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월 중국 여행 중 '떠나고 도착하고'를 올렸습니다.
이 글에 @goldengate 님께서 여행중 현지 인연을 만나는 즐거움을 공감해주셨는데
고통도 있다고 흘리기만 하고 그때 제대로 옮기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염두해 "슬슬 내려 놓고 줄여야 하는 나이인데 연은 점점 는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중에 따로 정리해보리라 했는데 이제서야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사진을 추렸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2018년 7월 항저우 중국미술학원을 방문하고 올렸던 게시물에 이어 시작합니다.
얼추 1년6개월 만에 이어가게 된 기억
고급스러웠던 아파트 단지 안, 막 지었는지 여전히 조경 관리로 어수선한 분위기.
이날 아침 호텔을 나올 때만 해도 그렇게 지칠 줄은 몰랐지만,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릴 만큼 찌는 더위에 관광을 마치고 쉼이 된 가정 방문.
현관문을 들어서니 집 주인 조슈아와 아내의 취향을 그대로 느낄 수 거실 장식이
초면에도 알던 사람인양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더위를 식히자고 내 놓고 과일.
갈증이 끊임 없던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보이는 과일마다 축내고,
3호는 마지막 리치를 입에 넣고는 감추지 못한 아쉬운 표정
공교롭게도 나를 뺀 모두가 기독교인이라 자연스레 올리게된 식사 기도.
교회 유치원을 1년 다녔던 이력 덕인지 두손 모으고 그럴듯한 기도 자세를 잡은 3호.
하나로도 벅찰 '종교와 예술' 두 화두로 끊이지 않는 대화. 알고 보니 기독교인 미술가들이 모인 자리.
더러 공허한 토론 같았지만 끝 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며 다투는 이들이 부러웠던 시간.
하루 종일 영어가 서툰 어른들을 대신해서 통역을 했던 고등학생.
통역에서 해방(?)돼 아이들과 어울리니 영락 없는 아이 같은 고등학생.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쳐선지 말도 행동도 격의없이 어린 미국(?) 아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배 부르고 나른해진 3호는 엄마를 끓어다 거실에 앉혀 놀다가
먼저 가봐야 한다는 분 나가기 전 부랴부랴 기념 촬영.
마치 제 집인양 먼저 가는 분 배웅하는 1호.
고등학생 형에게 빌린 전화기로 게임하는 아이들, 그 옆을 지켜선 1호 동갑 홍일점.
수줍어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말 한마디 없더니 저녁이 돼서야 풀어진 표정.
식탁에서 대화를 이어갈 때 소파로 자리를 옮긴 죠수아 아내.
몸살이 난 것 같다며 피곤한 얼굴로 힘들어 하더니 카메라를 대니 미소를 지어주고,
첫 기념 촬염 뒤 가고 온 사람 있어 다시 기념 촬영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우리 가족을 배웅하는 조슈아.
목적지를 알려주고 요금까지 미리 내준 조슈아 덕에 빗길도 편안하게 뚫고
차에 내릴 때 줄어든 비는 시원한 분무 같았던 기억까지 모든게 즐거웠던 하루.
이때 조슈아의 소개로 사오싱(绍兴)에 사는 슌을 만났고, 작년 여름 다시 만난 슌에게
아팠던 조슈아 아내의 안부를 물으니 덤덤히 알리는 그녀의 부고. 죽기 직전에 암이란 걸 알았다고...
결국 마지막이 된 배웅. 그때 웃으며 다음에 보자는 말은 지킬 수 없게 됐고,
처가 떠나자 베이징으로 돌아 갔다는 조슈아. 이제 들어가도 그 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그 집 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