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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아저씨

포도씨 | 2023.04.22 03:22:34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노화>

 

점점 나이가 들어감을 느낍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휴대폰이 이제는 글씨를 키워도 답답해서 고개를 뒤로 젗히고 팔을 앞으로 쭉 내미는 내 자신을 누가 볼까 주변 곁눈질을 한번 줍니다. 이번 가을에는 화면 더 큰 휴대폰을 사야 할지 아니면 검안이라도 받고 돋보기 안경이라도 써야할 지 고민하는 게 약간은 서글픕니다. 조금씩은 잘 안보여도 노인네마냥 돋보기 걸치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쩔수 없겠지요. 자꾸 늘어나서 감당안되는 흰머리도 고민입니다. 이삼년전까지는 흰머리 하나뽑는데 10센트 용돈으로 주마하고 아들손을 빌어 젊은 척이라도 했는데 얼마전까지는 흰머리도 많아져서 단가를 내려야 하나 싶었습니다. 어느날 머리를 감고 난후에 거울로 마주한 내 모습을 보아하니 풍성했었던 머리결은 간데없고 머리밑 두피의 윤곽이 두드러지도록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치도 많아졌고 완전히 흰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검지도 않아 보이는 가느다랗고 희끄므레한 머리카락도 많아졌는데 훤한 머리밑을 가리려면 이제는 흰머리도 뽑지 말고 아껴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집 배쓰룸에 전구가 많아 너무 밝은 탓이라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아들래미는 용돈벌이가 줄어 섭섭하겠지요. 운동을 열심히 안해서 그렇지 시작만하면 금방 뺄 뱃살을 열심히 감추어주던 허리띠와 바지도 이제 꽉 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문득 입을 바지를 고르다가 약간 슬퍼지고 조금은 차분해졌습니다. 

 

아직 애들은 공부가 많이 남았고 나는 은행에 모기지가 많이 남았고 작년에 큰 맘먹고 새로 산 자동차할부도 몇년이나 남았네요. 내가 일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남았을까? 큰 테크기업들이 직원들을 내친다는 뉴스가 연이어 나올때마다 언젠가는 내가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쓸모>

 

내가 인정하기 싫은 노화라는 단순한 진실을 마주했을때 조차도 죽음으로 한발씩 다가간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지내면서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온몸이 시들고 쇠하게 되면 머지 않아 사회가 규정한 생산성이 떨어져서 세계는 커녕 일터나 동네에도 내 한 몸 보탬되게 쓰일곳이 없게 되겠지요. 일터에서 내 쫓기고 나면 중요한 일과라고는 동네 산보하며 놀러 다니거나, 책 한 권을 몇 주씩 붙잡고 읽거나 운이 좋다면, 때때로 손자손녀들 보러 자식들 집에 들르는 것 뿐이겠지요. 갈수록 감퇴하는 신체기능 내지는 정신기능에 맞춰 쓸모를 가늠하여 삶의 의미를 가볍게 만듦으로써 이제 내리막 뿐일 내 인생의 쓸모와 이용가치를 노화와 타협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든 사람은 이제 사회적인 쓸모가 없는가. 만약 이런 흐름에 적응해야 한다면 노쇠한 몸을 갖게 될 미래에 쓸모없어질 나는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어떻게 부여해야 할까. 과연 인간은 쓸모나 용도위에서만 존엄을 인정받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에 이르자 약간은 상기되고 우울한 느낌입니다. 현실자각의 순간은 며칠동안 이어졌고 나는 절망했습니다. 곰곰히 곱씹어 보았는데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한참을 고민 후에야 나는 체념하고 절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필요나 용도나 이용가치에 비례하여 매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으며, 그 인격은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출생으로부터 권리를 갖고 태어났고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을 아주 어렸을때 배웠던것 같은데 수십년동안 멍청하게도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내 자신을 다그쳐 학대하듯이 젊음을 보충하는 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왠 아저씨가 나를 뚤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저 낯설지만 친숙한 아저씨는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갔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웃어주니 바보같아 보이지만 썩 나쁘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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