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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잡담]
탑승권 한 장

두다멜 | 2012.04.11 18:10:39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내가 공항에서 본 일이다.

늙은 승객 하나가 게이트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탑승권 한 장을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탑승권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직원의 입을 쳐다본다. 직원는 손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카드를 스캔해보고 '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탑승권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 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게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탑승권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카드을 내어 놓으며,

"이 탑승권이 정말 퍼스트클래스입니까?"
하고 묻는다. 게이트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탑승권을 어디서 훔쳤어?"
늙은 승객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탑승권을 빠뜨립니까? 빠뜨려도 이름이 다르면 못타지 않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승객은 손을 내밀었다. 직원는 웃으면서 '알았네'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탑승권을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탑승권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그 탑승권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라운지 안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라운지 바 구석에 앉아서 탑승권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퍼스트클래스를 발권해 줬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신고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같은 놈에게 퍼스트클래스를 끊어줍니까? 저를 위한 비즈니스클래스도 바로 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업그레이드조차도 백에 한 번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장 한 장 승인받은 카드로 마일리지와 포인트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48만 마일리지로 마눌님과 가족들만 비즈니스 태워 보내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체이스와 아멕스한테 깨지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퍼스트클래스 탑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탑승권을 얻느라고 2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퍼스트클래스를 타려 한단 말이오? 타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퍼스트클래스에 한 번 타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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