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봤는지 걷다가 뛰기 시작한 3호.
4학년이 되면서 중학생 형들과 떨어져 혼자 학교를 오가는 게 안쓰러워 마중 간 하굣길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그사이 이름도 초등학교로 또 학교며 주변 건물 모두 바뀌었지만
신기하고도 다행스럽게 고스란히 남아 있던 등하굣길
마냥 부러웠던 노란 가방 든 아이들이 드나들던 피아노학원도 수십 년째 같은 이름 같은 자리에
사는 동안 한번 이름이 바뀌고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 약국을 볼 때만 해도 추억 놀음이었는데
학교 다니던 길을 걸으면서 떠올린 부끄럽고도 죄송한 기억
동네에서 복덕방을 하시던 아버지가 행여 손님이라도 데리고 나오셔서 나와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하굣길.
아버지 직업을 숨기고 싶기도 했고, 여느 아버지보다 많은 나이며 외모도 숨기고 싶었기에.
처지가 바뀌어 그랬던 나를 보며 머뭇거리는 데 지치지 않고 달려오는 3호
다음엔 천천히 오라 하니 3호가 환하게 웃으며 "아빠 기다리는데 빨리 와야지!" 나는 속으로 "아빠 인생 성공했다!"
2.
학교 오가던 큰길에서 꺾어 집으로 오르는 길. "그때는 그렇게 가파르고 넓어 보였는데..."
살던 집을 찾아 가 보니 단층집이 2층으로 바뀌었지만
수십 년 전 그대로 모양으로 놀랍고도 반갑게 맞아주던 대문 기둥이며 대문 지붕
빈집에 문 닫히면 담장 넘으려 디디던 옆 벽이며 홈도 그대로
있던 작은 집이 없어지고 큰 건물이 들어섰지만, 더러 옛집이 남아 있고 길 모양도 그대로인 옛 동네.
막걸리 심부름도 하고, 앞에 놓인 평상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김일 레슬링을 봤던 구멍가게 자리
누구 얼굴 옆모습이니 사람이 누운 거니 하며 친구들과 함께 보던 북한산 능선은 섭섭하게도 아파트에 가리고
3호 등에 지고 언덕 마을 오르면서 힘든 줄 몰랐던 추억 여행 "아빠 국민학교 다닐 때..."
말귀도 못 알아듣는 두 살짜리한테 별소리 다 한다 싶어 입 닫았는데, 이제 다시 가봐야겠다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