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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220115] 추모 신영복

오하이오 | 2018.05.18 16:32:42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업데이트 220115  

글을 보며 외워서 써먹을 것 없나 했던 마음이 컸는지 한동안 '청구회 추억'을 잊고 있었습니다.

6번째 기일을 맞아 그 이야기를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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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의 원고 용지는 누런 재생지였는데, 수감 당시 화장지로 지급되는 '똥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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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는 대학강사인 저자가 우연히 만난 아이들과 만든 모임으로 그들과의 우정을 추억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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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를 받고 마음의 준비하던 사상범이 똥종이 30장에 쓴 이야기는 비장한 산문이나 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이었던가 하는 반성에서 시작하여,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없는지,  빌린 책, 갚지 않은 돈은 없는지. . .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청구회 어린이들과의 약속이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장충체육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마음 아팠다. 나는 감옥의 벽에 기대어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떠올렸다. 그리고 마루바닥에 엎드려 쓰기 시작하였다." 

http://www.shinyoungbok.pe.kr/index.php?mid=Memories&page=4&document_srl=11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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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꿈을 꾼 듯한, 괜히 착해진 듯한' 그리고 '어른 동화'

제가 이 이야기를 읽고난 뒤 느낌을 신기하게도 딱 맞게 적은 분이 계셔서 옮겨와 봤습니다.

 

'청구회 추억'은 '더불어숲' 홈페이지( http://www.shinyoungbok.pe.kr/Memories )에서 직접 그리신 삽화와 영문번역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만 

게시물이 단락마다 나뉜게 불편해 한번에 읽기를 원하시는 분은 '프레시안' 기사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32754?no=132754 )를 보시면 됩니다.

 

혹은 아래는 동영상으로 만든 '청구회 추억'을 보셔도 됩니다. 삽화도 모두 신영복 선생님께서 그리셨습니다. 

 

 

 업데이트 210115  

돌아가신지 5년째 되는 날을 맞아 감상하나 얹습니다.

신영복 선생께서 하신 많은 말 중에 요즘 들어 부쩍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들 '가장 먼 여행'이라고 하는 겁니다.

 

"일생 동안의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과 마음 좋은 사람의 차이,

머리 아픈 사람과 마음 아픈 사람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4937.html#csidxecd26b253166b2ca65bdad59f8aa7af ]

 

shin01.jpg

[출처: https://www.archivecenter.net/shinyoungbok/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47404&srch_total=&pageIndex=1&i_clssfrm=240&i_clssprov=&i_clsssub=&i_clssage=&orderColumn=I_ID%2520DESC&view_type=&pageUnit=10 ]

 

자주 떠올리는 이유는 제가 생각을 머리로만 하고 있다는 반성이 잦아섭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하셨던 말씀입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과의 이야기를 나누던 추기경께서 물어보셨다네요.

'가장 어렵고 긴 여행'이 무엇인 줄 아냐고. 모른다는 최 작가께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답하셨다고 합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요.

 

신영복 선생께서는 사랑을 '공부'로 바꿨습니다.

애초대로라면 감탄하면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분들만의 이야기겠거니 했을 텐데

공부(지식, 사상)로 바뀌니 그제야 그 여행을 내일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다만 제가 살며 마칠 수 있는 여행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거기에 발로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보태셨으니...

그래도 가슴을 향해, 발을 향해 부지런히 가보자고 다짐합니다.

목적지에 이르기보다는, 이르는 길을 여행이라 여겨왔기에.

 

 

 

    아래는 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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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취임 1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소감 첫마디는 '처음으로'였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늘 '초심'이란 말로 썼던 말이지요.

보는 순간 '문 대통령답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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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상표로 유명한 '처음으로'는 신영복 선생께서 쓰셨습니다. 

(사례금을 전부 기부하셔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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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신영복 사랑'은 진작부터 드러나 있었습니다. 

