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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모아 게시판   [여행기]
스페인 여행 - 그라나다 1

sleepless | 2015.04.29 06:41:35 | 본문 건너뛰기 | 댓글 건너뛰기 쓰기
아침에 일어나, 호텔을 나와서 톨리도 파라도르에 가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톨리도의 전경을 보고 떠나려고요. 

문화와 역사를 즐기러 온 여행이 극기체험으로 돌변한 그 전날 밤을 떠올리면, 
다시 톨리도 성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거나 하는 맘은 솔직히 들지 않더라구요.

엘 그레코의 도시답게, 파라도르엔 온통 엘 그레코의 그림으로 장식이 되어있었어요. 
아이가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고, 엘 그레코의 그림이라고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래. 그거믄 됐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면서 고야의 마야와 헷갈리지 않으면 
그걸로 톨리도의 여행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거다..  
혼자 위안을 삼아 봅니다. 

톨리도의 전경을 보며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라나다로 떠납니다. 
구글앱에 따르면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전 지루한 비행시간에 심심하지 않을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스패니쉬를 공부하는 앱을 하나 다운해 두었던 게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아이와 차에서 큰소리로 앱을 이용해 스패니쉬 공부를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전 집에서 연습해 볼 땐, 
머리에 들어오지 않던 게, 
스패인에서 며칠을 보낸 후엔, 의외로 귀에 쏙 쏙 들어옵니다. 
역시, 언어공부는 절박할 때 가장 효율적인 거 같습니다.

몇시간을 달리다, 졸립기도 하고, 아이가 화장실고 가고 싶다고 해서 
커피와 식사 표시가 있는 엑시트로 나갑니다. 
오홋. 미국에는 없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습니다!! 
완전 심봤다 입니다.

granada_reststop.jpg

안에는, 간이식당과 간이 매장, 커피숍등, 한국의 휴게소와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식사도, 골라서 담을수 있습니다. 
작은 접시에 있는 것들을 먹고 싶은대로 골라 쟁반에 담아서 마지막에 계산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없는 미국에서 살다가 휴게소를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침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진 않아서, 사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쥬얼도 보기 좋고, 사람들이 많이 사먹고 있는 걸로 보아서,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전 아이가 화장실 간 사이, 커피를 한잔 시킵니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더니 작은 컵을 들어 담으려기에, 
제가 가장 큰 컵을 들어보이며, 여기에 달라고 했더니 
가장 큰 컵에 에스프레소 한잔과 뜨거운 물을 좀 부어줍니다. 

컵안을 들여다 보니, 컵에 3분의 1도 차지 않았습니다. 
전 컵을 들어 보이며, 커피 더. 플리스, 하고 방금 앱에서 공부한 단어 "마쓰"를 써먹어 봅니다. 

절 보며, 더 달라고? 하고 묻습니다. 
오옷. 알아듣습니다. 
제가 배운 단어를 사용할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이 무척이나 뿌듯합니다. 
응. 더!  여기까지 하며, 
손가락으로 컵의 끝을 가리켰더니, 
알았다고, 그리고는 에스프레소를 두잔이나 더 뽑아서, 큰 컵을 다 채워줍니다. 

오마이. 스패니쉬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전 이미 스패니쉬를 마스터 한 거 같습니다. 

컵을 받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메리카노 한잔 값만 받습니다. 

흠.., 제가 아메리카노 한잔 시키고서, 커피 좀 더 많이 달라고 구걸하는 거지같아 보였나 봅니다. 아이고.. 
어설픈 외국어 사용의 폐해 ㅠㅠ 


이거 맞게 계산한 거 맞아? 하고 영어로 물어보니, 
눈을 찡긋하며 Enjoy! 하고 말합니다. ㅎ헉 영어 잘 하네요. 
걍 영어할 걸. 

암튼  커다란 컵에 가득찬 커피를 보니 부자된거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그라나다에 내려가는 길은, 정말 푸르름의 끝판왕입니다. 
어찌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밖을 내다보며 가는 길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스페인을 상징하는 커다란 물소의 표지판?같은 게 세워져 있구요, 

그라나다에서 첫날은, 출발전 코르도바를 빼고 바꾼 일정때문에 다른 곳에 방이 없어서 
PRINCESS ANA 라는 호텔을 EXPEDIA 를 통해서 예약을 했던 참인데, 
별이 네개의 부티크 호텔이 막상 들어가보니, 별 두개만도 못합니다. 
익스피디아 웹에서 본 사진처럼,  방금 리모델을 한건지, 호텔 화장실은 아주 모던하고 깨끗한데, 
방은, 아마도 수십년 사용했을 법한 침대와 침구, 가구들로 이상한 냄새까지 납니다. 
정말 최악입니다. 그런데 침대가 퀸 사이즈 하나네요. 

