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글

MileMoa

검색
×

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인생 계획에도 없었던 좌충우돌 미국에서의 20년 삶 16

용벅 | 2023.07.22 19:35:5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헤딩 경합을 할려고 공중에 떠서 공을 따낸 순간 "팍" 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땅으로 곤두박칠 쳤다. 몇초동안 기억이 안났으며 예전에 LA 리커스토어에서 싸운 그날 이후로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몰려들어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일어나서 걸을려고 발을딛는 순간.....발목 뒷굼치에 있는 아킬레스건이 이상함을 느낀다. 정상적으로 걸을수 없었다. 사이드라인으로 나가서 밖에 대기중이던 Jessica 가 괜찮냐고 물으면서 아픈곳을 말해주니 살짝 눌러본다. 아킬레스건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Jessica 가 손으로 눌렀는데 마치 젤리처럼 움푹 들어간다. 잠시후에 괜찮겠지 하면서 Cooler 에 있는 맥주 한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동료들한테 인사하고 다음시합에 보자며 그렇게 헤어진다. 차까지 걸어갈려는데 두발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차까지 200m 거리를 외다리로 깡총깡총 점프해 차에 타고 집에 들어가서 샤워후 눕는다.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해야해서 바로 잤는데. 밤새 잠을 못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킬레스 건이 종아리 뒤쪽을 계속 말려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회사에 전화해서 병가 처리를 하고, 병원을 찾아 전화한다. 운좋게 한군데 찾아서 당일날 오후에 방문해서 진단을 받았다. 아킬레스가 완전히 끊어졌다고 한다.....나의 건강보다 병원비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의사선생님과 상의 후 다음날 바로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가 하루내내 침대에 누워있었으며 이틀간 걷지를 못해 기어다녔다. 

 

당시에 P2가 운전을 못해 다음날 우리셋은 우버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처음해보는 Major(?) 수술이었다. 한시간 전후로 수술을 마친후 마취에 취한 상태에서 목발을 집고 무릎까지 깁스를 한후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갔다. P2에게 또 다시 악몽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회사에 전화에 Leave of Absence 처리를 하였고, 약 3개월간 그렇게 매일매일 집에서 누워만 있고, P2는 갓난아기와 어른아기를 돌봐야 하는 고통의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P2에게 너무나 미안해지고 감사하다.

 

3개월 후에 Light Duty로 회사로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원래 하던일은 하지 못해, 다른곳으로 배정을 받아 버튼만 누르면 움직이는 Wheelchair를 타고 다니면서 아주 간단한 업무만 보았다. 그렇게 하기를 6개월..다행이 다친발은 왼쪽이어서 운전하는데는 지장이 없었으나. 가끔 밤에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칼로 째는듯한 고통에 잠을 자기 힘들었다. 그러먼서 생각을 한다. P2는 제왕절개 수술 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고.... 깁스를 제거하는 순간 PT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일주일에 2-3회정도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주일에 1회 + 개인운동으로 병행했던걸로 기억을 한다. 그렇게 약 1년정도를 했는데도, 발목이 정상이 아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다. 

 

3개월동안 LOA, 그리고 6개월간의 Light Duty 후에 원래 포지션으로 복귀한다. 같이 Hire 된 친구들은 다른 지역으로 배정받고 나만 혼자 이쪽으로 받았었는데, 당시에 항공기 사고로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렇게 3개월동안 일이 없어 너무나 심심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출근해서 끝날때까지 했던 일은 동료들과 수다 떠는것이었고, 가끔 공부도 하긴 했었다. 게다가 원래 포지션으로 복귀하자마자, Lay off 가 시작되었다. 노조가 있엇기에 Senority 순으로 layoff 를 감행한다고 하였고, 나는 매일매일 기도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행이 내 포지션은 한명도 lay off 가 되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당시에 생산된 항공기가 Ground 되어 있어, 그 항공기들을 돌봐줄(?) 인력이 필요했었다. 그 이유로 우리 포지션은 lay off 가 안됐다고 한다. 당시 15,000명이 lay off 가 되었다.

