 걸을 때 집앞에서 손 잡고 산책도 가실 수 있었고, 둘째는 아직 갓난쟁이일 때 안아보시기는 하셨네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마도 병상에서 누워계시던 할아버지만 기억에 남을거 같지만요. 아, 코로나 전에 휠체어를 밀어드리던 것은 기억할지도 모르겠네요.

 

장례식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추수감사절인 이번주는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다음주 정도겠네요. 다행이도 몇 년 전에 이미 어머니께서 두 분의 자리를 사두셔서 큰 돈이 들 것은 없을듯 합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곳이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니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이맘쯤 가셨는데 말이지요. 가면 세 분 다 뵐 수 있겠네요.

 

내일이면 추수감사절인데 "해피 추수감사절" 이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쉽게 하지는 못할듯 합니다. 그래도 내일 저녁에 월요일에 Costco 에서 샀던 칠면조 요리 세트를 들고 어머니께 가봐야지요. 산 사람은 살아가는게, 남은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어머니께서는 아버지 드린다고 소꼬리랑 잡채거리랑 사셨다고 했는데, 아버지께는 못 드릴거 같습니다.

나중에 장례식 때, 혹은 그 뒤에 좋아하셨던 크라운 로얄이라도 한 병 사들고 갈까 합니다. 술은 그냥 술맛에 먹는거라면서 아무거나 드셨지만, 그래도 소주랑 더불어서 좋아하셨던 술이니까요. 저번에 시애틀에 갔을 때 사온 소주도 있는데 그거도 한 병 들고가죠 뭐. 사실 요양원에 계실 때 한 모금만이라도 드리라고, 아니면 다음에 병원에 가시면 아주 조금만이라도 드릴까...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생각으로 그쳤으니 그냥 냄새라도 실컷 즐기시라고 드리고 올까 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그 순간에 참 편하게 가셨으니, 이제는 아프지 않고 편하게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기억에 없는, 제가 애기였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제 기억 속에는 중풍으로 늘 누워계셨던,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모시던 어머니께서 수발을 들어드리던 할머니와 아주 오래간만에 만나서 저희들이 큰 이야기, 손주들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으네요.

고생만 하다 가셨는데, 거기서는 고생 없이 편하게 계시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