엑스피디어를 통해 아이 침대까지 3인용 방을 예약했다고 하니, 
프론트 데스크에서, 알았다고 방을 바꿔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선 아주 좋은 방을 주겠다고 저를 데려간 곳은, 
음.. 꼬불고불 복도를 몇개나 돌아서 들어간 방. 

만약 불이 나거나 한다면, 이런 곳에선 도저히 나가는 게 불가능할거처럼 보이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동굴안에 들어온 거처럼 너무 어둡구요.

이 방은 맘에 안 든다고 다른 방은 없냐니까, 지금 성주간이라 방이 없다고. 좀 찾아보겠다 하더니, 
윗층으로 바꿔주겠다고, 저를 다시 데리고 갑니다. 
그곳도 방상태가 그리 다르지 않으나, 최소한 불이 나면 나가기 쉽게 계단에서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방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방에 일단 들어가 창문을 여니, 창문밖에 무슨 가림막같은 게 되어있어서 
바깥 풍경은  커녕 바람이 한조각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에어콘을 틀려고 찾으니, 작동하지 않습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를 해보려니, 전화가 불통입니다. 
기분이 아주 빤타스틱합니다. 

4층에서, 내려가서, 프론트 데스크에 도착해서, 에어콘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니, 
자기네는 한여름이 아니면, 틀지를 않는답니다. 
온도가 25인지 뭔지 넘어가야 에어컨을 트는게 자기네 팔러시랍니다. 
그리곤 계속 미안하다는데, 직원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팔러시라는데. 
그저 기분이 더욱 빤타스틱해질 따름입니다. 

이미, 호텔은 첵인을 했고, 다른 수가 없습니다. 
그냥 호텔에서 최소한의 시간을 보내는 게 정답입니다. 
이 호텔 바로 앞에 중심가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던 참이라 
시내로 나가려면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오늘은, 프로세시옹때문에 
중심가로 들어가는 버스도 택시도 모두 중단이랍니다. 
걸어가려면 30분에서 45분 정도랍니다. 

아 프로세시옹. 진짜 나에게 정말 왜 이러는 거냐. ㅠㅠ 

걸어서 30분이라는 소리에 남편과 아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어제의 극기체험의 후유증이 많이 남은 탓입니다. 
호텔 앞에 먹을 게 있을까 싶어, 일단 밖으로 나가봅니다. 
시간은 4시 반. 

호텔 근처에 꽤나 커보이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한데, 
관광객들로 보이진 않고 다들 로컬 사람들인거 같습니다. 
다들 맥주 한잔이나 와인 한잔씩을 들고 앉아 즐거운 수다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롭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그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는데, 진심 힐링이 되는 듯 합니다. 


빈자리가 보이자 얼른 가서 자리를 잡으니, 
웨이터가 메뉴를 들고 옵니다. 

배가 고픈 참에, 남편은 스테이크를 시키고, 아이도 소고기를 시킵니다. 
전 칼라마리를 시켰더니 오징어튀김을 가져다 줍니다. 
뭔가 이탈리아식 칼라마리를 기대하고 있던 전 한국식 오징어 튀김을 보니, 뭔가 실망스러웠지만, 
맛을 보니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저녁을 먹고, 중심가로 한번 걸어가보자고 하니, 남편은 할 일이 있다며 발을 뺍니다. 
아이도 가기 싫다고 합니다. 
전날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아이를 끌고 다닌 거에 대해 통렬한 자아비판을 했던 걸 상기하며 
더이상 강요하지 않고, 혼자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 


호텔을 나서서, 지도를 들고 봐도 어디가 어딘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 지도를 가르키며 어느 쪽이냐 물으니, 
한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저쪽이라고 자기네랑 같이 가자며 손짓을 합니다. 
그런데 그 옆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는 게 수상합니다. 
제가 뭔가 이상하다 느끼는 사이,  어느 신사분이 갑자기 끼어들며 
아이가 들고 있던 지도를 뺏더니, 그 아이들을 한번 지긋이 쳐다봅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암말 않고 얼른 달아나듯 사라집니다.


그 신사분이 아이들이 다 가기를 기다렸다 저에게 어디를 가려느냐고 묻더니,  
아까 아이가 가리키던 방향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야한다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려서 걸으면 조금이라도 덜 걷게 된다고. 
돈이 있냐 묻길래, 동전을 몇개 꺼냈더니, 그 동전 하나를 가르키며, 
그걸 내고 여기에 서는 버스 아무거나 타고 가라고 알려줍니다.
그 분이 가르쳐준대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니, 그리 멀지 않더라구요. 


