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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포도원, "그깟 공놀이," 그리고 "미리 감사드립니다"

마일모아 | 2014.02.18 13:31:11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오늘 아침 아우토반님의 글을 읽고 집을 나선 후에, 하루 종일 그 글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그간 깨알을 비롯한 상세한 후기와 경험담을 나눠주신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 그 불같은 성격에 공감하는 마음,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깨알같은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혼재된 채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만, 3가지 정도 오늘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비유, 특히나 종교적인 이야기가 들어가는 비유는 마모 게시판에서 지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만, 오늘은 제가 먼저 그 약속을 깨트림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제일 나중에 나오니 긴 글이 되겠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포도원


2006년 가을, 아니면 2007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이 참석한 주일 예배, 그 날의 본문은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일꾼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이 비유는 잘들 아시는 것처럼, 포도원 주인이 인력시장에서 포도원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침 6시에 첫 일꾼들을 고용했으나 일꾼이 부족해 9시에 한 번. 12시에 한 번 더. 오후 3시에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후 5시 경에 한 번 더 일꾼을 구하게 되는데, 여기서 황당한 이야기는 모두가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아침 6시 온 사람도 5만원. 저녁 5시에 온 사람도 5만원을 받았다는거죠. 당연히 아침 일찍부터 "쎄가 빠지게" 삽질을 한 노동자들이 항의를 하게 되지만, 주인은 쿨하게 1) 처음의 고용계약대로 돈을 주는데 뭐가 문제냐, 2) 결국 내 돈 내 맘대로 하겠다는게 뭐가 문제냐, 3) 살다보면 나중에 온 사람이 먼저 되는 경우도 있음을 기억하라 하면서 노동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리게 됩니다.


일단 이 본문이 나오면 설교는 대부분 2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는 새신자를 "꼬시는"데 목표가 있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열심히 믿으시면 앞서 갈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전달이 주가 되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절대자의 강권적인 주권을 강조하는 방향입니다. 인생이 불공평해 보일 수 있어도 절대자의 의지가 그러하다면, 그리고 결국 모두가 받은게 동일하다면 불평을 하지 말라는거죠. 


나름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생각한 저는, 이 본문이 주보에 적힌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참 불편해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뻔하게 2개 중의 하나인데, 둘 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거든요. 교회로 환원해보면,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저런 봉사와 섬김으로 나름 삽질의 짬빱을 쌓아왔는데, 요게 전혀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은 참 빡치는 일 아니겠어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unfair한 것은 unfair한 것이거든요. 


하지만, 그 날의 설교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흘러갔습니다. 결론인 즉슨,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이 이 본문을 들으면서 불편해 하는 이유는 실은 우리가 오후 5시에 문닫고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모두가 아침 6시에 온 사람, 아니 늦어도 아침 9시에 온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에서, 다윗으로, 베드로로, 바울로 유구히 이어지는 신앙의 역사에서 우리는 아침 6시에 문 열고 온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문닫히기 직전에 겨우 들어왔음에도 동일한 급료를 받는 사람이라는거죠. 그 설교를 듣고 저는 뭔가 머리를 쎄게 얻어 맞은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인식의 전환이었죠. 


7년 전의 기억을 오늘 이렇게 주섬주섬 풀어놓는 것은 제가 이 사이트 주인장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 댓글 짬빱 자랑하지 마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누리는 마일리지, 포인트의 혜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정보라는 것도 지난 30년간 세상 방방곡곡의 덕후들이 쌓아놓은 삽질과 땀과 지식과 노력과 경험의 바탕위에 서 있고, 우리는 그 막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Randy Petersen이 없었다면, 50만 Flyertalk 횽아들이 15년간 쌓아놓은 140만개의 글타래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인거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이 비유가 오늘의 마일모아 게시판을 만들어오신 여러 선배분들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 그 분들의 노력에 감사하며, 동시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가 나누는 만큼, 우리가 받아온 것도 같이 기억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쓰는 이야기입니다. 


2. 그깟 공놀이 


제가 자주 가는 온라인 게시판이 있습니다. 마적단 분들도 몇몇 분들이 발톱의 때를 만져가면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야구 게시판입니다. 사회성이 결여된 허세 남초 사이트로 널리 알려진 이 사이트에는 몇몇 "유행어"가 있는데, 그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행어가 바로 "그깟 공놀이"라는 문구입니다. 


슬램덩크 만화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진 "그깟 공놀이"라는 문구의 원래 의미는 농구 (혹은 야구)가 아무리 소중하고 대단한 것일지라도, 인생의 더 큰 문제, 사건, 만남과 비교해 보면 "그깟 공놀이"에 불과하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표현하는 것인데요. 


저는 다른 의미로 이 문구를 좋아합니다. 나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취미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깟 공놀이"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마일리지 적립이 아무리 귀하고 멋지고 잼나고 인생을 걸만한 취미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깟 마일리지"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마일리지 좋잖아요? 돈주고 못타는 비지니스, 일등석도 타고, 호텔도 막 공짜로 막 가고 그렇잖아요? 현금으로 따지면, 막 수만불씩 하잖아요? 


하지만, 내게 마일이 소중하다고 해서 남에게도 동일하게 소중한 것은 아니며,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인생에는 더 잼나고 귀하고 소중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스쳐지나가듯 필요할 때만 찾아와서 질문하고 정보를 가져가고. 그 후에는 조용하다가 또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는 분들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럴 것이고, 다른 일에서는 우리가 마일에 보이는 크기의 열정을 가지고 남들과 나누며 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차지하는 마일의 크기가 주먹만큼인 분들에게 바위만한 열정을 요구할 수는 없는 거거든요. 그 분들이 삶의 다른 부분에서 나머지 바위만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시면, 그 정도면 괜찮은거 아닌가요? 


3. "미리 감사드립니다"


아우토반님께서 오늘 하신 말씀의 핵심은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라"는 것이었던 같습니다. 저도 100% 동의합니다. 답글을 달고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은 좋은 마음으로 시간을 쓰는데, 그 시간에 대한 금전적, 심리적인 보상은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미리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이제는 감사의 표현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감사를 땡겨서 했으니, 너는 이제 답변을 내어 놓아라... 라는 식의 의미가 보인다고나 할까요? (물론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시는 분이 마적단 분들 중에 계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때문에 지금 시간부터 게시판에 새로운 규정을 하나 도입하고자 합니다. 


질문글을 올리시고, 답을 받으신 후에 1주일 이내에 질문글에 대한 feedback이 없는 경우, 즉 질문만 던지고 답변 받고 사라지시는 경우에는 1달 활동정지를 걸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분께서 동일한 행동을 하시면 1년간 활동정지를 하고, 3번째에는 10년으로 기간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습니다. 모두들 좋은 저녁 시간 되시고, 내일 아침에 함께 김연아 선수 응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아우토반님은 좀만 쉬셨다가 돌아오셔야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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