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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업데이트. 09/27/2023] 타이거맘에 대한 생각들

오조 | 2023.09.27 21:35:3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업데이트)

 

글을 쓰기만 했는데도 사실 마음이 많이 풀리고 감정이 복받치기도 했었는데요. 그래서 이곳 마모 게시판이 있다는 것에 참으로 감사했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정말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생각과 그리고 귀한 경험을 나눠주셔서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렇게 성장하면서 겪은 트라우마들을 나눈다는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구요. 사람에 따라서 이와 같은 경험을 트라우마로 바라보기 보다는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행동으로 바라보는 경우들도 많아서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생각 나눠주시고 경험을 나눠주시는 마모님들이 모인 이 커뮤니티가 다시 한번 특별하다고 그래서 감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답변 주신 한분 한분과 나누고 싶은 생각들이 전부 다르고, 원글은 감정을 쏟아내듯 썻다면 대댓글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 후 나누고 싶어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원글 업데이트를 빌어 댓글 남겨주신 모든 마모님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자유씨"님께서 타이거부모라는 단어를 써주신 덕분에 타이거맘을 수정해보려고 했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는 사실 아버지 쪽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고, 어머니와의 갈등이 주된 갈등이었기 때문에 익숙한 타이거맘이라는 단어를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댓글 주신 분들께는 조만간 대댓글로 한번 더 생각 나누고 싶어서, 조만간 대댓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오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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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꽤 오랜시간동안 마모님들의 활동들을 통해 알찬 정보 얻어 즐겁게 여행도 다니고, 좋은 생각들을 읽고 스스로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특별히 글을 쓰지는 않았는데요. 사람이 필요하면 찾게 된다고, 너무 힘든 일로 오랜 시간 괴로워하던 차에 결국 여기에 글을 남겨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마모님들은 늘 다양하고 깊은 생각들을 나눠 주시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 제 생각을 남기는 것보다 이곳이 더 위안이 될 것 같았어요. 혹시라도 타이거"맘"이라는 단어가 엄마만을 특정한다고 들려서 불편하시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부모를 동시에 가리키는 동의어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에 씌여있는대로 전 한국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나 타이거맘을 통해 "길러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타이거맘의 맘에 들지 않는 전공과 학벌, 그리고 타이거맘의 계획이 틀어진 결과 지금은 저 또한 어딘지도 모르는 in the middle of nowhere 에 떨어져 삶에 대한 의미도 잃고 물질적 풍요 또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5살부터 스파르타식으로 피아노, 수영을 배우고 나름 어릴때는 한국에서 콩쿨 및 수영 대회 입상을 수도 없이 했고요, 그 후에는 "의사"라는 타이거맘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렸습니다 (굴려졌습니다).

 

저는 여러 형제들 중 막내입니다. 그 와중에 형제 중에 의사도 있고, 의사가 아니어도 다들 한국에서는 인정하는 좋은 학벌들을 가졌고요. 그렇다 보니 저희집 타이거맘은 모르시는게 없었어요. 각 나이대별로 마스터 해야할 악기, 스포츠, 학업 수준, 고등학교때 선택해야할 것들, 선생님들과의 관계, 의대에 진학한 이후 예과 그리고 본과를 거쳐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그 후에는 어떤 집안의 자녀와 결혼할지까지 제 인생 플랜을 아주 상세하게 세워놓으셨던 분입니다. 

 

근데 전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이 싫었고, 잘 하지도 못했고요, 그러다 보니 의대 진학할 성적은 당연히 얻지 못했어요. 문제는 한국 입시 정황상 자연계를 선택하고나니 전공 선택의 문이 좁아지더라구요. 그래도 부모님 체면 유지를 위해 신촌 Y대 정도는 입학했습니다. 학벌을 취하기 위해 경쟁률 낮은 전공을 선택해 지원했고 합격했죠.