그라나다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습니다. 도시 중심부는 꽤나 번화하더라구요. 
일단 지도를 펴서, 카테드랄을 찾았습니다. 
카데드랄은 마침 미사중이라 관람은 이미 끝나있었습니다만, 
뒤로 들어가 잠깐 둘러볼수는 있었습니다. 

카데드랄은 천정이 굉장히 높고 웅장한 대리석 기둥이 높이 치솟아 있어 
톨리도의 성당에 비하면 훨씬 밝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구석구석 구경을 하진 못했지만, 
톨리도의 성당을 이미 충분히 즐겼던 탓인지, 별로 아쉬움이 들지 않습니다.

카데드랄을 나와서 이제 어딜 가볼까? 생각을 하다가, 
저에게 뭔가 놀라운 변화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뭘 보려고 결정을 하든,  
아이의 교육을 생각한다거나 남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는 엄청난 자유로움에 잠깐 스치는 바람마저 황홀할 지경입니다. 
나/혼/자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는, 그 자유로움에 
그냥 길을 걷고만 있는데도 웃음이 히죽히죽 나옵니다. 

아무 목적없이 길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어느 한곳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게 보입니다.. 
프로세시옹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 같습니다. 
전 그 전날, 이미 엄청난 경험을 한 터라, 
일단 프로세시옹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그 옆 골목길로 들어가 프로세시옹 반대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갑자기 타파바들이 즐비하게 선 거리가 나오고, 
길에는 맥주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거리가 나옵니다. 
이미 지도는 가방속에 넣어버렸고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으나, 
혼자만의 자유에 이미 하이해진 터라서, 
거기가 어디인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그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 길은 점점 좁아지면서, 
계속 오르막길로 변합니다. 
여전히 길에는 식당과 상점이 즐비한데, 
아까 도시 중심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Bar 들과 카페들입니다. 
이런 느낌의 카페.



granada_cafe.jpg



아. 여기가 알바신 지구구나. 이슬람 사람들이 모여살았다는.. 
여행책자에서 읽은 정보가 생각이 납니다. 
골목길 몇개를 지났을 뿐인데, 여긴 완전히 다른 도시같습니다. 

인도?나 터키? 같은 곳에서나 만날거 같은 소품과 장식물들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물담배라고 하는, 이상하게 생긴 연기나는 기구같은 걸 하나씩 들고 있는 사람들이 가게밖 테이블에 앉아있습니다. 
상점 모양들도 굉장히 이국적이고요. 

길가에서 파는 스카프며 귀걸이를 구경하는 제 옆으로, 
오르막길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막연히 이 길을 계속 오르다보면, 뭔가가 있나부다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그게 무엇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으니까.

저도 따라 오르막길을 걸었습니다. 
북적거리던 인적이 점점 드문드문 줄어들 즈음, 공원처럼 생긴 곳에 다다릅니다. 
거긴 맥주나 소다같은 걸 들고 앉아서 멀리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여기였나부다. 사람들이 계속 오르막길로 올라가던 이유가. 
둘러보니, 대리석으로 동상같은 게 세워져있고 스패니쉬로 뭐라 이름이 씌여있으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니, 

아.. 아주 멀리 석양빛에 알함브라는 아주 아름답게 물들어 있습니다. 
황금빛의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감탄하다가 문득, 
혼자라는 걸 느낍니다. 

아까 느끼던 자유로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걸 가족과 함께 보지 못하고 
혼자 봐야 한다는 아쉬움이 빠른 속도로 자리 잡습니다. 
뭔가 공중에 떠있는 듯, 하이했던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이젠 호텔로 돌아가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갔던 곳을 나중에 집에 들어와 찾아보니, 여기였네요. 
Mirador de San Cristobal  http://www.tripadvisor.com/Attraction_Review-g187441-d7201857-Reviews-Mirador_de_San_Cristobal-Granada_Province_of_Granada_Andalucia.html

사진을 몇장 찍고 공원을 나서니, 두갈래 길이 나옵니다. 
아까 걸어 올라왔던 골목길과, 아직도 위를 향하고 있는 골목길. 
두갈래 길에서, 전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 길은 다른 내리막길로 이어져 있을거야. 
그러면 아까 왔던 길과는 다른 골목길을 경험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올라가도 내리막길이 안 나오고 계속 올라가기만 합니다. 
이길은 어디로 연결되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걷기만 하다보니, 
이제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이제 제법 어둑어둑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몇시간째 계속 울퉁불퉁 골목길을 걷고 있어서 발바닥도 아프고. 

