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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11

용벅 | 2023.07.19 18:57:31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몇일후에 사건 담당 Detective 에게서 피해자였던 나를 직접 만나고 싶다며 전화가 왔고 아파트 로비에서 만났을떄 6명의 용의자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날 강도가 누구였었는지 잘 생각한후 얼굴을 찍어달라고 한다. 3번째 사진을 보여줬을때 바로 알아챘고, 이사람이 확실하다고 말하면서 대답을 했다. 몇일후에 법원에서 편지가 올거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하신후 유유히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몇일후에 법원으로 나오라는 통보가 써진 편지가 우편함으로 왔으며, 자세히 읽어보니 법원에 직접 나와 증언을 해야하니 몇월 몇일 몇시까지 법원으로 나와달라고 써있었다. 다행히도, 맨 마지막 문단에 해당일 법원에 나오지 못하면 해당주소로 그날 있었던일을 자세한 상황설명과 함께 편지답장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옵션이 써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법원에서 그날의 권총강도와 또 다시 마주친다고 상상을 해보면.....

 

그렇게 답장을 보낸후에 또 다시 그에대한 편지가 왔었는지 전화를 받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그 권총강도는 살인미수죄로 20년형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고, 여자친구의 형량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권총강도의 사건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으며, 피해자였던 나는 여러가지의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로 기억하며 내 삶을 이어나갔다.  

 

학교 졸업할때쯤 되어서 나는 OPT 신청 준비에 들어갔고, 그후에 바로 SSN 신청에 들어갔던 걸로 기억을 한다. 신청에 들어가자 마자 폭풍 리서치를 시작했으며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시애틀 Boeing Field, 그리고 에버렛 Paine Field 있는 작은 항공사와 함께 UPS, DHL, 등등 한군데씩 발품을 팔며 방문해 직접 이력서를 돌리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 한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실망이 컸던 나는 Google Map을 켜 놓고 항공관련 회사를 하나하나 찾아서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워싱턴, 오레곤, 캘리포니아 이렇게 3개주에 위치해 있는 항공관련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고, 친했던 동생이 오하이오에 있는 OSU로 편입을 가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콜럼버스에 위치한 항공사 및 항공관련 회사 쪽에도 이력서를 넣어본다.

 

한달여간 3-400개 정도의 회사에 이력서를 집어 넣은것 같았고, 여느때와 같이 랩탑으로 이력서 작성을 하고 있던 점점 지쳐있던 나에게 전화한통이 걸려온다. 인디애나주 Area Code였고, 내가 이력서를 낸 항공사 중 하나였으며 비행기티켓과 호텔을 예약해 줄테니 인터뷰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인터뷰 볼 장소는 콜럼버스 공항에 위치한 항공사 중 하나였고, Director, 슈퍼바이져 두분, 그리고 HR 한분 함께 인터뷰를 봤다. 인터뷰 질문들은 크게 HR쪽 질문과 테크니컬한 질문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HR 관련 답변은 아주 잘한거 같았지만, 테크니컬한 답변은 실무 경험이 없었기에 잘 하지는 못했고, 학교에서 배운것들 위주로 답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가 유행했던 시기라 인터뷰 패널 중 한명이 그 노래를 아는지 물어보았고, 나는 답변으로 강남스타일 춤을 가볍게 보여주었다. 인터뷰 시작전에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물어봤던거 같았고, 내가 춤까지 선보이자 그게 인터뷰 결과에 더 도움이 된것 같기도 했다. 화기애애한 인터뷰후에 Maintenance Hangar Tour 를 시켜주셨고, 몇몇 직원들과 인사를 했다. 

 

약 2주정도의 시간이 흘려 최종합격했다는 이메일이 왔으며, 2013년 1월부터 항공업계에 발을 딛기 시작한다. 첫 타이틀은 Heavy Check (C-Check) Maintenance Mechanic 이었고, 당시 시급은 $15? 정도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오하이오는 예상외로 좀 대도시(?) 로 구분되어서 Geo Pay를 $3.50 정도 더 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18.50 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예전에 타던 파워풀했던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Infiniti J30 중형차는 역시 Craigslist 로 팔아버리고, 시애틀을 떠나기전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가서 무려 몇단계 업그레이드 된 2001년형 Lexus IS 300 승용차를 사서 타고 있었고, (전 에피소드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2011년에 사서 잘 타고 다녔었고 게다가 10년밖에 안된 중고차였으면 나에겐 새차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도 이차가 내 인생 최고의 차로 남아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니던 IS300 을 직접 타고 오하이오까지 갈 용기는 없었고, (이차 또한 후륜구동에 눈이 많이 오는 1월이었으니) 트레일러를 통해 오하이오까지 보내기로 했다. 

 

시애틀을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간을 잘못 알아서 공항으로 못갈뻔 했지만 다행이 어찌어찌하여 무사히 공항에 잘 도착하였고, 시애틀을 떠나기 전 정들었던 지인들, 친구들과 이별 파티를 했고, 일하면서 추억을 많이 쌓았던 두명의 그로서리 사장님과도 감사하단 작별 인사를 한후 그렇게 정들었던 시애틀을 떠난다. 

 

2013년 1월 그렇게 오하이오에 도착하여 첫 직장 적응을 잘하였고, 운이 좋게도 훌륭한 팀 멤버들을 만나 하루하루 즐겁게 일을 했다. 당시 근무자가 400명 정도 있었는데 99% 백인, 그리고 나머지는 타인종 동양인은 나와 베트남 친구 한명 뿐이었다. 게다가, 항공정비 학교 다닐때만 해도 정비라는 직업이 24x7x365 돌아가는 직업인줄 몰랐던 나였고, 한국말로 하면 짬순으로 스케쥴을 배정 받았기에 Overnight 스케쥴을 배정 받았다. 시애틀에서부터 알던 동생과 룸메생활을 했기에 렌트비는 $300 이었었고, 당시에 하루 10시간 4일만 일을 했었는데, 나에게 콜럼버스는 너무나 심심한 도시였다. 쉬는날이면 아는동생들과 OSU에 가서 축구를 하거나 극장가서 영화를 보며, 차 디테일을 했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며 그렇게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3일 쉬는날 중 이틀 일할수 있는 알바를 찾아본 후 더블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금요일/토요일 오픈부터 클로징까지 일하는 스케쥴이었었고, 일식 레스토랑은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 일을 할때는 예전보다 페이를 많이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약 일년정도 일을 하여 몇만불의 돈을 모으게 됐다.지금 돌이켜 보며 느끼는 건데,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그때 마모를 알지 못하고, 401k 투자도 하지 않았었고, 남는 돈을 그냥 은행 계좌에 모셔 두었던게 가장 큰 실수였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뿐...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던중 뉴욕 라과디아 공항지점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그만둬 단기 출장을 갈 사람을 구한다고 팀 미티중 슈퍼바이져가 발표를 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전 뉴져지에서도 살았고, 뉴욕에서 알바도 해왔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Application을 내고, 몇일후에 약 두달간의 출장을 뉴욕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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