 

그렇게 입사한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1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Ground 가 풀리고 항공기 딜리버리가 시작하자 정식으로 일을 배웠는데, 나는 항공사에서 왔다고 다 알거라면서 트레이닝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아니 이 회사는 트레이닝 프로그램 자체가 짜여진게 없었고, 그냥 배울거면 배우라는 식이었었다. 그리고, 배울 의지가 없거나 모르는 척을 하면 더이상 시키거나 묻지를 않는다. 노조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지껏 항공사에서 보던 친구들이랑 반대로 너무나 게으른 친구들이 많았다.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중간에 Set되어 있는 쉬는 시간에도 처음에 적응이 안되어 힘들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생각보다 빨리 적응이 되었다. 다행히도 우리팀 친구들은 일을 잘하는 친구들이었고, 각각의 인종들이 섞여있었기에 모두들 친절하고 나에게 잘해주었다. 게다가 우리팀은 격주에 한번 또는 한달에 한번 Pot Luck을 해서 그 계기로 더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고, 아무사고 없이 무사히 행복한 연말을 보냈으며 작은 아파트여서 많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은 때로는 다투며 때로는 웃으며 울며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P2가 아버님 1주년 기일을 챙기러 한국을 간다고 하였고, P2와P3 만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1월중순쯤에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을 떳다. 그런데 약 2주후에 전세계적으로 펜데믹이 터졌고, Shelter in Place 가 발표되고, 한달이 더 지나 회사가 Shutdown 을 하였다. 당시에 첫 직장 오하이오에서 일하던 매일 나를 놀리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슬픔에 빠졌다. 나포함 그친구와 친한 동료 한명이 더 있었는데, 우리 셋은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밥도 같이 먹고 다른 취미활동도 같이 하던 보스턴에서 온 친구였는데, 코로나에 걸려서 이 세상을 떠났다고 연락이 왔다. 당시 나이는 30세....너무나 슬펐고, 나는 할말을 잃은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다. 

 

한달후 회사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우리 모두 마스크를 쓰고 출근한다. 간혹 회사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본인은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여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좀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였고, 조기은퇴를 한 분들도 꽤 있었다. 그때쯤 되어서 삼xx라는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하였고, 마모 게시판 은퇴글에 빠져서 하나하나 정독을 하였고, 투자에 관한 유투브를 보기 시작했으며, 투자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경제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 직장에 넣어두었던 401K 를 롤오버하여 투자를 시작하였고, IRA 라는 용어를 알고 공부를 또한 그곳에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펜데믹 발표후로 빠졌던 주식 그리고 부동산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 하고 있엇다. 당시까지 부동산은 별로 관심이 없었고, 주식에만 온 집중이 몰두되어 있었다. 

 

그렇게 펜데믹동안 투자에 눈을 떴고, 매일 하는 일만 똑같이 하는 회사생활은 점점 더 재미가 없어졌고, 다른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회사에서 일은 열심히 했고, 동료들과도 다들 잘 지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오후에 출근하고 있었고, 집에 혼자 있으니 딱히 오전에는 할일이 없었다. 파트타임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일을 배워서 내가 나중에 혼자서도 창업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Window Tint 를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 이력서를 준비해 인터뷰를 보고 몇주후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거리는 왕복 100마일정도 였기에 좀 힘들겠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혼자 생활하고 있었기에 기회는 이때다 하고 도전했다. 그렇게, 주 4일 메인 잡 출근전 집에서 나와서 알바가 끝나고 바로 메인잡으로 출근하는 바쁜 스케쥴이 시작되었다. 

댓글 [22]

목록 스크랩

마일모아 게시판 [114,556] 분류

쓰기
1 / 5728
마일모아 사이트 맞춤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