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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마주한 심장이 쿵쾅 댈 때

달라스초이 | 2023.12.14 16:57:23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저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남들은 딸바보 라지만, 저는 아들바보 입니다.

=========

2000년 7월.

미국이민 1년 9개월쯤 지날때 둘째이자 첫아들이 우리집에 찾아왔습니다.

뒷 목부터 왼팔 까지 용모양의 거뭇한 Birth Mark까지 가지고 태어난 용띠 즈믄동입니다.

 

아들은 개구장이지만, 건강하게 잘 커주었습니다.

특히 "엄청 바뻐 엄청 바뻐! " 소리치며 아빠랑 뛰어가며 잡기 놀이를 즐겨했습니다.

 

5살 무렵에도 아들과 "엄청 바뻐" 놀이를 즐기고 숨이 차 헉헉대는 아들을 보다가

"우리 아들 얼마나 숨을 가쁘게 쉬나 볼까?"하고 왼 가슴에 손을 대어보았습니다.

..........

..........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귀를 대보았습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순간 제 가슴이 더 빨리 뛰기 시작합니다.

 

한국서  대형병원에서 일할때 들은 풍월이 있습니다.

저는 귀를 오른쪽 가슴으로 옮깁니다.

'쿵쾅 쿵쾅' 아들의 심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날 밤은 아내에게도 얘기를 못한채 컴퓨터가 있는 방에 들어가 밤을 꼴딱 새웠습니다.

'Situs Inversus'

선천성 희귀증상으로 태어날때부터 심장 및 모든 장기가 거울에서 보듯 반대로 위치한 증상.

또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

심장만 바뀌어 있고, 다른 장기는 정상인 경우 심장기형을 동반하며 20세 이전의 사망율이......

전자의 경우 장기만 바뀌어 있을뿐 정상인과 동일하지만, 후자의 경우 심각한 건강이상이 초래된다는 것.

아들은 달라스에 위치한 저소득층이 다니는 큰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지만

태어났을때 아무런 이야기도 병원으로 부터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아이가 5살이 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요.

 

다음날 아내와 이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아내는 걱정어린 눈빛으로 아이의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하는것 아니냐고 했지만

저희는 영주권도, 의료보험도, 가진 돈도 없는 빈약한 상태였습니다.

아는 의사를 통해 알아본 바로도 검진비로만 만불이 훌쩍 넘을것 같다는 얘기에

그저 자포자기 할뿐...

한국에 가게되면 좋은 병원에서 몽땅 다 검사해 보자고 애둘러 아내를 안심시켰습니다.

아내가 잠자는 아들방에 자주 들어가 보던것도 그 시절입니다.

 

아들이 7살 무렵  아버지께서 건강이 위독하셔서 한국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한국에 가게 되었고, 사전에 대형병원의 소아과장님께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심장과 장기와 관련된 모든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를 보러 갔을때 60대초반의 소아과장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허참, 고놈 귀한 놈일쎄... 35년 소아과 생활에 두번째 케이스입니다."

 

다행이 아들은 Situs Inversus 였고, 기형없이 거울에서 보는것 처럼 모든 장기가 좌우가 바뀐 상태였습니다.

장기만 좌우로 바뀌었을뿐 건강에는 이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고맙게도 내 나라의 병원은 보험없이도 이 모든 검사를 싸게 해주었습니다.

저의 크레딧 카드엔 진료비로 $1500이 찍혀 있었습니다.

 

아들은 너무도 바른 품성으로 사랑스럽게 커주었습니다.

18세가 되었을때 아들의 선물로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neck1.jpg

neck2.jpg

이 목걸이는 의식이 없는 응급상황시 의료진에게 내 심장과 장기의 위치를 알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들은 누가 권하지 않았는데, 간호학을 공부하겠다고 자처하고 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에피소드로 수업중 교수님이 희귀케이스로 Situs Inversus에 대해 강의할때

혼자 키득대며.. "내가 그건데... ㅋㅋ" 하기도 했다고...ㅎㅎ

 

내일은  아들의 대학 졸업식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학교에서 Nursing Pinning Ceremony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Pin을 목에 걸어줄 사람으로 아빠를 지목했습니다.

단상 위. 나는 이쪽에서 아들은 반대편에서 걸어와 가운데서 만나 Pin을 목에 걸어줍니다.

아들이 성큼성큼 나를 향해 다가옵니다. 목에 Pin을 걸어주고 아들을 껴안습니다.

핀세레모니2.jpg

핀세레모니.jpg

 

순간.

내 심장과 꺼꾸로인 아들의 심장이 서로 맞닿아 쿵쾅댑니다.

잠시였지만... 정적이 흐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아내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따뜻해. 나한테 꼭 맞게 따뜻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입니다.

30년전 아내는 연애시절 내 손을 잡고

"따뜻해. 나한테 꼭 맞게 따뜻해" 라고

같은 말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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