2012년 첫번째 대통령 후보 시절, 신영복 선생께서 써주신 글을 내세워 선거 운동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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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치른 두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구호는 바뀌었지만

당선 후 신영복 선생의 글이 '이니시계' 뒷면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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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을 옮긴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관저로 옮기기도 하였고,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2/07/0200000000AKR20171207039300001.HTML?input=1195m )  

 

시진핑 주석에게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 http://www.yonhapnews.co.kr/photos/1990000000.html?cid=PYH20171215253500013&input=1196m )

 

같은 글씨 앞에서 방남한 김여정 등 북한고위급 대표단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올 초 비서관실에 신영복 선생의 '춘풍추상'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2/05/0200000000AKR20180205151400001.HTML?input=1195m )

 

최근 국회에서의 '신영복 서화전'도 이와는 무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 http://www.naon.go.kr/content/html/2018/05/01/d676d64d-27a0-41bc-aec3-352d41e4615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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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에 앞서 국내외 귀빈을 모신 리셉션에서는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한국의 사상가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저도 신영복 선생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1월 15일, 선생님의 기일입니다. 

제가 가족 아닌 분을 추모하는 세분 중의 한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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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국까지 신문지 뭉치를 들어 날랐습니다.

신영복 선생께서 연재했던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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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보니 이제 20년도 더 지났습니다.

분명히 꼬박꼬박 잘 챙겨 모았는데

옮겨 다니면서 몇 개를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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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내용이야 책으로 메꾸면 된다지만

뭔가 허전하고 죄송합니다.

한국에 갈 때마다 빈 연재를 채우려 찾아보지만 허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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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운이 좋게 (이 책에 나오는) 선생님의 삽화를 몇점 갖게 됐습니다.

일로 만나 (직접 뵙지 않고)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림도 받았는데  

용도를 다하여 돌려 드려야겠다고 전했더니

컴퓨터로 그린 거라 당신께선 언제든 프린트할 수 있으니 가져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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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중간중간에 메모한 선생님의 글을 지금 보니 

생전에 쓰셨던 손길이 느껴져 뭉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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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고 7년 뒤 선생님께 또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처와 제가 모두 좋아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신영복 선생님과 아주 가까운 한분이 옆구리 찔러 넣어주셨습니다.

 

이 덕담 덕분에 지금도, 

나이를 먹고 듣는 게 많아질수록 낮추고있는가.

아이들에겐 희망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처와는 같은 곳을 보고 있는가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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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과는 연은 앞선 두개 말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첫번째 인연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 본 자리였습니다.

1994년 숭실대 학생회 연락을 받고 명동으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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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s://www.minjuroad.or.kr/location/186 )

 

'박래전 열사 추모비' 건립을 의논하는 자리였고,

제게는 디자인을, 신영복 선생님에게는 추모글을 부탁하는 자리였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밝고 환했습니다.

어린이같이 순수한 표정에 겸손한 말투, 

이분이 하시는 말씀은 다 믿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박래전 열사의 추모비에 선생님의 이름과 함께 제 이름이 박혀 있는 것은

다시 돌아봐도 과분한 영광이고 큰 자랑입니다. 

 

이 일을 진행하기 전에 박래전 열사를 잘 몰랐습니다.

80년대 많은 학생 열사가 있었지만 이 분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만 마음에 담아 둔 열사인가 싶었는데...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심쿵' 했습니다.

이날 대통령께서 유가족을 안아주는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는 그 순간 못지않게 뭉클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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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 전문: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8/0200000000AKR20170518067900001.HTML )

 

문대통령께서 이날 연설에서 '숭실대생 박래전'과 함께

묻혀져 가는 네분을 이끌어내셨더군요.

민주주의를 위한 죽음의 깊이가 다르진 않을 텐데, 

세간의 명성은 낮았던 분들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뜬금없이 불러준 네분의 유족들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5월18일입니다.

한국은 이미 지난 날이겠습니다만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진실들이 조속히 밝혀지길 바라며

그때 가셨던 넋들을 잠시나마 추모합니다.

 

끝으로 식상할지도 모르지만

신영복 선생의 사상을 잘 드러낸 '여름 징역살이'를 옮기며 

신영복 선생님과의 인연 자랑을 마칩니다

 

 

계수님께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敭)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다사했던 귀휴 1주일의 일들도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아마 한 장의 명함판 사진으로 정리되리라 믿습니다.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친정부모님과 동생들께도 안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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