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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졸업

달라스초이 | 2024.05.13 16:39:00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딸나 2.jpg

딸아이가 졸업을 했습니다.

2돌 2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이민와서 25년 6개월만입니다.

만감이 교차하네요.

또 이제 아버지로서 내 역할은 다한 것 같다는 생각에 시원섭섭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지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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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엄마 뱃속에서 25주째 자라나던 내게 이상 신호가 왔습니다.

  뭔가가 나를 힘들게 합니다.

  병원에 가니 엄마가 맹장이랍니다. 부분마취를 하고 급히 맹장수술이 진행됐습니다.

  내 머리위에서 가윗소리가 덜그럭 댑니다.

 

1996년 8월 엄마를 22시간 힘들게 하고 결국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우는 내 얼굴을 막 닦더니 나를 분만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빠에게 데리고 갑니다. 나를 안은 아빠의 얼굴에 희열이 넘칩니다.

  아빠가 저에게 뭐라고 하네요. "안녕 내가 네 아빠란다."

  "안녕! 아빠."

 

1998년 두돌이 지났을때 아빠가 저에게 아파트 마트에 가서 바나나를 사오라는 임무를 맡깁니다.

  천원짜리 한 장 쥐어주고 아빠는 캠코더를 들고 나를 따릅니다.

  매번 가던 마트 사장님이 웃음을 터뜨리며 저에게 봉투에 담긴 바나나를 주고

  저는 그걸 질질~ 끌며 집으로 옵니다.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끌고온 바나나가 모두 상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박장대소를 하고, 저도 덩달아 따라 웃습니다.

 

1998년 10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갑니다.

  나는 아주 신이 났는데...

  김포공항 2층 커피숖, 아빠와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껴안고 서럽게 웁니다.

  이후 한동안 저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미국온지 한달쯤 된 11월  엄마가 출근을 해야 한다고 나를 데이케어 센터에 맡겼습니다.

  나는 엄마보다 덩치가 세배나 더 큰 아줌마에게 맡겨져 엉엉울며 버둥댔습니다.

  엄마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꾸 뒤돌아 봤습니다.

  나는 그날 태어났을때 보다 더 많이 울었습니다.

 

1999년 9월 아빠랑 버거킹에 자주 갔습니다.

  키즈밀을 시키면 요상하게 생긴 볼을 하나씩 줬는데 나는 이걸 참 좋아했습니다.

  볼을 열면 동물모양 캐릭터가 하나씩 나왔는데... 사람들은 이걸 포키몬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빠가 받아온 포키몬 포스터를 방문에 붙여놓고 1부터 150까지 이름을 다 외웠습니다.

 

2000년 7월 새천년이 시작됐습니다.  나는 2세기를 걸쳐 사는 사람이 됐고,

  엄마, 아빠를 빼고는 처음으로 내 혈육이 생겼습니다. 남동생이 참 못생겼습니다.

 

2002년 6월 Elementary 입학준비로 한창 바쁜 가운데 아빠, 엄마가 자꾸 빨간색 티셔츠를 입혀

  TV앞에 나를 앉힙니다. 나는 빨간색 티셔츠는 별로인데... 엄마 아빠는 TV속 공차는 

  사람들을 보면서 막~~~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쫌 무서웠습니다.

 

2004년 아빠가 첫 가게를 냈습니다. 

  가게 공사를 하는 날 나도 가서 페인트 칠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연주페인트.jpg

 

2006년 학교에서 선생님이 친구랑 과학실 정리 담당으로 나랑 친구를 정해 줬습니다.

  나는 친구랑 과학실의 비이커랑 실습품을 정리하는걸 참 좋아했습니다.

 

2007년 11월 목이 아파 아빠랑 월그린에 갔습니다.

  나는 홀스를 사고 싶었는데 자꾸 아빠가 99 센트짜리 싸구려

  목캔디를 사랍니다.

  뭔가 느낌이 싸해서 아빠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2009년 - 2010년 여름방학 엄마가 자원봉사를 하겠냐고 물었습니다.

  한인 목사님 한 분이 장애인 아이들 여름캠프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가서 여름방학 두 달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해에도 또 갔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픈 아이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뭔가 가슴속에 뿌듯함이 남았습니다.

 

2014년 대학에 갔습니다. 태어나서 첨으로 집을 떠나 생활합니다.

  도미토리 4층에 짐을 부려두고 돌아가는 엄마와 포옹을 했습니다.

  나는 괜찮았는데 엄마는 자꾸 웁니다. 아빠는 눈물을 보이진 않았지만

  마음은 울고 있는듯 했습니다.

 

2017년 Paramedic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1년 쉬어야 하는 결정을 하느라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빠가 나를 응원해 줬습니다.

  앰뷸런스 운전이 참 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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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아이들 둘을 공부 마칠때까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나를 대학공부까지 마치도록 헌신해 주셨으니,

응당 나도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민 생활은 녹록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바르게 커주었고,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커준것에 큰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울뚝밸 있는 아빠 때문에 아빠와 여러차례 다투기도 한 딸.

언젠가 "아빠, 내가 맏이라서 얼마나 많은걸 생각하는 줄 알아?" 라고 했을때는

우리 딸 다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이제 동부로 직장을 잡아 또 먼길을 떠납니다.

딸의 앞길에 모난돌이 있기도, 막힌 길이 나타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지혜라는 묘약으로 막힌 길도 돌아가고 까진 무릎에 새살도 돋아나면서

더 큰 세상을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딸...  사랑한다!

 

KakaoTalk_20240513_153125615_02.jpg

** 졸업식이 끝나고 다음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중 인상깊었던 한 곳.

   도심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 5성급 호텔입니다.

   딸아이가 혼자 또는 친구들과 이 호텔 1층 로비에 있는 책상에 앉아 자주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책상뒤에 플러그가 있어요)

   한 번 오면 10시간 씩도 이 자리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호텔 로비직원이나 아무도 학생들을 내쫓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호텔 숙박객도 아닌데... 이 호텔의 문화와 정신에 깊은 존경심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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