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있는 염색미술가 김정화 선생님의 작업실에 갔습니다.
처가 마음대로 스승으로 삼고 존경하는 분입니다.
마침 사시는 경북 영천에서 전시 준비차 서울에 올라와 머무는 동안 식사 한 끼라도 직접 차려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기 민망했던 처가 만들어 놓으신 반찬을 담고 옮깁니다.
시골에서 그냥 해 먹던 거라 별것 없다 하시지만 요즘 맛보기 힘든, 어른의 손맛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귀한 음식입니다.
탐스럽기도 하고, 어릴 적 추억도 불러일으킨다며 식탁을 차지한 강아지풀이며
억센 풀로 만든 이쑤시개로 선생님의 심성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놓고 마주했지만 처와 선생님의 식사 자리는 이야기를 더 많이 먹는 자리였습니다.
2014년, 처가 선생님께서 계시는 영천으로 무작정 찾아갔던 첫 만남을 돌아보는 걸로 시작해서,
그사이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59424.html
당시 전시 준비가 늘어진다고 하셨는데데 지난 가을, 제 짐작보다도 늦게 전시하셨네요.
전시 소식을 듣고 나서는 방송으로도 얼굴을 뵐 수 있었고요.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처가 내놓은 고민과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경험을 듣게 됐습니다.
공예 산업 '먹이사슬' 바닥에 있는 고졸 염색 장인의 저항(?) 이력이 더해진 묵직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때 옆에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하나가 생생합니다.
"우리가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불릴 만큼 흰색 옷을 즐겨 입는 것을 두고 '염색 기술이 없다'거나 '게을러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염색해 보면 안다. 흰색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흰색은 염색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고된 탈색의 과정을 거치고,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흰색 물감을 만들려는 인류의 노력이 부단했습니다. 석회 가루에서, 납으로, 아연으로 만들어 썼는데 이어 티타늄으로 만든 흰색을 가장 '흰색답다(?)'고 하지만 또 다른 흰색이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듯 우리의 흰색도 '방치의 산물'이 아니라 '추구의 대상'이었던 거겠죠. 말끝에 선생님께서 우리의 염색 기술이 없다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일제가 만든 말이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