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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6

용벅 | 2023.07.17 01:11:11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일식집으로 일자리를 옮긴 나는 더이상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일도 일면식도 없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정말 말도 안되는 말싸움을 벌이는 일이 거의 없어져 너무나 행복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것 같았다. 레스토랑이 있는 동네가 좀 잘 사는 Beverly Hills 라는 동네여서 이었는지 몰라도, Liqour Store 에서 마주치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런치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이 직장인분들이었고 저녁시간에는 연인들이나 가족분들 위주의 손님이었다. 스시집에서 일하는 동안은 "세상에 이렇게 쉬운일도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의 강도는 훨씬 쉬웠고, "Tip" 이 따로 나왔었기에 재밌게 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처음에 트레이닝 기간에 외우거나 공부 할것들이 많아서 약간의 시간은 걸렸었지만 그동안 경험했었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트레이닝도 가볍게 통과했엇다.

 

같이 일하는 형 누나들과 물론 친하게 지내면서 일을 했었고, 뉴욕의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만들었던 추억만큼에 비해서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쉬는날 같이 낚시도 다니고 축구도 같이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축구는 Griffith Park 근처에서 했엇는데, 형들중 한명이 오늘은 내 차로 이동을 하자고 의견을 냈다. 나는 흔쾌히 허락을 했고, 성인 4명이 그 작은 센트라에 다 탔다. 라디에이터가 고장나고 Shock Absorb 가 고장났었던 차에 성인 남자 4명을 태우고 축구하러 간다는 생각 자체부터가 큰 실수였다....아니 고속도로를 안타고 로컬길로 간 나의 잘못이 너무나 컸다. 내차가 도로에 있는 Bump 를 넘을때마다 Shock Absorb 스프링이 튕겨져 자동적으로 "Low Rider" 처럼 위 아래로 리듬을 타는 것처럼 통통 튀고 있엇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옆 레인에 있는 차들, 앞 뒤에 있는 차들이 우리를 보면서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어떻게 저런차를 타고 다닐까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창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로컬길에서 갑자기 "꿀렁꿀렁" 거리는 소리가 난다....도대체 어떤 차가 이런 소리를 내는건가 하고 두리번 두리번 보니...아니나 다를까 우리차 Hood 아래에서 연기가 올라오는게 보였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우리 모두 가슴이 철렁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이 옆에 차를 잘 아시는 분께서 도와주셨고, 그 이후로는 가까운 Parking Lot 까지 성인 4명이 차를 밀고 가야만 했었다. 당시 생생히 기억이 나는게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Los Feliz 길에 있는 Mimi's Cafe 에서 음식을 먹고 있던 분들도 우리에게 시선 집중이 되어 있엇다. 다행히 바로 옆에 Costco 가 있어서 우리는 축구 하는건 포기를 하고 차를 식히고 피자를 먹으면서 차를 집으로 어떻게 다시 가져가야 할지 의논을 하기 시작한다. 몇시간후에 차를 식히고 Coolant 를 채워넣고 이번에는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계속 다녔었는데, 그 사이에 전공을 한번 더 바꾸게 되었다. 퍠션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뉴욕을 떠나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기에 더이상 퍠션에 희망을 가지지 않았었고, 이번에는 Sports Marketing 이라는 전공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당시 한인 교회들끼리 축구대회를 개최하여 토너먼트를 했엇고, 우리 교회도 꾸준히 참가했었기에 대회도중 우연히 LA Galaxy에서 일하고 계신 한인분을 만나게 된다. 내가 Sport Marketing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그분께 Appeal을 했엇고, 그분과 함께 나 외 3명정도 같이 매주 혹은 격주로 스포츠 마케팅에 관해 스터디도 하고 열심히 학교도 다니고 알바도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엇다. 하면 할수록 재밌긴 했는데, 생각 했었던 것보다는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웠으며 취직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나말고 다른 두명은 스포츠 전공 대학교 학생이었고, 다른 한분은 LPGA 에서 근무하시는 한국인 2세이셨다. 계속 했으면 축구아니면 골프계로 가게 되지 않았을까 조심히 상상해 본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 지내던 중 그녀에게 전화가 온다. 만나서 얘기하자면서....

카트라이더 느낌이 나고 Bump 를 지날때마다 통통튀며 나름 재밌게 운전하며 다녔었지만, 차마 그녀에게 차가 생겼다고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냥 부끄러웠고 그런 똥차를 태워주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녀도 나이가 20대중반을 지나 후반을 향하고 있엇고, 졸업한 후에 작은 회사이지만 취직도 했고, 나는 여전히 학생 신분이었다. 그녀를 안지 약 3년이 흘렀지만 나는 나아진게 하나도 없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학생이었으며,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고, 게다가 차까지 없었으니 당연히 나에 대한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무슨말을 하든지 다 이해가 되었고, 결국 아름다운 이별(?) 을 하게 되었다. 그후로 그녀는 한국으로 들어갔고, 후에 들은 소식은 영어학원을 차리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싸이월드 접속이 끊긴 후에는 연락이 안되니 그후로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원치않은 이별을 한후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면서 또 다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스포츠에 흥미가 있었지만 스포츠 마케팅에는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 때마침 시애틀에서 살고 있었던 사촌동생의 전화가 나의 전공을 한번 더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약 6개월~ 1년정도 열심히 준비해서 트랜스퍼에 필요한 과목을 듣고 크레딧을 다 채우고 또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 이번에는 워싱턴주로 갔다.

 

2008년 9월 Housing Crisis 가 터진 그해 당시 환율이 1600원에 육박하였고, 시애틀의 Regular Gas Price 가 $4.65 였던걸로 기억한다. 지금에 비하면 많이 싸게 느껴진다. 나의 첫차였던 카트라이더 닛산 센트라도 Craiglist 를 통해 어떤 분께 $500에 팔아버리고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발을 딛었던 엘에이 땅을 떠나게 된다. 그전에 스시집을 그만두고 한식 퓨전 레스토랑 & 노래방에서 약 일년 넘게 일했었는데, 또 다시 정들었었던 가족같은 팀 멤버들과 이별을 하였고 화려한 이별파티를 해주셨으며 또 다시 나는 축복받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이별을 했다. 

 

제 2의 고향인 엘에이와 처음 미국으로 와서 사귀었던 정들었던 친구들, 알바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교회 친구들, 등 모두와 이별을 하고 또 다시 나는 혼자 시애틀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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