 

물론 전 어릴때부터 하고 싶은게 있었는데 (음악, 미술, 연예인 등등 예체능 분야를 좋아했어요), 너무 많이 거절당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하고 싶은게 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세뇌가 된건지 아니면 그냥 다 포기한건지) 그냥 타이거맘이 시키는대로 살아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타이거맘과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건, 제가 하고 싶은게 있다는걸 알았을때, 그리고 그게 의사가 아니었을때 본인 입장에서는 비상사태였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막내 아들을 멋진 (팔방미인) 의사로 "만들기" 위해 악기를 가르쳤을 뿐인데 그걸 업으로 하겠다고 하니 그 분의 입장에서는 비상사태였을 수도 있었겠네요. 결국 의대로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하셨어요.

 

웃기죠. 보통 대부분은 자녀가 하고 싶은게 없어서 문제라는데... 근데 전 그것도 정말 없는건지, 자녀들이 하고 싶은게 있기는 한데 그것이 부모님들이 원하는것과 달라서 부모님들이 외면하는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정말 지옥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해도해도 안되는게 있다는 말을 전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대의 모 전공을 선택했는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직관적으로 와닿지도 않고 이해도 되지 않더라구요. 이겨내려고 4년 내내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만 해봤습니다. 그래도 안되더라구요. 학업보다 더 큰 문제는 저렇게까지 버티는대도 나아지는게 없다보니 20대 내내 자존감을 잃은 것입니다. 제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때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이거맘과 대화를 시도해봤으나 늘 조롱 뿐이었습니다. 그때라도 전공을 바꿔보려고 했지만,  또 다시 반대에 부딪히고 타이거맘과의 대화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이 들었고요. 심지어 타이거맘의 마지막 두 마디는 "너가 노력이 부족한거다" 그리고 "ㅇㅇ내 말을 듣고 따른 것도 니 잘못"이라는 조롱조의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대화가 안되고 그래서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대부분의 제 주변인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힘들어하던 와중에 고려대 학생이 부모를 망치로 살해한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https://namu.wiki/w/%EC%9D%B4%EC%9D%80%EC%84%9D(%EB%B2%94%EC%A3%84%EC%9E%90)]. 전 이 학생의 마음을 100% 아니 그 이상 이해할 수 있을 정도지만 대부분은 저와 같지 않더라구요.

 

어릴때부터 모든 것이 좌절되고, 시키는대로만 살아온 경험을 20년 넘게 하고나니 나이만 들었을 뿐 주도적인 삶을 살아본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고 어렵게 시도하면 항상 이유 없이 거절만 당했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회속에서도 뭔가 제 생각이 수용될 것이라는 기대조차 안하게 되고 자존감 역시 바닥이라 제 의견을 더 표현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여차저차 대학을 졸업을 한 후 (중간 중간 방황도 많이 하고 군복무도 마치느라 29살 늦은 나이에 졸업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이라는 곳에도 입사를 했지만 이미 자존감은 바닥에 삶의 의미를 다 잃은 뒤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결혼을 하고 회사를 관둔 후에 미국으로 전공을 바꿔 유학을 왔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사회과학 계열 전공으로 바꿨습니다. 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예체능은 20대 시절에 주어진 상황을 이겨내보려고 하다보니 손을 완전히 놓은 터라 30살이 넘어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전공을 바꿔서 입학하다보니 석사때 Assistantship을 받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석사 기간동안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신 부분이 있지만, 전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감사한 마음이 없어요. 박사부터는 Assistantship을 받아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마흔이 조금 넘은 지금 미국의 작은 학교에 Faculty로 자리를 잡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저도 부모가 되었고, 저의 아이가 9살이 되어가다보니 교육 문제가 중요한 시기가 다시 오게 되네요. 전 제 성장 경험이 거의 트라우마 수준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저와 비슷한 삶을 살다가 무너진 친구들 (심지어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도 방황하는 한국사람들도 종종 봤습니다) 과 경험 공유를 통해 더욱 교육관이 확고해지고 트라우마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사실 교육관이라는건 딱히 없습니다. 학업이든 뭐든 선택에 관해서는 그냥 아이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자는 주의고요, 삶에 대한 태도나 자세에 관한 이야기 정도만 아이와 터놓고 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를 희망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만약 어느 순간 학업에 관심을 갖는다면, 시험 성적을 받기 위한 문제 풀이 위주의 손맛 공부보다는 좀 느리더라도 생각하는 공부 방식을 익히는 데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와이프와도 동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고요.

