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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어쩌다 뉴욕 #2

사리 | 2014.09.26 04:56:22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아직 첫날입니다. 그날 밤에 들었던 이런 저런 생각들을 그냥 적어 둔 거에요... 해프닝은 없고 사건도 없어서 이번 편은 별로 재미없이... 

"너님 감성 돋으셨군요!"라고 하면서 혀를 찰 이야기들이랄까요...) 



공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고음을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공연 열심히 하니 몇년 지나면 정말로 잘하겠지. 

열여섯살 때부터 매일 대마초 피운다는데… 그러면 저렇게 멋있는 중저음 갖게 되나 잠깐 뻘생각도 해본다. 

1집 타이틀이었던 new shoes를 원곡으로 불러주길 바랐는데,

편곡을 한 걸 불렀는데, 그냥 쫌 별로인 거 빼면… (사실 그 노래가 그노래였는지 들을 땐 모르고 나와서 한참 생각하다 알았다) 

공연장에는 페이스타임으로 친구들에게 생중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패드 화면에는 그 사람의 친구 얼굴이 떠있다. 


문득 다시 미안하다. 정말로 달리 표현할 게 없이 반미치광이 지랄을 떨었으니. 

“공연 참 좋다. 같이 와서 봤음 좋았겠어” 메세지를 보낸다. 

“그러게 누티니 공연은 나도 꼭 보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공연 보려고 비행기 열시간 넘게 타진 못할듯” 

잠깐 웃는다. 그도 그럴게, 이 인간 자동차 기차 빼고는 다른 교통수단 애지간히 싫어한다.

비행기 타는 게 싫어서 반도의 내륙 이외에는 절대로 나가지 않았던 인간이니.. 

항덕 친구 잘못둔 덕분에…그간 제주도며 일본이며 여기저기 끌려다닌 꼴이다. 비행기를 평생 8번 탔는데 나랑 탄 게 6번이었으니…


마모님이 부모님이랑 다니지 말고 짝궁 찾아서 여행 다니라고 점잖게 협박을 했는데…

물론 간간이 같이 여행하는 짝궁이 있긴 있다. 그게 서로 닭쳐다 보듯 하는 이 친구여서 그렇지…

사실 여자친구랑 여행하는 건 좀 괴로울 때가 있다 - 부부동반 여행은 얼마나 더 그럴까…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대게 준비도 제대로 해야하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그리고 굳이 같이 살고 그러는데 여행까지 함께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알레스카에서 만난 조앤 할머니는 남편이랑 각각 따로 여행을 다니고 돌아가며 집을 보았었다. 

“30년 같이 살았음 됐지 뭐하러 여행까지 같이 다녀!” 라는 식으로 굉장히 단호하게 말을 했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봤을 땐 여행궁합이 잘 맞는 친구가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언젠가부터 여자친구든 그냥 남자친구들이건 기준이 분명해지는 게 하나 생겼는데…

예전엔 좋아하는 게 비슷한 게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혐오하는 게 같은 게 훨씬 더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구글에서 어떤 여행지를 검색하든 자동 검색으로 뜨는 말이 있다. 

여행지 + “밤문화”라는 자동검색어. 특히 동남아시아의 이름난 대도시와 여행지들은 항상 그 검색어가 붙어있다.

얼마나 많은 한국어를 쓰는 인간들이 검색을 했으면 저 말이 자동 검색으로 뜰 정도일까… 한심할뿐. 


여러면에서 이 친구와는 여행에서 꽤 손발이 맞는 편. 

보통 준비 없이 일정만 잡고 즉흥적으로 가고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걸 별로 안좋아 하고 - 이틀에 한 번 정도 가면 충분한 거지 그걸 왜 하루에 두세끼씩 살벌하게 먹고 다니는가로 생각.. 

내가 운전을 하면 옆에는 계속 선곡을 하고,

굳이 여러 명소 가야할 필요 전혀 못느끼고, 어슬렁 대다가 꽂히면 주저없이 머물고… 

하루에 두시간씩 온천물에 담그고 있는 걸 좋아하니… (하루는 네시간동안 서로 별말 없이 온천만…)

게다가 여행지에서 그때그때 “앗 이런 거 하고 싶다”라는 코드가 굉장히 잘 통하니 같이 여행하기에 편하고 신경쓸 일도 없다. 


