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운전을 가끔합니다. 오늘도 약 10시간이 넘는 운전을 하고 집에 도착해 낮에 고속도로 옆 주유소에서 겪은 일을 복기하고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스캠인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건은 이렇습니다. 기름도 넣고 화장실도 갈 겸, 일리노이 중부 쯤, 고속도로에서 나와 어느 도시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볼일을 마치고 출발 전, 잠시 운전석에 앉아 몇시간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이메일을 확인하고 떠나려던 찰나, F-150류의 큰 트럭이 오른쪽 옆에 서더니 창문 너머로 저를 부르는 겁니다. 창문을 내리고 쳐다보자,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자신을 두바이에서 온 누구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서 영어가 가능하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 오랜만에 받아보네요). 그렇다라고 대답하니 차에서 내려 제 차 옆으로 옵니다 (이 때 살짝 겁이 났었습니다).
이야기인 즉슨, 가족과 여행 중인데 자기 와이프가 가방을 잃어버려 돈이 하나도 없다. 아리조나까지 가야하는데 아이들 먹을 것도 사야하고 그러니 도와줄 수 없겠냐고 합니다. 매우 절박해 보였습니다. 조수석에는 그 남성의 엄마로 보이는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고, 와이프와 아이들이 타고 있다고 손짓한 뒷 좌석은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서 엄청 큰 금반지 (진짜 금인지는 모르겠으나) 를 빼며 제 조수석에 놓으면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반지는 받지 않겠다 말하고, 지갑을 보니 현금 25불이 있길래, 이것 밖에 없다고 하며 반지를 돌려주려고 하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반지를 받아라 안받는다 실랑이가 약 1 - 2 분 이어짐).
25불을 받아가면서 갑자기 반지에 더해 (금으로 된) 팔지를 풀며 이것도 받으라고 하면서, ATM기에서 200불만 찾아달랍니다. 미국 생활 10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은행이 아닌 곳에서 데빗카드로 돈 뽑아 본적도 없고, 실제로 데빗카드도 지갑에 없었고, 캐시 어드밴스는 더더욱 안할거고. 그래서 저는 ‘돈을 뽑아줄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금 25불을 주는것, 그리고 자동차 개스를 대신 내가 반 정도는 채워 줄 수 있다. 그리고 반지와 팔지는 절대 받지 않겠다’라고 제안합니다. 그러니까 그럼 40불 정도만 채워 달라고 하며 다행히 반지와 팔지를 도로 가져갑니다.
주유구를 펌프 쪽으로 대길래, 처음엔 펌프에서 40불 결재를 해 줄 생각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제가 주유가 끝날 때까지 같이 기다려야할 것 같아. 카운터에 들어가 40불 선결재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너 기름 넣을 수 있어’ 하고 말하며 떠나는데 그 사람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원하는게 그게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고 저도 주유소를 떠나 왔습니다.
그 이후 또 몇 시간을 운전하면서 있었던 일을 몇번이고 복기해보았습니다. 처음 그 순간엔 진짜인 것 같아 도와주고 싶었고, 만약 지갑에 현금이 더 있었다면 더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캠 임이 분명해지는 것 같은데, 제가 스캠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운전자 본인, 엄마로 보이는 조수석 아주머니, 뒷자리에 있다고 이야기한 와이프. 적어도 어른이 셋인데, 어른 셋이 지갑을 한거번에 동시에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둘째, 모든 어른이 동시에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만약에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대응 방식이 주유소의 모르는 사람에게 장신구를 풀어주면서 돈을 부탁하는 방식의 대응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는 인터네셔널 여행객인 경우와 미국 거주자 두 가지를 생각해봤는데 (두바이에서 온 누구라고 했지 인터네셔널 여행객인지 미국 거주자로서의 여행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에 내가 오늘 당한건가 하는 씁쓸함. 10여년 전, 인생 첫 해외여행인 뉴욕에서 내가 부딪혀 자기 안경이 부러졌다며 길에서 쫓아와 100불을 요구하던 매우 화나보이던 덩치 큰 사람을 사정해서 60불만 받아달라며 보낸 뒤에 밀려오던 그 기분과 비슷하네요.
이런 종류의 스캠도 있을 수 있구나하고 공유해봅니다. 막상 닥치니 판단이 좀 명석하지 않았던 느낌입니다. 미리 알고 닥치면 좀 나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