 

그런데 주변에서 저의 타이거맘이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아이들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다른집 타이거맘의 모습을 보면, 그리고 그 방식이 당장 아이를 평가하는 시험점수를 획득하는 데에 효과가 있어서 다른 한국 부모들이 칭송하는 걸 보면, 트라우마 때문인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지를 못합니다. 70세가 넘은 저희집 타이거맘에게 전화를 해서 화를 내면서 온갖 저주를 퍼붓거나, 와이프가 주변의 타이거맘들의 의견에 아주 조금이라도 동의하거나 우리 아이에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와이프에게도 불같이 화를 냅니다. 

 

저희집 타이거맘을 단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는 분들이,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제가 겪었던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스포츠와 공부를 "시키고", 타이거맘들끼리 모이면 한국에서 하던 말들, "무조건 일찍부터 공부를 "시켜야"한다" 는 등의 이야기들이 오고갑니다. 목표는 당연히 아이비 리그고요. 목표가 SKY에서 아이비 리그로만 바뀌었을 뿐 타이거맘들의 교육 방식은 똑같습니다. 혹시라도 잘 안 될 경우 참고하시라고 가끔 제 얘기를 한 적도 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그건 너가 실패한거고, 난 우리애 너처럼 실패 안하고 성공시킬 자신있어!" 이런식의 반응입니다. 물론 그러다가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절 다시 찾아온 타이거맘도 있었습니다. 본인의 아이도 저처럼 실패자가 된거였죠...

 

두서없이 길게 써내려왔는데, 바로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저는 물론 그들의 교육 방식을 바꿀 마음도 없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자녀에게는 스파르타 방식이 맞을 수도 있을 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저 방식이 맞는 아이라면 저는 그건 저 방식이 아니어도 그 아이는 스스로 성취를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 이런 타이거맘들을 보면 그리고 혹시라도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저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정상적인 생활이 안될 정도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화를 내면 와이프도 정상적인 생활이 안되고요. 이게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요. 

 

제 트라우마는 결국 극복이 되지 않고, 표현 방식도 잘못되어서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제가 극복할 수는 없다는걸 알아서, 그동안 타이거맘들을 만나지 않도록 사람을 거의 안 만나왔고요. 근데 어쩌다가 만나면 이렇게 분노를 표출하게 됩니다. 사실 와이프도 제 생각과 상황을 알지만 어쩌면 주변 분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힘든 부분은 당연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제 개인적인 짐이라는 점 (저는 나름대로 사회 문제라고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제 착각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니까 가급적 저 개인 내부로 숨기거나 억누르고 적어도 가족들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 트라우마때문에 저 또한 타이거맘을들 싸잡아 나쁘게만 보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게 뭐가 됐든 개인적인 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카운셀링을 권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저 또한 카운셀링을 수차례 받아봤으나 지금까지 만난 분들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한 카운셀링은 보통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봤습니다만, 개인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그 영향이 삶에 미치고 있는 경험들은 제가 지금까지 받아온 카운셀링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구요. 제가 지금까지 받은 처방들은 그 생각을 가급적 안하도록 건전한 분출방법을 찾으라는거였습니다. 결국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는거죠. 그래서 가족들에게만큼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말자고 결론을 내리게 된거구요.

 

그런데 참 서럽습니다. 평생 엄마 말 잘 들은 착한 아이(바보)로 살았고, 그로 인한 결과는 어차피 제가 스스로 책임지고 이겨내고 살아왔는데, 제 삶은 여전히 힘드네요.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참고할 수 있는 선례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제 이야기를 공유해봤자 돌아오는건 저에 대한 무시고요. 참 힘들고 서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본인들이 힘든 걸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아는데, 그럼에도 다들 저처럼 하루하루가 서럽고, 버겁고, 과거만 돌아보면서,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살고 있는건지 궁금도 하고요.

 

지난주에 와이프와 아이에게 표현할 수 없을만큼 그리고 너무 미안할만큼 큰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며칠 생각해보고 이제부터는 이 모든건 제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한번만이이라도 더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 제가 마음 편히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보니 마모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여기서 공유한 제 경험이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이렇게 마음 놓고 글을 남길 수 있는 마모에게, 그리고 끝까지 긴 글 읽어주신 분께는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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