예전엔 이렇게 남자  둘이서 여기저기 쏘다니는 걸 남들이 뭐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여행 친구가 있다는 게 부럽단다. 

이번에 꽃보다 청춘 때문인가? 최근 세 그룹에서부터 남자끼리 여행 같이 가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사람이 참 상대적인게 한 그룹에서는 내가 이적이라고 하고, 한그룹에서는 내가 윤상이라고 하고, 한그룹에선 내가 유희열이란다. 

내가 윤상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집단은 약간 “전형적인 한국남자” 그룹인데… 걔들 입장에서 봤을 땐 예민하고 까칠한 인간이고,

나보고 유희열 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집단은 굉장히 감수성 예민한 아티스트 그룹인데, 거기서는 내가 지들 대장 노릇하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어쨌든 그중 “남자셋”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행은, 건축설계와 디자인 하는 친구놈과 요즘 갑작스럽게 너무 유명해져 어리벙벙한 미술작가 친구와 함꼐 하는 것이다.

내년으로 목표해서 같이 가자는데… 여행지는 알래스카로 할까 ㅎㅎ

그것도 가면 여행기를 써야하나… 싶다. 


어쨌든 공연장에서 나오는 길. 길 이름이 암스테르담 에비뉴이다.  낯익은 에비뉴. 

2002년이었나? 이라크 전쟁 혹은 침공이 발발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잠시 멍해있었다. 

나는 남한과 북한의 접경 지대의 군사 마을에서 나고 자랐는데, 

종종 훈련 때문에 마을 도로로 탱크가 지나가곤 했다. 

천정이 무너질 것 같은 소리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엄청난 미사일과 폭탄이 떨어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울까 싶었다.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어, 어차피 전쟁은 난 거지만 전쟁이 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보여줘야해…라면서 다짜고짜 짐을 쌌다. 


반전 시위를 해야겠어, 그런데 어디로가지? 이건 뉴욕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니깐 뉴욕으로 가야해. 

통장에는 딱 100만원이 있었다. 70만원짜리 특가로 나온 노스웨스트 항공 (월드퍽스 더블마일 행사까지.. 당시 아시아 왕복이 2만마일이었으니..)을 끊었다. 

30만원이면 일주일은 버티겠지..  학교는 일주일 빠질 거야… 인턴쉽 하고 있던 곳에는 어떻게 말하지? 

당시 주 3일은 학교를 가고 나머지 이틀과 오후는 인턴쉽을 하고 있을 때였다. 

팀장님한테 다음 주는 좀 쉬겠다고 했다. 왜냐고 묻는다. 미국에 데모하러 가야겠어요 이라크전 때문에… 

팀장님이 활짝 웃는다. 잘 다녀와. 열심히 데모하고 와야해! 라면서 돈까지 주신다. 


팀장님이 주신 돈과 내돈 그리고 한도 백만원의 신용카드가 가진 전부였다. 

당시 알바니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데모 안가니? 그렇지 않아도 이번주에 가려고. 그럼 나도 데리고 가. 나 내일 뉴욕 갈 꺼야. 

전화기 넘어로 친구의 깔깔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아마 2002년 3월 21일이었을 것이다. 호텔은 꿈도 못꿀 때였고, 가서도 안된다고 믿던 나이었다. 

동남아 지역을 틈만 나면 배낭여행을 했던 그때, 난생 처음으로 아시아가 아닌 곳을 가는 것이다. 

유스호스텔을 예약했는데, 그게 바로 암스테르담 에비뉴에 있는, 그 유명한 유스호스텔이었다. 

기억에 아마 그 당시 12인실인가가 하루에 25불이었던가 30불인가 했던 것 같다. 

일주일 숙박비를 내고 나면 돈이 전혀 남질 않았다. 


입국 심사장. 흑인 아저씨였다. 

왜 왔니? / 데모 하려구요 / 무슨 데모? / 이라크 반전 시위요. 전쟁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 / 그래? 데모 열심히 해야지! 

911 이후 체류 기간을 “짜게” 주거나 심사장에서 돌려보내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는데, 

아저씨는 육개월을 찍어 줬다… 전 일주일만 있을 건데 왜 육개월이죠?라고 물었더니, 니 맘대로 해 더 데모하고 싶을지도 모르잖아.란다. 

