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글

MileMoa

검색
×

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업데이트 10/16/23) 친구와의 마지막 가을.

참울타리 | 2023.10.11 13:11:27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IMG_9335.jpeg

IMG_9337.jpeg


https://www.milemoa.com/bbs/board/8895587

——————————————————————

(10/16/23 업데이트)


IMG_9407.jpeg

IMG_9373.jpeg.jpg


 형님 장례식 마지막날 저는 관 운구자가 되어 형님 가시는 길을 지켜보았습니다. 형님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항아리에 담겨지는 과정을 보면서…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발인일인 10월 15일이 형수님 생신인 것을 형님의 따님이 문뜩 제게 귀뜸해 주십니다. 형님 생신은 10월 2일이었지만 매년 형수님 생일과 하루 차이로 매년 축하하곤 했답니다. 저는 삶을 시작한, 가장 축하 받아야 할 날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상심과 슬픔을 겪게 된 형수님의 상황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화장 시간동안 밖에 나가 작은 케익과 메모지에 형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하셨을 거 같아서 제가 형수님 생신을 축하드리고 싶다고 글귀를 적어 형수님 따님께 전달했습니다. 발인이 너무 아침 일찍이라 큰 쇼핑백을 판매하는 곳을 찾을 수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쓰레기 봉투를 샀습니다. 저는 남의 이목을 크게 상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미망인이 되신 형수님이 알록달록한 케이크 포장을 들고 다니는 건 좀 곤란할 수 있어서 낸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지막 카톡 캡쳐는 형수님이 제게 해 주신 감사 인사입니다. 어떤 감사의 고백보다도 진심이 담겨 마음 한 구석이 가득차는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여전히 형님이 보고 싶은 이 저녁에 제가 경험한 감동을 나누고자 한 글자 남깁니다.


——————————————————————-

(10/12/23 업데이트) 


 한국 시간 10/12/23 02시 40분경 형님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제 뵐 때만 해도 다음 주를 넘기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안하게 마지막 가시기를 기도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너무 이렇게 일찍 가셔서 아쉬운 마음이 교차하네요… 미국에서 온 동생 기다렸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울컥합니다. 공감해 주시고 편안한 마지막을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위에 썼던 글을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다가 너무 길어져서 다른 글을 적어봅니다.


 제게는 2년 전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완화 항암요법으로 지금껏 치료를 받으시다가 얼마 전 9월 중순에 3차 항암도 소용이 없어서 치료를 중단하신 형님이 한 분 계십니다.


 전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형님은 조금 늦게(20년 정도) 의대에 들어와서 저와 동기로 지냈고 그동안 제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제가 마음 깊이 따랐던 분이십니다. 첫 진단 후 6개월마다 한국 방문 때에도 힘든 항암을 맞으면서 만면에 행복한 미소로 미국에서 온 제가 반갑다고 따스하게 맞아주신 분이셨습니다.


 지난 5월에 2차 항암에 점차 내성이 생기고 있다는 말씀을 담담히 하셨고 이제 3차해서 3개월 더 살고 그렇게 조금씩 더 이어나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형수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셨을 때 제게 담담히 이어나갔습니다.


 저는 지난 6개월간 형님한테 정말 가끔씩만 연락드렸습니다. 자주 드리는 연락이 동정이나 연민으로 비추어 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뻔히 보이는 앞으로의 형님의 예후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지난 번 마지막 만남 때… 사람들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자신을 바라볼 때 ’너 아직도 살아있냐‘라는 눈빛으로 보는게 참 견디기 힘들었다고 담담히 말씀하셨는데… 정말 형님이 마주하신 그 아픈 현실에서 제가 도망치고 싶어서 비겁하게도 자주 연락드리지 않았습니다. 


 맨 위 카톡은 9월 19일, 항암을 공식적으로 그만 두시면서 저와 다른 제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를 읽고 저는 가슴이 너무 아파서 형님 항암하지 않을 때도 배에 차는 복수나 암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생 많이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답장으로 적어보았을 뿐입니다. 어떤 다른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췌장암 항암 중단 후 평균적으로 7.5주의 여명이 일반적인 예후니까요.


 엊그제 한국을 들어와 제 친 아버님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 전에 어머니께서 제가 너무 염려할까봐 일부러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모교병원 의사인 동생하고 이야기 해 보니 다행히 초기에 입원해서 제 동기이자 호흡기 내과 교수님인 제 친구가 잘 치료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안도합니다.


 아버지는 면회가 불가능한 병실에 있기에 페이스 타임으로 면회를 갈음하고 형님 따님한테 형님 안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항암 중단 후 가족 여행을 마지막으로 형님은 조절되지 않는 통증으로 입원해서 3주간의 긴 병원 생활을 하시고 계시다고 따님한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4일 전부터는 거동도 못 하시고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오늘 형수님한테 전화를 드려봅니다. 아무래도 형님은 병이 진행이 되면서 간기능이 떨어지고 높은 농도의 진통제가 필요해지면서 섬망이 3-4일 전부터 심해진 것 같았습니다. 


 “형수님, 형님이 지금 좋은 상태가 아닌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지금 한 번 가서 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가서 뵙지 않으면 나중에 너무나 큰 후회를 할 것 같아요.”


 형수님이 허락을 해 주셔서 형님을 뵈러 갔습니다. 5개월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바짝 여윈 몸에 배는 복수로 가득 찼고 늘 저를 보고 미소 주시던 얼굴에는 촛점이 없었습니다. 형님 얼굴 어루만지면서 왈칵 울어봅니다. 마스크 위로 속절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제 눈물에 형수님도 같이 우십니다. 생기 없는 피부가 낯설지만 아직 따뜻합니다. 


 “형님 저 왔어요…”


 형수님이 가져다 주신 투약 리스트를 보니 통증이 너무 심해서 형님을 재우는 수준으로 약물 사용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5분여의 짧은 병문안을 마치고 형수님은 저를 병실 엘레베이터에서 배웅하십니다.


 “형수님이 제일 고생이 많으세요. 이제 형님 옆에는 형수님 밖에 없잖아요… 끝까지 힘드시겠지만 버텨주세요.”


 형님은 이제 더 이상 식사하실 수 없지만 어머님이 챙겨주신 찰밥과 밑반찬을 형수님을 위해 드리고 나옵니다.


 “그 사람이 가장 힘들죠…”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시는 형수님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번 한국 여행에 가져오고 싶지 않았던 검은색 정장을 다시 한 번 만져봅니다. 형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다시 마음 아파합니다. 너무나 잔인한 이 운명에… 내가 내 환자들에게 이만큼의 공감을 해 왔을까 반성해 봅니다.


 어떤 마지막이든 마지막은 참 힘들고 슬픈 것 같습니다. 남은 자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 이번 가을은 참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 형님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이 감정을 기록하려 한 글자 써 보았습니다. 


 형님의 평화로운 마지막을 위해 기도합니다.




첨부 [4]

댓글 [147]

‹ 이전 2 / 2
목록 스크랩

마일모아 게시판 [114,531] 분류

쓰기
1 / 5727
마일모아 사이트 맞춤 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