안되겠다. 더이상 올라가는 건 무모한 짓이야. 
그냥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겠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무리의 사람들이 앞에 걷고 있는 게 보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옵니다. 

여긴 뭐지? 궁금해서 두리번 거려보니, 
저 멀리에, 아까 보았던 거 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이는 알함브라가 보입니다. 

제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발길 닿는데로 걸어서 도착했던 곳은, 
바로 산 니콜라스 광장이였던 겁니다.  
이 엄청난 행운에 저도 뭔가에 홀린 거 아닌가 싶어 기가 막힙니다. 
저도 사람들 틈사이로, 알함브라의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도 들고오지 않아, 배터리 다 떨어져 플래시도 안 터지는 핸드폰으로 찍어야하는 게 속상할 따름입니다. 

granada_stnicholas.jpg

granada_stnicholas2.jpg

잠시,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행운에 젖어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겠다고 일어나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 내려옵니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내려가는 길은 어찌 된 영문인지 여러갈래 길로 나눠지고, 
전 어느 길로 올라왔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저 아무길이나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 길은 어둡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나가는 게 맞나? 조금씩 걱정이 됩니다. 
지대가 높아서 인지, 인터넷은 되지도 않습니다. 
가다보면, 길이 나올거야, 오늘은 운이 좋으니까, 
스스로 위로하며 계속 길을 걸어 내려갑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내가 아까 지나왔던 길이 아닙니다. 
뭔가 이상해...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한참 그렇게 걷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식사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테이블로 가득한 조그마한 광장이 나옵니다. 
그 광장에 들어서자, 조금은 불안한 맘이 가라앉고, 
이젠 별일없이 호텔로 돌아갈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려다가, 
문득,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른데 잠시만 앉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광장안을 둘러보다가 비어있는 테이블에 가서 앉으니 주문을 받으러 옵니다. 
까냐 한잔을 시킵니다. 까냐는 일반 맥주컵보다 작은 사이즈의 컵에 맥주를 주는데, 보통 2유로 미만을 받습니다. 

잠시 앉아 있는데, 옆에서 아이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게 보이고, 
한가롭게 개와 고양이들이 바닥에 누워있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가서 쓰다듬어 달라고 기대는 게 보입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되어갑니다. 


까냐를 가져다 주면서 웨이터는 참치샐러드와 빵이 담긴 타파를 옆에 놓고 갑니다. 
전 여행책자에서 보던, 공짜 타파가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스페인에서는 까냐만 시키면, 공짜 타파를 준답니다. 
참치샐러드 타파는 양도 굉장히 많고 이런저런 야채가 많이 들어있어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앉아서 쉬고 있으니, 제 옆으로 고양이 한마리가 다가옵니다. 
참치 샐러드에서 참치 덩어리 하나를 집어서 고양이에게 주니 얼른 다가와 맛있게 먹습니다. 
그렇게 고양이랑 참치 샐러드를 나눠먹으며 
가로등 불빛아래서 늦은 시간까지 공차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앉아있던 그 시간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스페인 여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제 기억에 떠오를 거 같습니다.  

그렇게 좀 쉬고, 다시 힘을 내서 호텔로 돌아가기위해 걷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더 걸어내려오자, 첨 들어섰던 골목길을 만나게 되고 
그리고, 더 걷다보니 인파들이 많아지나 싶더니, 그때까지 진행중이던 프로세시옹을 만나게 됩니다. 

빠른 걸음으로 프로세시옹을 등지고 호텔쪽을 한참 걷다 말고, 갑자기
그라나다의 프로세시옹은 어쩌면 톨리도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프로세시옹이 진행중인 인파들쪽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사람들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가니 겨우 프로세시옹 행렬의 보입니다. 

잠간 지켜보다 보니, 
음.... 프로세시옹을 피해서 골목길로 들어갔던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무런 미련없이 호텔방향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도 아프지만, 
계획하지도 않고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걸었는데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다다른 
그 엄청난 행운을 생각하니 그라나다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그 때 까지 안 자고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던 아이를 재우고, 
삐걱거리는 낡은 침대에 담요인지 수건인지 뭔지 이상한 이불을 덮고 누었습니다. 
아직도 방은 덮고 열어 제낀 창문에서 바람은 한점도 들어오지 않지만, 
이제 그런건 다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정말 운이 좋은 하루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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