친구는 육개월 체류기간을 찍어 온 걸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지난 주에 내 친구는 출장왔는데 딱 출장 기간 동안인 일주일만 찍어줬어! 많이 찍어도 3개월인데, 요새 6개월 처음 본다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위대를 따라서 열심히 맨하탄을 걸었다. 

아주 오랫동안 걸었는데, 얼마나 걸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People united never be defeated 라는 구호를 목이 타들어달 때까지 외쳤다. 

친구는 “근데 너 데모는 시애틀이 더 재밌다”란다. 이게 초를 쳐도 유분수지. 7천마일 날아온 나에게 하는 소리가… 


하여간 시위대를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찌라시들을 다 모아왔고,

그 다음주부터 시작된 한국에서 반전 시위에서 요긴하게 썼다. 

대학로에서 내가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릴레이 시위가 열렸는데 친한 친구들이 기획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찌라시 담당으로 미국서 가져온 부시를 풍자하는 9.11달러 지폐를 만들어서 길에서 뿌리는 일을 했었고… 


여튼 그게 암스테르담 에비뉴였다. 

돈이 부족하니깐 인도인이 하는 그로서리 가게에서 빵을 사서 하루 종일 아껴 먹었던… 

유스호스텔에서 수건을 안줘서 수건을 사야했었는데

내가 발음하는 towel 이라는 말을 백인 주인은 정말로 못알아 들었다... 

이 죽일놈의 w 발음... 결국 "세수하고 물 닦으려고 쓰는 천이요"라고 길게 풀어서 설명해서 샀다..

아직까지도 유난히 towel 이라는 단어를 얘기할 때면 아주 조심스럽게 되고 또 혼자 마음속으로 창피해진다. 

무조건 걸어 다니고, 어딘지도 모른 채 그렇게 12년전의 어리지만 어떤 소명 같은 게 있었던 그런 애가 하나 있었다. 


아련히 그때 딱 두벌 갖고 와서 추위에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나고,

공연장 앞의 이 길이 그때의 내가 또 걸었던 길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지하철역으로 나오면서 이런 기억을 반추하면서 문득 “그땐 정말 무슨 생각이었을까?”라는 질문이 던지지만

그때는 그것이 아주 중요했고 안하면 죽을 것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유스호스텔에서 자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유스호스텔 가격을 찾아보니 하루 60불. 헐… 그사이 엄청 올랐구나. 

하긴 그땐 버스/지하철도 한번에 1불이었는데, 그것도 비싸다고 투덜댔었어… 

하긴… 이제 유스호스텔은 죽어도 못자겠어. 

예전엔 태국에서 하루 3천원 내고 40-50명 자는 곳에서도 너끈히 잘 잤는데,

이제 잠만큼은 신경 안쓰고 자고 싶은 생각. 


지린내가 진동하는 지하철에서 일주일 정기권을 끊고 들어간다. 

미국 지하철, 특히 뉴욕 지하철은 들어 갈 때마다 왠지 돈내고 감옥 들어가는 느낌이 나는데,

막상 들어가면 지린내도 참을만 하고 또 뒤에서 누가 밀면 진짜로 죽어버릴 것 같은 스릴과 공포도 있고,

또 무심하게 써 넣은 글자들이 멋있게 보일 때도 있다. 


공연을 계속 얘기하는 사람들과 술에 취한 사람 약에 취한 사람으로 지하철은 가득차있다.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냄새로 풍기는 노숙자분들의 악취까지. 


꼬박 이틀을 비행기와 공항에서 보냈지만, 덕분에 머리는 떡이 질대로 져서

샴푸로는 도저히 해결 안나고 비누로 박박 한 번 감아야 할 것 같지만,


귀에 아직 잔향처럼 꽂혀있는 노래들과,

피곤한 상태에서 몽롱해지며 마셨던 공연장에서의 맥주 두잔과

암스테르담 에비뉴에서의 반추와

같은 공연을 보았던 사람들의 떠들썩함과,

인생이 극도로 행복하면서도 극도로 힘들었을 마약쟁이들과

무언가에 취하지 않으면 안됐을 술쟁이들과

그 애매한 냄새가 “여기 뉴욕이야”라고 상기시켜주는


그런 뉴욕의 첫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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